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10주년 특별기획 금토드라마 <도깨비> 포스터. 안방 극장에서 시청자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tvN 10주년 특별기획 금토드라마 <도깨비> 포스터. 안방 극장에서 시청자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 tvN


확실히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아래 <도깨비>)의 대중성은 강력했다. 그 중심엔 물론 김은숙 작가의 유명세와 필력이 버티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2004년 <파리의 연인> 이후 10년이 넘도록, 김은숙 작가는 명실공히 '넘버원' 흥행사였다.

특히나 전작 <태양의 후예>는 박근혜 대통령이 챙겨봤을(?) 정도로 공전의 인기를 누렸고, 이미 한류스타인 송혜교에 이어 송중기 역시 중국과 아시아 전역의 스타로 자리매김했으며, 중국 내 한한령(限韓令·한류 콘텐츠 제한) 이 타격을 입히기 전, 영화 투자배급사 NEW가 참여한 사전제작 드라마이자 중국에서 히트한 콘텐츠로서 업계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 김은숙 작가에 <시그널>로 정점을 찍은 tvN의 10주년 특별기획 금토 드라마라는 후광이 더해졌고, 영화 <부산행>과 <밀정>으로 '올해의 배우'로 손꼽히는 공유까지 가세했다. 여기에 김고은, 이동욱, 유인나 등 주연배우들의 면면도 어디 내놔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준수하다. <태양의 후예>에서 호흡을 맞췄던 이응복 PD의 화면 연출은 1회부터 압도적인 수준이었다.

여기에 김은숙 작가가 <시크릿 가든>에서 살짝 맛보기로 선보였던 판타지 장르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동시기 라이벌 드라마로 손꼽혔던 <푸른 바다의 전설> 박지은 작가가 전작 <별에서 온 그대>에서 재미를 봤던 '과거로부터 온 불사의 남자'라는 콘셉트를 엇비슷하게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이쯤 되면, <도깨비>의 성공은 보장받은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3회 만에 12.471%(닐슨코리아 기준)를 찍고, 6회 11.618%를 기록 중인 시청률이 이를 입증한다.

그런데 말이다. 6회까지 방영된 <도깨비>를 보는 일은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고 또 지친다. 주인공인 '도깨비 신부' 지은탁(김고운 분)과 그의 주변 인물들을 들여다보면, 그 불편함의 정체가 확연히 드러난다.

지은탁은 왜 19살 고3 학생에다 가난하고 고아일까

 tvN 10주년 특별기획 금토드라마 <도깨비> 속 지은탁(김고은 분). 굳이 이런 설정의 캐릭터를 만든 이유가 의아하다.

tvN 10주년 특별기획 금토드라마 <도깨비> 속 지은탁(김고은 분). 굳이 이런 설정의 캐릭터를 만든 이유가 의아하다. ⓒ tvN


지은탁은 여성이다. 지은탁은 고3이다. 지은탁은 가난하다. 지은탁은 부모가 없다. 지은탁은 친척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학교에서도 선생님과 친구들 몇몇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사채업자들에게 납치까지 당한다. 지은탁은 살 곳도 없(어서 도깨비의 집으로 들어간)다.

대신, 지은탁은 도깨비 김신(공유 분)의 가슴에 꽂힌 칼이 보인다. 지은탁이 촛불을 끄면 도깨비와 조우가 가능하다(김신은 이런 사람을 처음 봤다고 했다). 또 지은탁은 저승사자(이동욱 분)와 몇몇 귀신도 보인다. 지은탁은 일명 '도깨비 신부'다.

자, 지은탁이란 캐릭터는 그래서 저 두 설정으로 거칠게 나눌 수 있다. 전자가 지은탁의 태생적이고 환경적인 배경이라면, 후자는 드라마의 판타지적 설정에 연결돼 있다. 다시 거칠게 나누면, 전자는 한국 로맨틱 코미디와 멜로드라마의 '캔디+신데렐라'적인 요소고, 후자는 판타지 드라마의 비련의 여주인공과 연관이 짙다.

'김은숙 작가'적으로 설명하면, 전자는 "로코로코"요, 후자는 "판타지멜로멜로"다. <도깨비>는 대놓고, 정말 대놓고 이러한 설정을 밀어붙인다. 김은숙 작가의 힘이다. 그런데 문제는, '로코' 부분은 김은숙 작가의 숱한 여성캐릭터들의 동어반복이란 점이다.

더구나 '판타지멜로' 부분이 그러한 식상한 캐릭터들에게 심각하게 영향을 받은 나머지, 도깨비나 저승사자라는 신선한 설정의 매력마저 갉아먹어 버린다. 무엇보다, 지은탁은 굳이 19살이어야 했을까.

대놓고 '로코로코'하고 '판타지멜로멜로' 하지만...

 tvN 10주년 특별기획 금토드라마 <도깨비>의 한 장면. 김은숙이라는 작가가 성장하면서, 그의 대본도 성숙해오고 있지만 유달리 여성 캐릭터만큼은 변하지 않고 있다.

tvN 10주년 특별기획 금토드라마 <도깨비>의 한 장면. 김은숙이라는 작가가 성장하면서, 그의 대본도 성숙해오고 있지만 유달리 여성 캐릭터만큼은 변하지 않고 있다. ⓒ tvN


그러니까, 지은탁의 자리에 김은숙 작가의 전작 주인공 중 대부분을 갖다 놔도 크게 달라질 건 없다. <파리의 연인>의 김정은도, <파라하의 연인>의 전도연도, <연인>의 김정은도, <시티홀>의 김선아도, 나이만 20~30대일 뿐 캐릭터상의 큰 변화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듯 보인다. 그중 가장 근접한 캐릭터는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 하지원이고, 나잇대로 봐서는 <상속자들>의 '차은상' 박신혜일 것이다.

작가의 캐릭터 변주 아니냐고. '씩씩하고 밝은 데다 유머 감각까지 겸비해서 더 예쁜' 김은숙의 '여주'들은 전형적인 '캔디'였다. 그것이 '작가주의'의 발로라면 굳이 말릴 필요는 없다. 여기서 방점은 더욱더 '식상하다'에 찍힌다. 가난하고 어린 데다, 혼자인 지은탁은 김신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프라하의 연인>으로 출발해, <시크릿 가든>으로 방점을 찍은 '재벌남'에게 "이 사람이 내 사람이다. 왜 말을 못하느냐"고 타박받으면서 사랑받는 그 김은숙 표 '캔디캔디'의 반복 심화 버전인 셈이다. 판타지 장르에 로맨틱멜로를 끼워 넣은 <도깨비>의 지은탁은 이러한 의존형 여성 캐릭터가 극대화됐다고 보면 맞다.

더 심각한 것은 지은탁의 주변 여성 캐릭터다. <시크릿 가든>의 윤슬(김사랑 분)의 당당함을 닮은 '사장님' 써니(유인나 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조 단역 여성 캐릭터가 지은탁의 비참함과 선함을 강조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이모와 사촌, 학교 선생님, 학교 일진까지 이 여성 조 단역 캐릭터가 등장하는 순간 <도깨비>라는 작품 자체의 함량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 여성 캐릭터들만 놓고 보면, 12년 전 <파리의 연인>에서 한 치도 발전하지 않은 느낌이랄까.

19살 지은탁과 939살로 추정되는 '영원히 젊고 순수한 아저씨'(이자 <배트맨> 시리즈 속 재벌 수퍼히어로 브루스 웨인을 연상시키는)공유의 사랑이라는 설정 역시 의아함이 드는 건 마찬가지다. <별에서 온 그대>의 전지현-김수현 커플의 나이를 뒤집으려는 것인지, <상속자들>의 고등학생 박신혜-김우빈 커플의 영광을 빌려오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19살(을 연기하는) 김고은과 아저씨 공유라는 설정이 어색한 건 어쩔 수 없어 보인다.

물론, 드라마 내적인 설정은 존재한다. 10년 전, 9살에 엄마를 잃었지만,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지은탁에게 저승사자는 "19살에도, 29살에도 저승사자를 만날 것"이라고 혼잣말에 가까운 목소리로 조언한다. '삼신할매' 덕에 죽음을 비껴갈 수 있었던 운명이었지만, '아홉수'마다 그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은숙 작가는 고3 여학생과의 운명적인 사랑에 몸부림치는 도깨비 김신의 나레이션이 판타지의 비극성을 강조한다고 확신했던 걸까.

도깨비와 저승사자의 '남남 케미'가 왜 눈에 더 들어올까

 tvN 10주년 특별기획 금토드라마 <도깨비>의 스틸 이미지. 두 남자 캐릭터의 '케미'에 눈이 간다.

tvN 10주년 특별기획 금토드라마 <도깨비>의 스틸 이미지. 두 남자 캐릭터의 '케미'에 눈이 간다. ⓒ tvN


어찌 됐건, <도깨비>는 '여주' 지은탁에게 구원자로 존재하는 '남주' 김신의 내적 갈등을 멜로드라마의 주요 동력으로 삼는다. 그래서 지은탁의 환경은 최악이여야 하고, 김신의 능력과 재력, 순수함은 매력으로 기능하고 또 돋보여야 한다. 마치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과 김주원의 관계가 그랬던 것처럼. 무엇보다, 지은탁은 아직 독립할 수 없는 19살 미성년자다. <프라하라의 연인>으로부터 12년이란 시간을 떠올리면, '퇴행'이라고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역설적으로, 도깨비와 저승사자를 연기하는 공유와 이동욱의 '케미'가 좀 더 주목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확연히 신선한 캐릭터인 동시에 판타지적인 능력을 지닌 두 남성 캐릭터가 복닥거리고 힘을 합치기도 하는 조화가 전형적인 '김은숙 로코' 속 남녀주인공의 멜로보다 더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론, 한국에서만 기이하게 쓰이는 용어인 '브로맨스'적인 관계라기보다 '게이들의 친구 되기'를 보는 것 같다랄까.

분명 <도깨비>의 1화는 압도적이었다. 고려 시대로부터 이어져 오는 운명적인 판타지의 출발은 이응복 PD가 연출한 압도적인 화면과 함께 여타 '김은숙 드라마'를 뛰어넘을 여지를 보여줬다. 특히나 '장면 장면이 화보'라는 반응은 1회부터 지속하고 있다. 여기에 도깨비와 저승사자, 삼신할매와 도깨비 신부라는 캐릭터 설정 역시 신선하게 접합됐다.

<도깨비>는 연출, 편집, 음향 등 요소요소를 보면 나무랄 데가 없는 웰메이드 드라마이다. <도깨비>는 '도깨비 신부' 지은탁이 '도깨비' 김신의 칼을 뽑으면 죽는다는 애초 전설 속 설정을 반전으로 활용할 줄 아는 드라마 아닌가. 그러나 캐릭터의 흠이 그 발목을 너무 세게 잡고 있다. 부디, 시대착오적인 여성 캐릭터와 나이 차를 뛰어넘는 운명적(이라기보다 설정을 위한 설정과 같은) 로맨스에 드라마가 계속 발목이 잡히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도깨비>는 이제 겨우 6화가 방영됐을 뿐이다.

도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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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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