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모아나>의 포스터.

애니메이션 <모아나>의 포스터.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애니메이션 명가 디즈니에도 변화의 바람이 부는 걸까. 최근 선보인 작품 속 캐릭터들의 변화가 눈부시다. 사실 디즈니 하면 문화적 '팍스아메리카나'의 첨병이라 해석되던 때가 있었다. <라이언 킹> <타잔> <알라딘> <라푼젤> 등을 발표하던 때의 디즈니는 백인의 시각에서 본 제3세계라든가, 사랑을 위해 자신의 세계를 포기하는 여성을 그리곤 했다.

뚜렷한 분기점은 아무래도 근 3, 4년 전부터인 듯하다. <겨울왕국>(2014)이 서로 엇갈린 운명에서 화해와 소통을 향해 나아갔던 두 자매로 천만관객의 마음을 울렸다면, <인사이드 아웃>(2015)은 모든 인간에게 공존하는 감정의 정체를 수려한 영상미와 음악으로 풀어냈다. <주토피아>(2016)는 또 어떤가. 약한 동물로 치부받는 토끼를 통해 상식과 연대의 힘을 설파했다. 이 세 작품의 공통점은 겉으로 드러났든 아니었든 모두 여성 캐릭터가 이야기의 중심이었고, 모두 불완전하지만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갔다는 데 있다.

오는 12일 개봉하는 <모아나> 역시 그 연장선이다. 주인공 캐릭터가 여성이면서 동시에 청소년이다. 북미에선 이미 지난해 연말 시즌에 개봉해 크게 흥행했다. 5일 서울 왕십리 CGV에서 언론에 선 공개된 <모아나>는 마치 디즈니가 과거 성공한 애니메이션들과 결별 선언이라도 하듯 분명한 차별점이 있었다.

비주류가 전면에 나서다

여성, 그것도 청소년은 이제껏 한국영화든 할리우드에서든 크게 환영받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모아나>는 과감하게 이를 내세워 차별성을 담보했다. 공간적 배경 또한 미국 혹은 가상의 공간이 아닌 세상에 실존하는 제3세계 폴리네시아를 택했다.

주인공 모아나는 폴리네시아에서 살아가는 원주민 부족이다. '모아나'는 폴리네시아 원주민 어로 바다를 뜻한다. 영화는 행복해 보이는 원주민들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왠지 모르게 그들과 다른 자신의 마음에 갈등하는 모아나의 심리에 집중한다. 족장의 딸로 곧 부족을 이끌어야 하는 운명이지만 자아가 형성되며 바다 밖으로 고개를 돌리는 모아나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소년의 방황과도 겹쳐진다. 주어진 운명과 마음 속 바람 사이에서 흔들리는 모아나가 곧 이 영화의 주요 갈등 요소 중 하나다.

이야기 전개는 단순하다. 자신이 왜 바다를 그토록 갈망했는지 깨달은 모아나가 조력자내지는 동반자 마우이를 만나며 주어진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해낸다. 저주에 빠진 마을의 운명을 바꿔야 하는 사명이 있었던 것. 임무를 방해하는 악당을 쳐부수는 장면보다 그걸 깨닫는 과정에 영화는 더 집중하는 모양새다. 반신반인으로 막강한 힘을 가졌지만 허영심 많은 마우이 역시 비슷한 이유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한다. 영화는 이 두 인물의 내면 갈등을 교차시키며 관객들로 하여금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정체성을 찾아가며 삶의 이유를 찾는다는 큰 틀에서 보면 <모아나>는 보편성을 지녔다. 그 주체가 제3세계 인물들이라는 게 다를 뿐이다. 작은 차이처럼 보이지만 이런 인물들을 묘사함에 있어서 '오리엔탈리즘' 등 그간 자신들의 왜곡된 시선을 투영해 왔던 할리우드가 스스로 태도를 바꿨다는 걸 생각해보자. 이야기의 단순함을 넘어서 일종의 성찰 내지는 반성이 깃든 것처럼 보인다. 다만 등장인물들이 매우 자연스럽게 영어 대사를 하는 지점은 아무래도 좀 생경한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배우들의 명연기와 음악의 조화

 애니메이션 <모아나>의 한 장면.

애니메이션 <모아나>의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모아나>는 기존 디즈니가 택했던 화려한 영상미를 자랑한다. 여기에 최근 유행하는 음악영화 요소 또한 가미한다. 주요한 대사를 할라치면 모아나와 마우이, 심지어 이들을 방해하는 악당마저 자신의 주제곡들을 부른다. 참고로 이들이 부른 노래 'How Far I'll Go', 'You're Welcome' 등은 제74회 골든글로브 주제가 상 후보에 올랐다.

배우들의 조합도 신선하다. 주인공 모아나는 실제 하와이에서 태어나 생활한 신인 아우이 크라발호가 맡았다. 강인한 근육을 자랑하는 마우이는 <분노의 질주>로 국내에 잘 알려진 육체파 배우 드웨인 존슨이 맡았다. 천진난만한 아우이 크라발호와 천연덕스러운 드웨인 존슨의 연기의 합이 꽤 좋다.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는 관객이라면 난관을 극복하는 이들의 모험담이 다소 헐겁게 다가올 수 있지만 앞서 말했듯 <모아나>는 심리 변화가 주인 작품으로 보인다. 117분의 다소 긴 러닝타임이 지루하게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또 하나, 영화 시작 전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편 애니메이션과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난 후 등장하는 쿠키영상을 놓치지 말길. 단편 <내 몸속 이야기>는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의 마음을 가볍게 건드리는 수작이었다. 쿠키영상에선 디즈니의 <인어공주>를 가볍게 건드리며 그것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려는 제작진의 의도를 내심 읽어낼 수 있다.  

한 줄 평 : 한 겨울에 언 마음을 녹일 유쾌한 성장담
평 점 : ★★★☆(3.5/5)

애니메이션 <모아나> 관련 정보
감독 : 론 클레멘츠, 존 머스커
각본 : 자레드 부쉬
음악 : 린-마누엘 미란다, 오페타이아 포아이, 마크 맨시나
해외 더빙 : 드웨인 존슨(마우이), 아우이 크라발호(마아나)
국내 더빙 : 이장원(마우이), 김수연(모아나 대사), 소향(모아나 노래)
수입 및 배급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등급 : 전체관람가
러닝타임 : 117분
국내 개봉 : 2017년 1월 12일
북미 개봉 : 2016년 11월 23일


모아나 드웨인 존슨 태평양 디즈니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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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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