150km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던지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볼 배합으로 상대 타자를 요리할 줄 아는 마무리 투수다. '단기전의 사나이'라고 불릴 만큼 포스트시즌과 국제대회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올 시즌 팀의 한국시리즈 3연패 도전과 더불어 WBC 대표팀의 뒷문을 책임져야 하는 이현승의 이야기다.

지난해 5월 말까지 좋은 페이스를 유지했던 이현승은 6월 이후 부진했다. 자신감, 구위 모두 떨어졌다. 팀도 7월에 주춤하며 한때 1위 자리를 위협받기도 했다. 압도적인 '판타스틱4'의 활약 덕분에 팀은 통합 우승을 달성했지만 본인에게 있어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시즌이었다.

이현승은 지난해 말 FA 협상에서 3년간 총액 27억원에 도장을 찍으며 두산에 잔류했다. 적지 않은 나이와 지난 시즌 부진을 감안하면 선수와 구단 모두 서로의 입장을 존중한 계약이었다. 여전히 팀에서는 이현승을 믿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나타내기도 했다. 이제 그 믿음에 이현승이 보답해야 할 때가 왔다.

두산 이현승 올해도 그는 팀의 마무리다.

▲ 두산 이현승 올해도 그는 팀의 마무리다. ⓒ 두산 베어스


이용찬-정재훈의 공백, 결국 답은 이현승

단기전에선 선발진이 좋다면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정규시즌은 이야기가 다르다. 약 6개월간의 장기 레이스에서 뒷문이 약한 팀은 시즌을 치르면서 고비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지난해 두산도 그런 케이스였다. 마무리 이현승의 부진이 시작되면서 팀의 상승세가 한풀 꺾였고, 8월 초에는 셋업맨 정재훈이 부상으로 이탈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다행히 지난해 9월 전역한 이용찬과 홍상삼의 가세는 계투진에 큰 힘이 되었다. 불안했던 1위 자리를 굳히는 동시에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계투진을 재정비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시리즈에서 등판한 불펜 투수는 이용찬과 이현승 두 명밖에 없었지만 두 투수가 내준 실점은 4차전 9회말 이용찬의 피홈런 한 개, 단 1점에 불과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두산은 또 한 번 불펜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팀 필승조의 핵심 요원이나 다름이 없는 정재훈과 이용찬 두 투수의 시즌 초 합류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겨울 각각 어깨 수술과 팔꿈치 수술을 받았고, 재활을 위해 긴 시간이 필요하다. 정재훈의 복귀 시점은 정확히 알 수 없고 이용찬은 5월 복귀를 목표로 삼고 있다.

부상으로 빠진 투수들 이외에도 지난 시즌 쏠쏠한 활약으로 팀에 보탬이 됐던 윤명준은 군입대로 자리를 비웠다. 홍상삼, 김강률, 김승회, 함덕주 등 불펜 자원은 많지만 이들 모두 마무리 경험은 이현승에 비해 부족하다. 결국 올시즌에도 이현승의 역할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2015년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그리고 프리미어12까지 시즌 초부터 11월까지 쉴 틈이 없었고,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단순히 후유증을 겪은 시즌을 보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1년의 활약이 반짝이었을 뿐이라고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2017시즌 이현승의 활약 여부가 이 궁금증을 풀어낼 것이다.

어깨 무거운 이현승 시즌 전에 열리는 WBC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그 어느 때보다 이현승의 어깨가 무거울 것이다.

▲ 어깨 무거운 이현승 시즌 전에 열리는 WBC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그 어느 때보다 이현승의 어깨가 무거울 것이다. ⓒ 두산 베어스


WBC 대표팀 승선... 단기전에서 또 한 번 일낼까

2015년 프리미어12에서 5경기에 등판해 2.2이닝 동안 무실점을 기록했다. 또한 2015년과 2016년 포스트시즌에서도 팀의 마무리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지난 시즌 부진에도 불구하고 김인식 감독이 또 한 번 이현승을 부른 이유이다. 대표팀에서 좌완 불펜 자원은 박희수(SK), 이현승 두 명이다.

다만 상황은 조금 다르다.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심창민(삼성) 등 구위가 좋은 마무리 투수들이 승선하며 이번 WBC에선 이현승이 마무리로 활약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기용될 수 있는 카드로 경기 후반 필승조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주춧돌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현승은 일찌감치 2017시즌 준비에 들어갔다. 지난 11일 괌으로 떠나 보름 동안 개인 훈련을 소화한 뒤 잠시 귀국했고, 지난 30일 팀 스프링캠프 일정을 위해 호주로 떠났다. 사실상 시즌이 3월부터 시작되는 셈이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는 필수다.

KBO리그 통계 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이현승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139.8km로 그렇게 빠른 편이 아니다. 좌타자에게는 바깥쪽 슬라이더를, 우타자에게는 바깥쪽 체인지업을 자신의 무기로 선보였다. 지난 2년간 비슷한 패턴을 유지했는데, 제구가 되지 않을 때 빠르지 않은 구속이 이현승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았다.

올 시즌 이현승의 활약 여부를 결정지을 변수는 단연 제구력이다. 구속을 갑자기 끌어올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또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난 2년간 이현승이 빛날 수 있게끔 만들어준 정교한 제구가 필요한 시즌이다. 소속팀과 대표팀에서의 활약,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이현승의 2017시즌은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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