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현대 모터스 이동국 선수가 승리를 만끼하고 있다.

전북 현대 모터스 이동국 선수가 승리를 만끼하고 있다. ⓒ 이동국 인스타그램, 전북현대


경기 종료 직후 TV 방송 인터뷰석에 자리잡은 최강희 감독은 5년 전 홈팬들 앞에서 이 대회 두 번째 우승 트로피를 아쉽게 놓친 기억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전주성을 찾아왔던 홈팬들에게 진 빚을 이번에 갚은 것을 가장 기쁘게 이야기했다. 그만큼 전북 현대의 이 우승 의미는 남달랐다. 일주일 전 전주성에서 멋진 2-1 역전승을 거둔 것이 소중한 밑거름 역할을 하기도 했다.

봉동이장 최강희 감독이 이끌고 있는 전북 현대(한국)가 한국 시각으로 26일 오후 11시 25분 아랍에미리트 알 아인에 있는 하자 빈 자예드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6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 2차전 알 아인 FC(아랍에미리트)와의 원정 경기에서 1-1로 비겨 두 경기 합산 점수 3-2로 10년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감격을 누렸다.

무릎 다친 로페즈, 전화위복

까다로운 원정 경기를 시작한 전북 현대는 너무 이른 시간에 악재를 만났다. 시작 후 2분만에 오른쪽 날개 공격수 로페즈가 왼쪽 무릎을 잡고 쓰러진 것이다. 그는 끝내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한교원이 대신 들어왔다.

로페즈가 전북의 공격 옵션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기 때문에 최강희 감독의 얼굴이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후반전 2분도 아니고 전반전 시작 직후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로페즈의 빈 자리는 너무나 클 수밖에 없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알 아인은 간판 플레이 메이커 오마르 압둘라흐만을 중심으로 카이우와 아스프리야가 양쪽 측면에서 빠르게 공격을 전개했다. 1차전과 마찬가지로 최철순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세워놓고 오마르 압둘라흐만의 움직임을 무력화시키는 주문이 들어갔지만 거기는 그의 앞마당이었다. 전주성과 다르게 오마르 압둘라흐만의 날카로운 공격 전개가 더욱 돋보인 것이다.

이렇게 알 아인 FC의 파상 공격을 잘 막아낸 전북은 30분에 천금의 선취골을 터뜨렸다. 그 주인공이 로페즈 대신 들어간 한교원이어서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정도였다. 이재성이 왼발로 감아올린 오른쪽 코너킥을 향해 뒤에서 달려들어간 한교원이 마크맨 없이 오른발 발리슛을 시원하게 꽂아넣은 것이다. 알 아인 수비수들이 바로 앞 공격수 이동국을 밀어내느라 한교원의 움직임은 전혀 대비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알 아인 FC가 여기서 주저앉을 수 없었다. 4분 만에 그들은 동점골을 만들어내며 전북 현대 수비수들을 크게 흔들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오른쪽 코너킥에 이은 측면 공격 기회에서 카이우의 크로스를 받은 포항 스틸러스 출신 미드필더 이명주가 재치있게 방향을 틀어 전북 골문 왼쪽 구석에 정확히 꽂아넣었다.

더글라스 PK 실축, 10년 만에 전북을 위한 기운 통하다

전북이 이 흐름 속에서 한 골을 더 내주게 된다면 최소한 연장전까지 생각해야 하기에 다시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전반전을 1-1로 끝내야 했던 전북은 41분에 돌이킬 수 없는 수비 실수로 페널티킥을 내주고 말았다. 센터백 김형일이 컨트롤을 잘못하는 바람에 아스프리야에게 공을 빼앗기는 순간 반칙까지 저지른 것이다.

이에 사토 류지(일본) 주심은 휘슬을 길게 불어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그리고 키커는 더글라스로 결정됐다. 누가 봐도 홈 팀 알 아인 FC의 역전 우승 분위기가 무르익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자랑하는 왼발잡이 공격수 더글라스의 11미터 킥은 너무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의 왼발 끝을 떠난 공이 너무 높게 떠서 크로스바를 살짝 넘어간 것이다.

전북으로서는 전반전도 끝나기 전에 경기가 뒤집혀서 후반전 내내 결승골 압박을 엄청나게 느낄 수밖에 없는 흐름이었기에 더글라스의 이 실축은 반전 포인트가 된 셈이다.

양 팀 벤치에서는 불필요한 신경전이 벌어져 전반전 종료 직전에 즐라트코 달리치 알 아인 감독과 박충균 전북 코치가 동시에 퇴장당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전북으로서는 최강희 감독이나 다른 후보 선수들이 이 싸움에 말려들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관중석으로 쫓겨난 달리치 감독은 후반전 중반에 페널티킥을 실축한 더글라스를 빼고 디아키를 들여보내며 역전골을 노렸지만 주장 권순태가 지키고 있는 전북 골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페널티킥을 실축했지만 양발을 모두 잘 쓰는 더글라스가 빠졌기 때문에 전북 수비수들로서는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후반전 추가 시간 4분에 전북 센터백 조성환의 반칙으로 내준 측면 프리킥 상황에서 알 아인 FC의 희망 오마르 압둘라흐만이 날카로운 왼발 감아차기로 직접 골문을 노렸지만 그것도 크로스바를 넘어가는 바람에 홈팬들은 절망의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전북 현대는 2006년에 처음으로 이 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K리그 최고의 클럽 반열에 오른 뒤 10년만에 다시 아시아 최고의 클럽 자리에 올라 제2의 전성기를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 전반전에 페널티킥을 내주며 앞이 캄캄해졌던 수비수 김형일은 2009년 포항 스틸러스 유니폼을 입고 우승 경험이 있기에 더 기막힌 감격을 누리게 된 셈이다.

이제 전북 현대는 FIFA(국제축구연맹) 클럽 월드컵 진출 티켓을 얻었기 때문에 다음 달 11일 오후 4시 일본 오사카에 있는 스이타 시티 풋볼 스타디움에서 클럽 아메리카(북중미 카리브해 클럽 챔피언)와 맞붙게 되었다. 만약 그 경기에서 이긴다면 2015-2016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 팀 레알 마드리드 CF(스페인)와 준결승전(12월 15일 오후 7시 30분, 요코하마)에서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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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2016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2차전 결과(26일 오후 11시 25분, 하자 빈 자예드 스타디움)

★ 알 아인 1-1 전북 현대 [득점 : 이명주(34분,도움-카이우) / 한교원(30분,도움-이재성)]
- 1, 2차전 합산 점수 3-2로 전북 현대 우승

◎ 전북 현대 선수들
FW : 이동국(56분↔김신욱)
AMF : 레오나르도, 김보경(90분↔에두), 이재성, 로페즈(5분↔한교원)
DMF : 최철순
DF : 박원재, 조성환, 김형일, 김창수
GK : 권순태
- 경고 : 한교원(59분), 모흐나드 살렘(60분), 박원재(65분), 김신욱(66분), 오마르 압둘라흐만(88분), 조성환(90+3분), 권순태(90+5분)

◇ AFC 챔피언스리그 역대 우승 팀
2003년 알 아인(UAE)
2004년 알 이티하드(사우디 아라비아)
2005년 알 이티하드(사우디 아라비아)
2006년 전북 현대(한국)
2007년 우라와 레즈(일본)
2008년 감바 오사카(일본)
2009년 포항 스틸러스(한국)
2010년 성남 천마(한국)
2011년 알 사드(카타르)
2012년 울산 현대(한국)
2013년 광저우 에버그란데(중국)
2014년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호주)
2015년 광저우 에버그란데(중국)
2016년 전북 현대(한국)
축구 챔피언스리그 전북 현대 우승 한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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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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