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명가 수원 블루윙즈가 하위 스플릿에 미끄러진 것만으로도 충격이었다. 더구나 연고 도시 맞수 수원 FC와 나란히 강등될 수 있는 순위까지 내려간 적 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더이상 망신을 당할 수는 없었기에 이를 악물고 버텼고, 7위로 2016 K리그 클래식 순위표를 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진짜 명예 회복의 기회까지 잡아 FA컵 결승전까지 올라왔다.

서정원 감독이 이끌고 있는 수원 블루윙즈가 27일 오후 2시 수원 빅 버드에서 벌어진 2016 FA(축구협회)컵 결승 1차전 FC 서울과의 홈 경기에서 염기훈의 짜릿한 결승골에 힘입어 2-1로 이겼다. 다음 달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진정한 슈퍼 파이널에서 마침표를 찍는 일만 남았다.

조나탄의 결정적 한방

일요일 낮 수원 빅 버드에 비가 조금 내렸지만 3만1천34명이라는 많은 관중들이 관중석을 가득 메웠다. 슈퍼매치의 열기가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으로 느껴지는 날이었다.

이들의 양보 없는 명승부는 엄청난 미드필드 압박부터 시작되었다. 홈 팀 수원 블루윙즈는 왼발잡이 트리오(염기훈-권창훈-홍철)가 FC 서울의 압박 수비를 이겨내며 공 점유율을 조금씩 높여나갔다.

반면에 FC 서울은 멀티 플레이어 오스마르를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내보내고 주세종과 함께 수원 블루윙즈를 거칠게 압박했다. 이 흐름을 예상하고 짧고 정확한 공간 패스로 빌드 업을 시도한 수원 블루윙즈가 15분만에 멋진 선취골을 터뜨렸다. 역시 왼쪽 측면에서 위력을 발휘한 덕분에 얻은 코너킥 세트 피스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27일 오후 2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 삼성과 FC서울의 2016 KEB 하나은행 FA컵 결승 1차전에서 팀을 승리로 이끈 염기훈(수원)

27일 오후 2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 삼성과 FC서울의 2016 KEB 하나은행 FA컵 결승 1차전에서 팀을 승리로 이끈 염기훈(수원) ⓒ 수원 삼성 공식 홈페이지


염기훈이 왼발로 낮게 감아올린 코너킥을 수비수 구자룡이 머리로 넘겨주었고 이 공을 반대쪽에서 조나탄이 절묘하게 오른발 발리슛으로 차 넣었다. 우연하게 연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짧은 코너킥과 머리에 맞은 세컨 볼에 집중하는 세트 피스가 제대로 먹히는 순간이었다. 조나탄의 발리슛은 FC 서울 골키퍼 유현의 다리 사이로 정확하게 빠져나갔다.

전북 현대와의 K리그 클래식 마지막 라운드에서 극적인 역전 우승 드라마를 만든 FC 서울이 여기서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박주영이 아예 명단에서 빠지고 아드리아노가 벤치에 대기했지만 데얀 다미아노비치는 여전히 감각적인 볼 터치로 수원 블루윙즈 수비수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31분에 데얀 다미아노비치가 골문 앞에서 절묘하게 방향을 바꾸는 슛은 누가 봐도 동점골이었다. 하지만 수원 블루윙즈 골키퍼 양형모가 매우 가까운 거리였지만 오른쪽으로 몸을 내던지며 막아낼 수 있었다.

예상 못한 마에스트로 '염기훈'의 슈퍼 골

후반전 이른 시간에 FC 서울의 동점골이 멋지게 만들어졌다. 진정한 슈퍼매치가 시작된 것이었다. 49분, 데얀 다미아노비치의 슛이 수원 블루윙즈 수비 몸에 맞고 흐르는 것을 주세종이 멀리서 달려들며 오른발로 깔아차 그물을 흔든 것이다.

2차전까지 진행되는 일정상 원정 팀의 골은 결정적인 순간에 1골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기에 FC 서울은 이 대회 2년 연속 우승은 물론 2016 시즌 2관왕의 꿈을 꾸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꿈은 10분도 안 되어 깨고 말았다. 수원 블루윙즈의 마에스트로 염기훈에게 슈퍼 골을 얻어맞았기 때문이다.

57분, 왼쪽 옆줄 가까이에서 권창훈의 패스를 받은 염기훈이 FC 서울 골문 앞으로 크로스를 시도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의 왼발 끝을 떠난 공이 이상한 궤적을 그리며 FC 서울의 골문 왼쪽 구석으로 빨려들어갔다.

골키퍼 유현이 크로스를 대비하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며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지만 손목 부위를 스치며 공이 굴러들어간 것이다. 골문 뒤 수원 블루윙즈의 수많은 서포터즈도 믿기 어렵다는 듯 기쁨과 놀라움을 표현했다. 이에 염기훈은 지휘 세리머니 동작으로 자신이 마에스트로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

이에 FC 서울의 황선홍 감독은 65분에 골잡이 아드리아노를 들여보내며 다시 한 번 동점골을 노렸지만 이정수가 중심에 선 수원 블루윙즈의 수비벽을 끝내 넘지는 못했다. 동점골을 넣고 무릎을 다쳐 후송된 주세종의 빈 자리가 눈에 띄었다.

2차전은 12월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다. 하지만 홈 팀 FC 서울이 유리하다고 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간판 골잡이 데얀 다미아노비치가 이번 1차전에서 받은 경고(23분) 때문에 뛸 수가 없으며 주세종의 부상 회복 여부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2009-2010년 연속 우승의 좋은 추억을 갖고 있는 수원 블루윙즈가 6년만에 다시 정상에 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 그런데 2016 K리그 클래식 4위 팀 울산 현대는 2차전에서 FC 서울을 응원해야 한다. FC 서울의 역전 우승 드라마가 만들어져야 자신들에게 2017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출전 티켓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덧붙이는 글 2016 FA컵 결승 1차전 결과(27일 오후 2시, 수원 빅 버드)

★ 수원 블루윙즈 2-1 FC 서울 [득점 : 조나탄(15분,도움-구자룡), 염기훈(57분,도움-권창훈) / 주세종(49분)]
- 경고 : 데얀 다미아노비치(23분)

◇ 결승 2차전 일정(12월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
☆ FC 서울 - 수원 블루윙즈

◇ FA컵 역대 우승, 준우승 기록
2015년 우승 FC 서울, 준우승 인천 유나이티드
2014년 우승 성남 FC, 준우승 FC 서울
2013년 우승 포항 스틸러스, 준우승 전북 현대
2012년 우승 포항 스틸러스, 준우승 경남 FC
2011년 우승 성남 천마, 준우승 수원 블루윙즈
2010년 우승 수원 블루윙즈, 준우승 부산 아이파크
2009년 우승 수원 블루윙즈, 준우승 성남 천마
2008년 우승 포항 스틸러스, 준우승 경남 FC
2007년 우승 전남 드래곤즈, 준우승 포항 스틸러스
2006년 우승 전남 드래곤즈, 준우승 수원 블루윙즈
2005년 우승 전북 현대, 준우승 울산현대미포조선
2004년 우승 부산 아이파크, 준우승 부천 SK
2003년 우승 전북 현대, 준우승 전남 드래곤즈
2002년 우승 수원 블루윙즈, 준우승 포항 스틸러스
2001년 우승 대전 시티즌, 준우승 포항 스틸러스
2000년 우승 전북 현대, 준우승 성남 천마
1999년 우승 천안 일화, 준우승 전북 현대
1998년 우승 안양 LG, 준우승 울산 현대
1997년 우승 전남 드래곤즈, 준우승 천안 일화
1996년 우승 포항 스틸러스, 준우승 수원 블루윙즈
축구 FA컵 수원 블루윙즈 슈퍼매치 염기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