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의 고 노무현 대통령 묘소 평장의 묘소는 스스로 늘 권위를 내려놓고자 했던 고인의 신념과 부합한다.

▲ 봉하마을의 고 노무현 대통령 묘소 평장의 묘소는 스스로 늘 권위를 내려놓고자 했던 고인의 신념과 부합한다.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배급위원회


어둠 끝에 빛의 계절이 오는 것일까.

겨울로 가는 가을, 스산해진 날씨만큼이나 요즘의 시국은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계절이 아닐까. 온 나라를 흔들고 있는 부패한 권력자들의 비리에 절망하고 중고생까지 거리로 나와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모습에 자괴감과 함께 희망을 본다. 이런 뒤숭숭한 계절에 '노무현'을 주제로 한 영화 한 편이 황량해진 내 마음의 발길을 끌었다.

영화는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의 첫 부분을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 앞에 아무것도 없었다." 영화 제목은 아마도 디킨스의 작품에서 차용한 듯 보인다. 이 작품은 위기에 처한 개개인이 어떻게 하면 가치 있게, 인간답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의 문제를 제기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디킨스가 제기한 문제 역시 민주주의의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에게도 주어진 질문일 것이다.

서로 다른 세 개의 에피소드

선거유세를 하고 있는 노무현 후보 그가 꿈꾼 세상은 서민들이 꿈과 희망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 선거유세를 하고 있는 노무현 후보 그가 꿈꾼 세상은 서민들이 꿈과 희망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배급위원회


영화의 축은 노무현의 국회의원 출마 당시 영상과 만화 작가였던 백무현의 총선 출마 과정 영상 그리고 고인을 추억하는 사람들의 술자리 대화이다.

노무현의 정치경력이야 대충 알고는 있겠지만, 노무현은 1981년 부림사건의 변론을 맡은 것을 계기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이를 눈여겨본 김영삼에 의해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이후 제5공화국 비리 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선정되어 매서운 추궁으로 유명해지면서 청문회 스타로 거듭나게 되었고 3당 합당을 야합이라면서 거부하고 김영삼의 곁을 떠나면서 소신 있는 정치인으로 주목받는다. 그러나 지역주의의 벽에 부딪혀 낙선을 거듭하며 험난한 정치인생이 펼쳐지는데 영화는 그중 16대 총선 부산 북구-강서구 을에 출마해서 선거운동을 하던 당시 영상을 영화의 핵으로 놓고 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노무현은 사인해달라고 조르는 초등학생들에게도 애들의 눈높이에 맞춰 몸을 낮추고 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진솔한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불의한 강자에겐 더 강하게 질타하고 약자에겐 자신을 더 낮추고 권력의 편보다는 서민의 편에서 서민들의 꿈과 희망이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던 노무현. 결국, 그는 낙선하지만, 지역주의를 깨기 위한 그의 도전 이력이 오히려 주목을 받게 되었고 이때부터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그는 정말 바보였던가.

또 하나의 무현, 시사만화가 출신의 백무현은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라남도 여수시 을 선거구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국민의당 주승용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총선 유세 중에도 위암 투병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결국 5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백무현은 사실상 이 영화의 제2의 주인공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도전'이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노무현 후보 선거운동 당시의 진솔한 모습이 친근감을 더해준다.

▲ 아이들과 함께하는 노무현 후보 선거운동 당시의 진솔한 모습이 친근감을 더해준다.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배급위원회


영상에서 노무현은 말한다. "호남의 지역감정이 영남의 지역감정과 같은 것이 아니죠. 부당한 권력으로 광주시민들을 그렇게 죽였는데 호남이 뭉친다고 우리도 뭉치자는 것은 안 될 말이죠. 그래서 영남이 그 지역주의를 먼저 깨야 합니다." 그가 왜 편한 길을 선택하지 않고 민주당 후보로 부산에 출마했는지 말해주는 대목이다. 지역주의를 깨지 못하고 어떻게 통합의 지도자가 될 수 있겠는가. 그는 매번 이길 수는 없는 것이라며 이번에 떨어졌으니 다음 선택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반대자들도 안고 가는 것이 정치인의 도리라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지도자로 선택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끝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원칙을 지키는 그런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슬퍼서 울고 억울해서 울고 안타까워서 우는 그들은 살아서 치욕을 견디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바른 역사란 인권을 향상시키는 것이며 정치인의 가장 큰 일은 서민들이 꿈과 희망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도전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화하지 않습니다." (노무현)

희망은 있는 것일까

고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시민 노무현의 갑작스런 죽음은 국민들에게 허탈감과 슬픔을 주었다.

▲ 고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시민 노무현의 갑작스런 죽음은 국민들에게 허탈감과 슬픔을 주었다.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배급위원회


노무현을 지키지 못한 것은 결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낙관한 우리 자신이 아니었을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지나 우리 국민의 절반 이상이 '명박근혜' 정권을 탄생시켰다. 그들의 정체성은 민주주의의 후퇴였고 유신 시대로 회귀하는 것이며 정경유착에 공권력의 남용과 무능한 정치의 끝을 보여주었다. 잘못된 선택 한 표가 온 나라를 힘들게 한다. 우리는 지도자를 선택할 때 그의 빈말에 현혹되지 말고 그가 진정성 있는 사람인지 살아온 이력을 철저히 검증해야 할 것이다.

감독은 이 영화를 찍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다큐멘터리영화의 미덕은 가공된 연출이 아닌 과거의 진실을 통해 현재 진행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김희로 시인은 "노무현은 살아 있는 것이다. 죽음 그 자체도 역사를 진보시키는 에너지로 봐야 한다."며 미래의 희망을 말한다. 언젠가 봉하마을을 찾았을 때 생전에 그가 오르던 길을 걸어본 적이 있었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는 묘비명의 유언이 오늘 이 비루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주는 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노무현을 추억하고 있는 김희로 시인 김희로 시인은 "노무현은 살아 있다며 죽음 그 자체도 역사를 진보시키는 에너지로 봐야 한다" 말한다.

▲ 노무현을 추억하고 있는 김희로 시인 김희로 시인은 "노무현은 살아 있다며 죽음 그 자체도 역사를 진보시키는 에너지로 봐야 한다" 말한다.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배급위원회


"사람들은 남들에게 적응하고, 희생하고, 미래의 건설에 참여하기를 기대하면서 한편 스스로는 그 과정에 전혀 참여하지도 않고, 인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하여 그 어떤 책임도 개인적으로 지지 않는 것이다." -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봉인된 시간> 중에서

카랑카랑한 노무현의 목소리가 무덤에서부터 들려온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익숙한 목소리도 들려온다. 전인권의 '걱정 말아요' 그렇다, 걱정하지만 말고 희망을 품어야 한다. 현실이 아무리 추악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면 아침을 향해 함께 걸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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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리뷰어. 2013년 계간 <문학들>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명왕성 소녀>(2023), <물 위의 현>(2015), 캘리그래피에세이 <캘리그래피 논어>(2018), <캘리그래피 노자와 장자>, <사랑으로 왔으니 사랑으로 흘러가라>(2016)를 펴냈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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