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무리뉴와 아르센 벵거, 프리미어리그(EPL)의 두 앙숙이 일년 만의 재회에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무리뉴 감독이 이끄는 맨유와 벵거 감독의 아스널은 지난 19일(이하 한국시간) 영국 맨체스터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2016-2017 프리미어리그' 12라운드 맨유와의 경기에서 1-1로 비겼다.

무리뉴와 벵거 감독은 현재 EPL를 대표하는 명장이자 자타공인 견원지간이기도 하다. 두 감독의 악연은 무려 12년 전부터 시작됐다. 벵거 감독은 1996년부터 아스널의 지휘봉을 잡아 현역 EPL 최장수 감독이고, 무리뉴 감독은 2004년부터 첼시의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아스널과 첼시가 EPL 무대에서 우승을 놓고 경쟁하는 사이가 되면서, 성격에서 축구철학-지도방식 등 모든 면이 상이한 두 사람은 물과 기름처럼 경기 내외적으로 여러 차례 부딪히며 치열한 신경전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두 감독의 대결은 라이벌이라기 보다는 천적 구도에 가까웠다. 사실상 무리뉴 감독이 사실상 벵거 감독에게 일방적으로 우위를 점했다. 무리뉴 감독은 2015년까지 첼시 지휘봉을 잡고 벵거 감독의 아스널에게 통산 8승 6무 1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뒀다. 벵거 감독은 유독 무리뉴 감독만 만나면 힘을 쓰지 못했다. 지난 2015년에야 벵거 감독이 무리뉴의 첼시에게 첫 승을 거두기는 했지만 당시는 리그 경기가 아니라 커뮤니티 실드(리그 우승팀VS FA컵 우승팀 간 단판 승부)였다.

무리뉴가 벵거에게 선사한 굴욕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독설로 유명한 무리뉴의 혀에 제일 많이 수모를 당한 인물이 바로 벵거였다. 무리뉴는 벵거가 자기 팀보다 남의 팀 일에 더 관심이 많다며 '관음증 환자'라고 조롱한 일이 있으며 벵거의 아스널이 2004년 이후 오랫동안 리그 우승에 인연이 없는 것을 비꼬아 '실패 전문가'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에 벵거는 "감독이라면 우승트로피보다 윤리적인 책임감이 더 중요하다"며 불쾌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벵거 감독의 아스널이 리그 무관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이 무리뉴 감독이 첼시에 부임한 2004년 직후부터다. 이후 무리뉴 감독이 첼시와 인터밀란, 레알 마드리드를 거치며 무수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동안 벵거 감독은 FA컵 우승만 2회 들어 올렸고 리그에서는 무관에 그쳤다. 심지어 벵거 감독은 2014년 3월23일 첼시 전에서 무려 0-6의 참패를 당한 적이 있는데 이 경기는 하필 벵거 감독이 아스널 지휘봉을 잡고 통산 1천 번째 경기였다. 축구로도 독설로도 벵거 감독은 무리뉴를 좀처럼 당해낼 수 없었다.

잔뜩이 약이 오른 벵거 감독은 14/15시즌 리그 경기 도중에는 터치라인에서 설전을 벌이다가 무리뉴 감독을 밀쳐내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이듬해 아스널의 승리한 커뮤니티 실드에서는 두 사람이 악수조차 하지 않고 서로를 외면하는 모습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만큼 두 감독 간 감정의 골이 얼마나 깊어졌는지를 보여준 장면이었다.

하지만 올시즌 두 감독의 관계는 다소 달라질 조짐을 보였다. 지난해 첼시에서 성적부진으로 경질된 무리뉴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맨유의 지휘봉을 잡으면서 특유의 거친 독설이나 상대팀과의 신경전을 상당히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양 팀의 대결을 앞두고도 자연히 두 감독의 재회가 관심을 모았지만 무리뉴와 벵거 감독 모두 '팀 대 팀의 대결'을 강조하며 서로에 대한 언급을 아꼈다. 심지어 경기 전후로 자연스럽게 서로 악수를 나누는 모습도 보였다.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하지만 경기 결과로는 두 감독 모두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일단 벵거 감독은 이번에도 무리뉴와 올드 트래포드 징크스를 깨지 못했다. 객관적인 전력과 분위기상 아스널의 우위가 예상되었지만 경기 내내 주도권을 내준 끝에 후반 23분 후안 마타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패배 위기에 몰렸다. 다행히 후반 막판에 터진 올리비에 지루의 동점골에 힘입어 힘겹게 무승부를 거두는데 만족해야했다.

벵거 감독은 올드 트래포드 리그 원정 경기에서 10경기 연속 무 승(3무 7패)에 그쳤다. FA컵에서는 맨유를 올드 트래포드에서 이긴 적이 있지만 리그로만 국한하면 무려 10년째 승리를 맛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무리뉴와의 상대 전적도 1승 7무 8패를 기록했고 심지어 리그에서의 무승(6무5패) 기록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날 경기 흐름만 놓고 보면 그나마 리그 11경기 무패행진을 지킨 게 불행 중 다행일 정도였다.

무리뉴 감독도 마음이 썩 편치 않을 결과였다. 최근 심한 기복으로 좀처럼 상승세를 타지 못하고 있는 맨유로서는 승점 3점이 절실했다. 주포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까지 빠진 상황에서 대어 아스널을 잡았다면 맨유로서는 분위기 전환의 기폭제가 될수 있었다. 하지만 막판 뒷심부족으로 다 잡은 승리를 놓치면서 6위에 머문 맨유는 다시 한 번 4위 아스널과의 격차를 줄이는데 실패했다. 현재 양 팀의 승점은 6점차다. 무리뉴 감독은 벵거 감독에게 여전히 강한 면모를 보인데 만족해야했다.

맨유 입장에서 더욱 달갑지 않은 기록은 강팀을 상대로 좀처럼 승리를 챙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 시즌 현재 맨유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 중인 상위권 팀(첼시, 맨시티, 아스널, 리버풀)들과의 대결에서 맨유는 고작 2무 2패에 그치고 있다. 최근 맨시티에게 1승을 거두기는 했지만 리그가 아니라 컵대회였고 그나마도 1.5군을 상대로 겨우 신승했다. 현재까지 성적만 봤을대 무리뉴 감독도 실패한 전임자인 판 할이나 모예스와 비교해도 다를 게 없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무리뉴 감독의 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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