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풀리스가 웨스트브로미치 알비온(이하 웨스트브로미치)과 함께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고 있다.

실용적인 축구를 추구하는 토니 풀리스는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중국 자본을 등에 업으며 추진력을 얻었다. 사실 그는 시즌 시작 전, 도박사들이 선정한 가장 경질될 가능성이 높은 감독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며 정글에서 살아남았다.

두 번째 시즌을 맞이한 풀리스는 '시즌 1'과 '시즌 2'의 문제점을 크게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팀을 한 단계 이상 업그레이드하면서 웨스트브로미치를 중위권 클럽으로 급부상시켰다.

현재 프리미어리그 8위를 달리고 있는 웨스트브로미치는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음'을 입증했다. 그들은 올 시즌 (20라운드 기준) 무려 12번의 세트피스로 득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는 팀의 득점 중 43%의 비중을 차지한다. 12번의 득점은 리그 내 1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뒤를 이어 리버풀과 웨스트햄이 세트피스 10득점, 크리스탈 팰리스가 9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이런 치중된 공격 루트는 마냥 좋은 징조로 볼 수 없다. 상대 팀에 주요 루트를 제공하고, 팀의 약점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디펜딩 챔피언' 레스터 시티가 지난 시즌의 전술을 해석당하며 올 시즌 하위권으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웨스트브로미치의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는 전체적인 공격진이 지난 시즌에 비해 긍정적으로 성장했다.

 EPL 세트피스 득점 순위

EPL 세트피스 득점 순위 ⓒ 김동현, 웨스트브로미치


웨스트브로미치는 지난 시즌을 14위로 마감했다. '롤러코스터' 클럽이 강등을 면했다는 사실은 상당히 긍정적인 결과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토니 풀리스의 지휘 아래 팀이 조직적으로 뭉쳤으나 기대만큼의 결과가 나오진 못 했다. 이에 올 시즌을 앞둔 풀리스의 계획은 비장했다.

"최고의 프리미어리그에서 Top 10안에 들겠다"라며 시즌을 준비했다. 그는 가장 먼저 2015-16 시즌을 돌아봤다. 생각해보니 웨스트브로미치는 수비에서 양질의 플레이를 선보였지만 공격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38경기를 치르는 동안 득점은 34개에 그쳤고, 이는 리그 19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심지어 13경기에서 무득점을 기록했고 9경기에서만 멀티골 이상을 넣었다. 게다가 승리한 10경기 중 7경기가 1-0 승리였다.

공격진의 부진 중심에는 사이두 베라히뇨와 리키 램버트가 있었다. 램버트는 연일 침묵했고 베라히뇨는 팀을 떠나고자 의사를 표하며 분위기를 흐렸다. 다행히도 새로 합류한 '베네수엘라 특급' 살로몬 론돈이 제 역할 이상을 해내며 팀을 구했다.

결국 올 시즌을 앞둔 토니 풀리스는 커다란 결정을 내렸다. 빅토르 아니체베와 스테판 세세뇽, 리키 램버트를 보내고, 떠나길 원하는 사이두 베라히뇨를 잡지 않기로 했다. 이어 베라히뇨를 대체할 자원인 디아프라 사코를 노렸다. 웨스트햄에 1,500만 파운드라는 구체적인 비드까지 시도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베라히뇨가 떠나지 않았고 디아프라 사코를 데려오지 못 했다. 대신 토트넘에서 밀려난 나세르 샤들리를 영입했고, '유로 2016'에서 반짝 빛난 할 롭슨 카누를 데려왔다.

반면 수비진은 큰 변화 없이 올 시즌을 준비했다. 풀리스 감독은 공격진이 제 역할을 못 했음에도 잔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인 수비진을 다시 한 번 기용하기로 결심했다. 웨스트브로미치는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안정적인 수비 라인을 가졌다. 항상 같은 4명의 수비수를 기용하며 좋은 수비 기록을 챙긴 바 있다. 올 시즌에는 '베테랑' 가레스 맥컬리와 '에이스' 조니 에반스를 중심으로 클라우디오 야쿱과 골키퍼 벤 포스터, 대런 플레쳐 등이 대거 잔류했다.

 최고의 분위기로 순항 중인 웨스트브로미치

최고의 분위기로 순항 중인 웨스트브로미치 ⓒ 웨스트브로미치 공식 트위터


이 모든 것이 신의 한 수였다. 토니 풀리스의 선택이 아직까진 옳았으며 팀은 목표를 향해 성큼 다가섰다. 전반기에는 가레스 맥컬리가 '축구 기록 통계 전문' <후스코어드>에서 평가한 평점으로 7.19점을 받으며 중위권 최고의 수비수임을 증명했다. 그는 대런 플레쳐와 더불어 전 경기에 출장하면서 팀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 더불어 니욤, 크레이그 도슨, 크리스 브런트, 조니 에반스, 야쿱까지 중원과 수비진에 믿음감을 심어주는 플레이들을 보였다. 전 경기에 나선 벤 포스터가 정점을 찍으며 절정의 수비력을 자랑하고 있다.

공격진에서는 맷 필립스가 연이은 활약을 펼치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19경기에 출장하여 4골 8도움을 올렸고 팀 내 최고 평점인 7.21점을 받았다. 팀을 위한 부지런한 플레이와 드리블, 크로스, 스피드까지 부족함 없는 윙어로서 올 시즌을 보내고 있다.

최전방 1옵션인 살로몬 론돈도 7골 2도움을 올려 알짜배기 활약을 펼쳤다. 영입된 샤들리는 4골 2도움으로 여전히 감각이 살아있음을 알렸다. 할 롭슨 카누는 무려 14경기에 교체로 출장하면서 '조커'로서의 책임감을 다했다. 아쉬운 선수들도 있다. 결국 팀에 잔류한 사이두 베라히뇨는 4경기 출장에 그치며 팀 내 워스트로 선정된 바 있다.

웨스트브로미치는 전반기 19경기에서 25골을 넣었다. 지난 시즌 38경기에서 34골을 기록했음을 미루어 볼 때 엄청난 폭풍 성장이다. 12골이 세트피스를 통한 득점이었지만 오픈 플레이와 역습에서도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그들의 공격 루트가 세트피스에 득점이 치중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되려 그들의 최강 무기가 세트피스다. 신체 조건이 좋은 살로몬 론돈과 수비진이 코너킥과 프리 킥에 가담하면 상대 수비는 버겁고 고통스럽다.

웨스트브로미치는 수비도 업그레이드되었다. 19경기에서 23실점만을 기록한 그들은 짠물 수비의 진수를 선보였다. 그 결과, 목표한 톱10은 물론 8위를 달리며 '빅7'을 바짝 쫓아가는 중이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었다. 그리고 굼벵이가 구르게 만든 장본인은 토니 풀리스였다. 웨스트브로미치와 토니 풀리스가 만난 지 어언 2년, 이제는 시너지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국 자본을 등에 업은 그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다. '롤러코스터 클럽'의 반전은 어디까지일까, 이제 막 시작된 드라마가 펼쳐진다. 그 시작은 후반기 시작점이었던 헐시티전이다. 헐시티전에서 공수 양면으로 좋은 모습을 보인 그들은 3-1 완승을 거뒀다.

선제 실점했지만 굴하지 않고 팀의 장점을 살리더니 세 골을 연달아 넣었다. 이제야 장막을 걷어냈다. 박싱데이에서 실력을 입증한 웨스트브로미치는 매경기마다 새 역사를 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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