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로 태어났지만, 남자로 살기를 바라는 그.

여자로 태어났지만, 남자로 살기를 바라는 그. ⓒ 오퍼스픽쳐스


여자의 몸을 가졌지만, 남자로 살기를 꿈꿔온 열여섯 레이(엘르 패닝 분). 그는 엄마 매기(나오미 왓츠 분)와 외할머니 돌리(수잔 서랜든 분)의 지지를 등에 업고 성전환을 위한 호르몬 요법을 받기로 한다. 드디어 남자가 될 수 있단 생각에 한껏 들뜬 레이는 차근차근 남자로 살아갈 준비를 하지만, 성전환을 위해서는 과거 가족을 떠난 아빠 크렉(테이트 도노반 분)의 서명이 필요하다는 난관에 부딪힌다. 이에 매기는 크렉을 찾아가 서명을 요구하고, 이 과정에서 레이는 자신의 가정사에 숨겨졌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 <어바웃 레이>는 성 소수자의 이야기를 청소년기의 혼란과 가족애 사이에 녹여낸 작품이다. 트랜스젠더 레이와 남편을 잃은 싱글맘 매기, 그리고 레즈비언인 외할머니 돌리와 그의 연인 프랜시스(린다 애몬드 분)까지. 영화는 다양한 성 정체성을 대변하는 3대 모계 가족의 서사를 통해 이 시대의 성 소수자의 현주소를 세심하게 그린다.

 <어바웃 레이>는 정체성에 관해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어바웃 레이>는 정체성에 관해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 오퍼스픽쳐스


과거에는 '라모나'였던 주인공 레이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과정은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다. 이미 네 살 때부터 자신이 남자라는 걸 '알았던' 레이의 확고한 결심이 외부 세계와 부딪치는 에피소드들은 때론 아프게 다가온다. "여자를 좋아하는 건 똑같은데 레즈비언으로 살면 되지 않느냐"는 외할머니, 레이의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 없는 매기와 크렉의 입장은 성 소수자 가족의 미묘한 입장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레이를 향한 이들의 사랑이 불안에서 믿음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레이의 홀로서기와 맞물려 잔잔한 감동을 자아낸다.

주인공 레이를 맡은 배우 엘르 패닝의 연기는 영화를 견인하는 주된 동력이다.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쫄래쫄래 걷는 걸음걸이나 내내 입을 살짝 벌려 멍해 보이기까지 하는 표정. 여기에 '쩍벌' 자세로 소파에 앉는다거나 제모하지 않은 겨드랑이털을 그대로 내보이는 그의 모습은 누가 봐도 자연스럽다. 그는 영화를 준비하면서 또래 트랜스젠더들을 만나 자문하고 그들이 쓴 글과 촬영한 영상을 보면서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어바웃 레이>를 '어떤 장르'의 영화로 특정하기는 어렵다.

<어바웃 레이>를 '어떤 장르'의 영화로 특정하기는 어렵다. ⓒ 오퍼스픽쳐스


레이를 중심으로 벌어지던 이야기가 영화 중반 이후 매기의 서사로까지 확장되는 전개는 <어바웃 레이>의 화룡점정이라 할 만하다. 아버지를 잃고 남편마저 잃었던 매기가 레이를 통해 외면했던 자신의 치부와 마주하는 후반부 에피소드는 예상치 못한 드라마를 선사하며 눈물샘을 자극한다. 엄마의 집에서 '얹혀' 살아온 매기가 새집을 마련하고, 이 과정에서 레이의 선택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그 자신 또한 엄마로서 한층 성장하는 전개. 이는 성 소수자의 딸이자 엄마, 또한 한 여성의 성장 드라마로써도 유효하다.

결국 <어바웃 레이>는 단순히 '퀴어 영화'라고 정의할 수 없는 작품이다. 극 중 레이가 겪는 '성 정체성 혼란'이 여느 청소년들이 겪는 '질풍노도의 시기'처럼 자연스럽게 다뤄지고, 덕분에 영화는 이성애자 관객에게도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이 영화를 두고 가족 영화라거나 10대 청소년의 성장을 다룬 '틴에이저' 영화라고 할 수도 있고, 알지 못했던 가족을 찾아 떠나는 '로드 무비'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유다. 타인을 향한 신뢰와 이해, 자기애가 전제될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진짜 자립. 아무리 특별하다 해도 결코 혼자일 수 없는 우리 개개인에게 <어바웃 레이>가 남기는 메시지는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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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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