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지션에 상관없이 그 팀에서 21번째로 좋은 선수를 선발하라."

최근 FA를 빼앗긴 각 구단이 보상 선수를 선발할 때 두는 기준이다. LG 트윈스 역시 그 공식을 벗어나지 않았다. LG의 팀 사정을 보면 유격수나 2루수를 소화할 수 있는 젊은 내야수 자원이 필요했지만 LG의 선택은 투·포수를 제외한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유틸리티 플레이어였다.

LG는 13일 FA 자격을 얻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한 우규민에 대한 보상선수로 외야수 최재원을 영입했다고 발표했다(최재원은 형식상 외야수로 등록돼 있지만 내야수도 충분히 소화 가능한 선수다). 작년 12월10일 NC다이노스로 이적한 박석민에 대한 보상 선수로 삼성 유니폼을 입었던 최재원은 368일 만에 다시 한 번 보상 선수 자격으로 팀을 LG로 옮기게 됐다.

짧지만 강렬했던 '보상 선수' 최재원의 2016년

 최재원은 두 달도 안되는 시간 동안 1군 무대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최재원은 두 달도 안되는 시간 동안 1군 무대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 삼성 라이온즈


연세대 시절 주로 유격수로 활약하던 최재원은 201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8라운드(전체 67순위)로 NC에 지명됐다. 당시에도 최재원은 널리 알려진 선수가 아니었고 그저 연고지역 출신 선수에 대한 NC의 배려 정도로만 보였다(최재원은 연세대 출신이지만 마산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초·중·고를 다닌 지역 토박이다).

프로 입단 후 수비력에서 한계를 드러내며 외야수로 전향한 최재원은 2년 동안 단 6개의 안타만을 기록하며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하지만 2015년 NC의 전문 대주자요원 이상호가 상무에 입대하면서 최재원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중견수, 좌익수, 1루, 2루, 3루를 오가며 팀의 빈자리를 메운 최재원은 작년 114경기에 출전해 타율 .247 14도루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인정 받았다.

2015년 한국시리즈 문턱에서 두산 베어스에게 아쉽게 패한 NC는 우승을 위한 퍼즐로 삼성의 거포 박석민을 선택했다. 그리고 NC에서 확실한 저기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최재원은 2015년12월 박석민에 대한 보상 선수로 지명돼 삼성으로 이적했다. 최재원은 스프링캠프에서 백상원과 주전 2루 자리를 놓고 다투다가 왼손목 부상을 당했고 미세골절로 이어져 7월이 돼서야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1군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던 8월18일 수원 KT 위즈전에서 최재원은 또 한 번의 불운에 휘말린다. KT의 3번째 투수 장시환이 던진 시속 147km짜리 강속구가 최재원의 턱을 강타한 것이다. 곧바로 병원에 실려간 최재원은 턱 뼈 골절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그대로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 최재원으로서는 삼성 유니폼을 입고 당한 두 번의 부상이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두 달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의 활약만으로도 최재원은 삼성팬들을 열광시키기 충분했다. 올 시즌 28경기에 출전한 최재원은 타율 0.333 4홈런 16타점 3도루 OPS(출루율+장타율) 0.975를 기록했다. .519의 장타율을 기록하며 NC시절엔 꼭꼭 숨겨놨던 펀치력을 과시하기도 했고 득점권에서도 23타수 9안타(0.391)를 때려내며 해결사로서의 기질을 뽐내기도 했다.

군 미필의 대졸 5년 차, 이제는 결과가 필요하다

포수와 유격수를 제외한 내외야 전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최재원을 어떤 포지션에서 키워야 하는지는 스토브 리그 삼성 팬들의 즐거운 토론 거리였다. 하지만 내년 시즌 삼성 팬들은 최재원이 라이온즈의 승리를 위해 치고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없다. 65억짜리 사이드암 우규민을 얻은 대가로 우규민의 올 시즌 연봉의 2배인 8억 원과 최재원을 LG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LG는 최재원을 급히 데려와야 했을 만큼 외야진이 약한 팀은 아니다. LG는 우익수에 채은성, 중견수에 김용의, 좌익수에 이천웅이라는 주전 선수가 포진해 있고 이병규(7번), 안익훈, 임훈, 문선재, 이형종 등 언제든 주전 자리를 노릴 수 있는 백업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여차하면 지명타자 박용택도 얼마든지 외야 수비에 나설 수 있다.

그럼에도 LG가 최재원을 선택한 이유는 삼성에서 2달 간 보여준 폭발력과 포수를 제외한 내·외야 전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최재원의 다양한 쓰임새 때문이다. 현재 LG는 1루, 2루, 좌익수 자리에 확실한 주전 선수가 없다(올 시즌 각 포지션의 주전으로 활약했던 정성훈, 손주인, 이천웅, 이병규 중 규정타석을 채운 선수는 아무도 없다). 최재원이 경쟁에서 우위를 보이면얼마든지 빈 자리를 파고 들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다만 최재원에게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은 그를 초조하게 만들 수도 있다. 2013년 연세대를 졸업하고 프로에 뛰어든 최재원은 내년이면 어느덧 28세가 되고 프로 5년 차를 맞는다. 아직 군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최재원이 올해 LG에서 확실한 입지를 다지지 못하고 군에 입대한다면 훗날 전역할 때 즈음엔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30대 '노망주'가 될지도 모른다.

최재원은 2년 연속으로 FA보상선수 자격으로 소속팀을 옮기게 된다. 이는 2년 연속 원 소속팀에서 20인 안에 들지 못했다는 뜻도 되지만 2년 연속으로 새로운 팀에서 자신을 필요로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이사는 충분히 다녔다. 최재원이 대학 졸업 후 다시 찾은 서울에서 선수생활의 꽃을 피울 수 있을지 주목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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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LG트윈스 최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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