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농구스타 방성윤이 최근 폭행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8일 집단·흉기 상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방성윤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방성윤은 농구선수 은퇴 이후 2013년 사업을 하던 지인과 함께 종업원인 피해자를 상습적으로 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방성윤은 재판 과정에서 혐의를 부인하며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재판부는 여러 가지 정황을 볼 때 방성윤의 혐의가 사실로 인정된다고 판단하고 유죄를 선언했다.

이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촉망받던 농구스타는 이제 지울 수 없는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됐다. 한때 방성윤의 플레이를 지켜보며 열광했던 농구팬들에게도 지난 추억이 배신당하는 씁쓸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재능은 있었지만... 길지 않았던 선수생활

은퇴 농구선수 방성윤 "현역복귀 마음 굴뚝 같지만…"  은퇴한 농구 선수 방성윤은 지난 2014년 11월 21일, 농구 쪽에서 봉사 활동 등으로 농구계에 기여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가 이제 현역복귀를 타진하고 있다.

폭행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방성윤. ⓒ 연합뉴스


방성윤은 한때 한국 농구의 미래를 이끌 것으로 주목받던 유망주였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당시 유일한 대학생 신분으로 대표팀에 발탁돼 한국이 금메달을 따는 데 큰 힘을 보탰다. 2005년에는 프로무대에 진출하여 서울 SK 나이츠의 간판스타이자 특급 슈터로 맹활약했다.

방성윤은 외국인 선수를 상대로도 밀리지않는 득점력과 정교한 슈팅을 앞세워 한국농구의 슈터 계보를 이을 만한 선수로도 평가받았다. 비록 성공하기는 했지만 한국선수들에게는 영원한 꿈의 무대로 거론되었던 NBA에도 도전장을 던질 만큼 재능 하나는 '역대급'으로 거론되던 선수이기도 했다.

하지만 방성윤은 팬들이 기대했던만큼 훌륭한 선수로 성장하지 못했다.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데뷔 이후 한 번도 온전하게 시즌을 소화하지 못했다. 무리한 득점 욕심과 비효율적인 난사로 플레이에서도 항상 영양가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렇게 짧은 전성기를 뒤로 한 채 차츰 기량이 내리막길을 걸었다.

방성윤은 결국 2011년, 29세의 젊은 나이에 은퇴를 선언하며 코트를 떠났다. 한때 그의 재능을 아까워하며 복귀를 기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수년의 시간이 흘러 밝혀진 방성윤의 근황은 스포츠가 아닌 사회면에서, 그것도 폭행혐의 가해자라는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하여 농구장을 떠났지만 제 2의 인생을 개척하는 데도 실패하여 나락으로 떨어진 모습은 보는 이들마저 씁쓸하게 했다.

방성윤의 몰락은 스포츠 선수들에게 '운동 이후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다. 국내 체육계의 특성상 운동선수는 어린 시절부터 항상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살아야 하고 다양한 인생경험이나 인간관계를 쌓을 기회가 제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운동선수들은  회사원이나 자영업 등 다른 직종에 비해 직업 수명도 매우 짧다. 2015년 대한체육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전문 운동선수 출신으로 현역 생활을 접고 사회로 쏟아져 나온 인력만 약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도자와 갈등, 경쟁 낙오, 노쇠화, 부상 등 각종 요인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갑자기 은퇴하고 나면 이후의 삶에 충분히 대비할 시간도 없이 갑자기 또다른 사회생활에 내던져지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지도자나 프런트. 해설위원 등 은퇴 이후에도 관련 직종과의 인연을 이어가는 경우는 낫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은퇴선수 중 대부분은 상당수가 본인이 몸담은 종목과 무관한 분야에 종사하는 경우가 더 많다. 자영업이나 사무직의 비정규직에서 종사하는가 하면 아예 마땅한 직업을 구하지 못하여 일용직 알바나 무직 신세를 전전하는 이들도 수두룩하다.

비극으로 끝난 스포츠 스타들의 은퇴 후 삶

잘나가던 스타급 선수들이라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선수시절 항상 대우받고 관리받는 삶에만 익숙해져 있던 인물들은, 은퇴 이후 모든 것이 달라진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쓰디쓴 실패나 좌절을 맛보는 경우도 많다. 세상물정에 어두워 사업 실패나 사기 등의 피해자가 되는가하면, 아예 본인이 가해자가 되어 나쁜 길로 빠져 인생 자체를 망치기도 한다.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의 4번 타자였던 이호성은 은퇴 이후 가장 비극적으로 추락한 스포츠스타를 거론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릴 만한 인물이다. 이호성은 은퇴 이후 한때 웨딩사업에 뛰어들며 성공가도를 달렸지만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부도를 맞이하며 몰락했다. 2008년에는 내연녀와 그 자녀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로 생를 마감하며 수많은 대중들을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전 프로농구 선수 정상헌도 비슷한 케이스다. 정상헌은 고교시절 농구천재로 주목받았던 유망주였지만 불성실한 태도로 프로구단에서 잇달아 방출되며 농구인생을 초라하게 마감했다. 2013년에는 처형을 살해하고 암매장까지 한 혐의로 징역 25년형을 선고받아 지금까지 복역 중이다.

축구 국가대표를 지냈던 김동현은 현역 시절인 2011년 승부조작 혐의로 축구게에서 영구제명됐다. 2013년에는 집행유예 상태에서 전직 야구선수 윤찬수와 함게 40대 부녀자를 납치하고 금품을 강탈하려다가 경찰에 붙잡혀 징역 3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최근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있는 '최순실 게이트'의 유력 인물로 거론되는 고영태도  스포츠 스타 출신이다. 고영태는 현역 시절 펜싱 국가대표로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펜싱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과 개인전 은메달을 따기도 했던 스타플레이어였다.

이후 정권의 비선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의 측근이 되어 기업인으로 변신하여 승승장구하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각종 비리 혐의와 관련되어 검찰 수사를 받고 국회 청문회에 소환당하는 등 굴곡 많은 삶을 살고 있다.

물론 나쁜 길에 빠지는 선수들은 전체로 보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운동선수로서 촉망받는 재능을 갖췄고 정점까지 맛본 선수들이, 인생 2막에서 초라하게 몰락하는 모습은 아쉬움을 안겨준다. 어쩌면 항상 성공과 결과만을 강요하는 무한 경쟁 사회속에서 올바른 사회적 가치관이나 윤리의식, 운동 이외의 분야를 충분히 습득할 기회가 제한되어있는 한국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문제인지도 모른다. 운동에 대한 재능보다 중요한 것이 올바른 인성과 사회화다. 선수는 운동하는 기계이기 이전에 올바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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