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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길에서 만난 네팔 아이들. 두 손 모아 인사하며 배시시 웃고 있다.
 시골 길에서 만난 네팔 아이들. 두 손 모아 인사하며 배시시 웃고 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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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모 붓다 사원을 빠져나와 네팔 사내 모한의 모터사이클 뒷좌석에 바싹 붙어 앉아 작은 도시로 나섰다. 모한이 극구 만류했지만 모터사이클에 연료를 가득 채워주고 식당을 찾아 나섰다. 모한에게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 주기 위해서였다.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도시에는 식당들이 늘어서 있는 질펀한 시장이 있었다. 때마침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식당들마다 앉을 자리가 없을만치 북적거렸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한정식이라 할 수 있는 다양한 네팔 요리를 시켰다. 인도와 네팔을 떠돌아다니면서 처음으로 접하는 푸짐한 상차림이었다. 하루 한두 끼로 식사를 하던 나로서는 이틀 치 먹을 것을 한꺼번에 주문한 셈이었지만 모한에게 조금이라도 신세 갚음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여기서 한 시간 반 정도 달리면 중국 국경을 넘을 수 있습니다."

모한은 중국과 네팔의 국경 마을인 '다터파니 카싸'라는 곳까지 가자고 한다. 국경 넘기도 수월하다고 한다. 네팔인들은 중국 영토를 하루 동안 단돈 5루피면 다녀올 수 있다는 것이다. 본래 티베트 땅이었던 그곳에는 티베트인들의 상점이 널려 있다고 한다.

"외국인들도 쉽게 오고 갈 수 있습니까?"
"아니요. 외국인들은 비자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네팔인처럼 생겼기 때문에 하루 정도는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수 있겠네요. 인도에서 네팔로 들어오기 전, 다르줄라라는 인도 국경에서도 그랬습니다. 그곳은 외국인들이 들어갈 수 없는 국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국경 초소 군인들이 나를 네팔이나 인도 사람으로 착각하고 그냥 들어가라고 하더군요."
"나하고 함께 들어가면 국경 넘기가 더 수월할 것입니다."
"좋습니다. 중국 국경은 여유있게 내일 아침에 갑시다. 오늘은 한국인들을 만나보기로 하고요."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모터사이클을 몰아 한국인이 네팔 사람들과 함께 양파 농사를 짓고 있다는 마을로 들어섰다. 어제 저녁 모한의 고향마을 사람들로부터 근동 마을에 한국인이 대규모 양파 농사를 짓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던 것이다.

모터사이클을 적당한 곳에 세워 놓고 한국인이 머물고 있다는 숙소를 찾아 나섰다. 마을 입구에서 남매로 보이는 어린아이 둘이 낯선 이방인을 환한 웃음으로 반겨준다. 내가 합장을 하며 '나마스테' 인사를 건네자 녀석들도 배시시 웃으며 합장을 한다.

손모내기가 한창인 네팔 시골 마을.
 손모내기가 한창인 네팔 시골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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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짓기 위해 흙벽을 쌓고 있는 네팔 시골 사람들. 집짓는 일이나 손모내기 등을 서로 품앗이로 한다.
 집을 짓기 위해 흙벽을 쌓고 있는 네팔 시골 사람들. 집짓는 일이나 손모내기 등을 서로 품앗이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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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양파 농사를 짓고 있다는 마을은 꽤 넓게 펼쳐져 있었다. 들녘에서는 손모내기가 한창이었고 어느 곳에서는 집을 짓기 위해 흙벽을 쌓고 있었다. 나의 어린 시절 우리 고향 마을에서도 그랬듯이 네팔 농촌에서는 여전히 모내기나 집을 지을 때 서로가 품앗이로 일을 돕고 있다고 한다.

모한이 길거리에서 만나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었지만 한국인이 머물고 있다는 숙소는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다리품을 팔다가 우리는 작은 구멍가게 앞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모한이 뭔가를 주문했는데 상점 주인이 콜라 두 병을 가지고 나왔다.

"나는 콜라를 마시지 않습니다. 생수를 주세요."

모한에게 '나는 콜라를 마시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주인이 벌써 병뚜껑을 따고 말았다. 그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콜라를 마시게 됐다. 콜라는 달콤했다. 갈증이 가시는 듯했다. 하지만 다 마시고 10여 분도 채 안 돼 더 큰 갈증이 몰려왔다. 이래서 나는 콜라를 마시지 않는다. 콜라와 같은 탄산음료를 마시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저기 마을을 들쑤시고 다니며 수소문 끝에 한국인이 살고 있다는 원룸 형태의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모한의 고향 마을까지 소문이 날 정도로 대규모로 양파농사를 짓고 있다는 한국인, 그런 한국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인지 무척 궁금했다. 작심하고 그들을 취재하고 싶었다.

이곳 네팔 사람들에게 돈깨나 있는 한국인 사업가로 알려져 있는 그는 50대 후반으로 보였다. 그의 방 안에는 한국의 교회 달력이 걸려 있었다. 순간 네팔 사람들의 일손을 빌려 대규모 양파 농사를 짓고 있는 이유가 따로 있을 것이라는 불순한 예감이 들었다.

"교회를 다니시나 보네요?"
"아, 저는 목사입니다."
"아, 목사님이시군요. 두 분이 생활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럼 그 분도 목사님이십니까?"
"그 분은 전도사인데 잠시 한국에 들어가 있습니다."
"양파 농사를 대규모로 짓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짓고 있습니까?"
"이제 시작 단계입니다."

이제 양파 모종을 옮겨 심은 지 2주 정도 됐다는데 무농약으로 양파를 재배한다고 한다. 미생물을 이용한 자연농법이라고 한다.

"저도 한동안 자연농법에 가까운 농사를 지어왔습니다. 한국에서는 양파 농사로 수익을 내려면 만만치 않습니다. 더구나 네팔에서 자연농법으로 수익을 올리기가 쉽지 않을 것인데요..."
"우리는 돈을 벌겠다고 이 사업을 벌이는 게 아닙니다."

이들에게 수익은 크게 문제가 되질 않아 보였다. 선교할 목적으로 양파 농사를 짓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교회에서 이 마을로 들어와 활동하는 목회자들은 모두 네 명. 지금은 그 중에 본인 한 사람만 남아 있다고 한다. 잠시 한국에 들어가 있는 나머지 세 사람도 다시 들어올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인 목사는 이 마을에 교회를 세우고 싶어했다.

"이 마을 주변에 꽤 오래된 힌두 사원이 자리 잡고 있더군요. 네팔 사람들 대부분이 아주 오랫동안 힌두교를 믿어 오고 있어서 선교가 쉽지 않을 것인데요."
"네팔 농촌은 아주 가난합니다. 가난한 농촌 사람들을 돕다보면 자연스럽게 선교가 될 것입니다. 예전처럼 무조건 선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이 네팔 사람들을 돕는 구나, 기독교가 참 좋구나 느끼게 될 것입니다."

모한의 얘기로는 이들 한국 사람들이 마을에 거금을 내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들을 좋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선교에 앞서 자본으로 마을 사람들의 환심을 산 것이었다. 선교 방식이 예전과 사뭇 다르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천국으로 가는 길', 성경을 앞장세우고 그 뒤에 권총을 숨겨 들어와 한 민족을 지배해 왔다면 지금은 자본을 앞장세워 성경을 숨기고 들어와 자신들의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것이었다.

한국인 목사가 양파농사를 시작한 네팔 마을에 들어서 있는 수백 년 된 힌두사원의 석상. 다른 종교를 자신의 종교로 개종시킨다는 것은 다른 종교 사원을 허물어 버리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인 목사가 양파농사를 시작한 네팔 마을에 들어서 있는 수백 년 된 힌두사원의 석상. 다른 종교를 자신의 종교로 개종시킨다는 것은 다른 종교 사원을 허물어 버리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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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네팔 시골마을 풍경. 힌두교인들이 대부분인 마을에 티베트 불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색깃발, 다르촉이 걸려 있다.
 한적한 네팔 시골마을 풍경. 힌두교인들이 대부분인 마을에 티베트 불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색깃발, 다르촉이 걸려 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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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종교든 사랑과 자비를 강조한 진리의 말씀이 있고 사랑과 자비와 연계된 사후세계가 있다. 생활 속에서 그 진리의 말씀을 어떻게 실천하는가가 중요하다. 가난한 사람들의 종교를 개종시킨다는 것은 산과 들에서 비바람 맞고 자라는 들꽃이 안쓰러워 자신의 방식대로 안락한 울타리에 옮겨 심어 놓고 물과 거름을 주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더 이상 그에게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벼운 인사말과 함께 그의 숙소를 빠져 나왔다.

어느 민족이든 종교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 하지만 어느 한 민족이 수천 년, 수백 년 믿어오고 있는 종교를 자본으로 개종시켜보겠다는 생각이 마뜩찮았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자본을 앞세워 자신들의 종교를 주입시키고 개종시키고자 한다면 마을 사람들이 서로 돕고 살아왔던 품앗이가 깨져버리고 그로인해 반목과 갈등이 생길 것이다. 그것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했던 예수님의 뜻이 아닐 것이다.

돈과는 상관없이 나를 환대해 주고 있는 네팔 사내 모한에게 미안해 얼굴이 화끈거렸다. 돈을 앞세워 네팔 사람들의 환심을 사고 있는 한국인 목사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한국인 목사가 묵고 있는 숙소를 빠져 나오면서 모한이 내게 물었다.

"무슨 얘기를 나눴습니까?"
"저들이 어떻게 이 마을에 들어왔는지 그냥 가벼운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 마을에 기독교인이 있습니까?"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그는 기독교 목사랍니다."
"교회라도 세울 거랍니까? 이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수 백 년 동안 힌두교와 불교를 믿고 있습니다. 기독교 교회를 세우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종교가 돈으로 사람들 환심을 사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수께서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부자가 천국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고 하질 않았던가. 자본과 진정한 행복은 함께 가질 않는다. 탐욕스런 자본에 찌들수록 행복은 저 멀리로 달아나기 마련이다.

나의 결혼생활이 그랬다. 200만 원짜리 빈집을 고쳐 소박한 삶, 산골마을에서 가난한 삶을 살아갈 때는 아이들의 웃음이 가실 날 없을 정도로 나름 행복했었다. 하지만 바닷가에 근사한 집을 짓고 나서의 생활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그녀는 새 집에 맞춰 물질적으로 좀 더 갖춰놓고 누리며 살겠노라 돈벌이에 매달렸고 남편인 나에게도 그러길 바랐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갈등과 반목이 생겼고 집안에 웃음이 사라져 갔다. 그 다툼 속에서 결국 그녀는 내게 이혼을 요구했던 것이다.

자본은 내가 조금 전에 갈증을 달래겠다며 마신 달콤한 콜라와 같다. 잠시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지만 또 다른 갈증을 부르기 마련이다. 그 달콤한 유혹에 빠지게 되면 콜라가 몸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빤히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즐기게 된다. 콜라로 갈증을 근원적으로 해소할 수 없듯이 자본으로 종교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영혼의 안식을 찾을 수 없다.

정전이 되자 촛불을 켜놓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모한.
 정전이 되자 촛불을 켜놓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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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한의 농막으로 돌아와 감자볶음과 계란 볶음밥으로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데 정전이다. 어제와 마찬가지다. 수시로 정전이 되다보니 집안의 필수품 중에 하나가 양초다. 네팔의 시골은 북인도 보다 정전이 더 심하다. 툭하면 정전이다. 하지만 한두 시간 지나면 다시 전기가 들어온다.

우리는 집 마당으로 나와 촛불을 켜놓고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했다. 모한이 집 주변의 나무에서 따왔다는 차 잎을 우려 마시고 돗자리를 펴고 누웠다. 촛불마저 잠재운 밤하늘에는 별빛이 가득하다. 은하수도 보인다.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온다. 히말라야 산맥들로 둘러싸인 북인도 문시아리의 불 꺼진 저녁이 그랬듯이 정전과 함께 집 밖으로 나온 마을 사람들의 사소한 소리들이 귀를 간지럽게 한다.

별빛 가득한 밖으로 나와 두런두런 얘기하는 소리, 아이들이 해맑게 웃는 소리들이다. 도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참으로 평화로운 소리다. 그 소리를 들어가며 북두칠성을 찾아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저기 저 북두칠성 아래 어린 시절 고향마을이 있다. 어린 시절 한여름 밤 동네 사람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멱을 감기 위해 냇가로 나서는 상상을 한다. 냇가로 향하는 동네 오솔길 숲에서 별빛처럼 반딧불이들이 무수히 날아오르곤 했다.

나는 문득 세상 사람들을 향해 외치고 싶어진다. '하루에 딱 한 시간만이라도 가족들이 모이는 저녁에 자동차를 비롯한 모든 불빛들을 멈추고 정전의 시간을 가져 보라. 오던 전기가 끊어진 정전(停電)이 되면 일시적으로 전투를 중단하는 정전(停戰)처럼 평화가 찾아 올 것이다. 두런두런 가족들과 혹은 이웃들과 담소를 나누는 행복한 소리들이 저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평화롭게 찾아올 것이다.'

정전(停電)의 시간은 함께 누리는 시간이다. 하지만 전기가 24시간 가동되면 혼자서 누리게 되는 시간이 더 많다. 각자 제 방에서 전투적으로 인터넷 등에 빠져 있거나 제 할 일에만 몰두할 것이다. 한여름 밤에 정전이 되면 누구는 냉장고가 다 녹아내린다며 난리를 칠 것이다. 모한의 고향 마을의 여름은 한국의 여름 날씨보다 덥다. 하지만 두터운 흙벽으로 세운 집안으로 들어갈수록 시원하다. 냉장고 없는 가정이 더 많다. 냉장고에 크게 의지하지 않는다. 냉장고가 있어도 정전으로 물러터질 만큼 꽉꽉 채워놓고 살지 않기 때문이다.

24시간 전기를 펑펑 써대기 위해 핵발전소를 만들겠다는 것은 밤새 닭장에 불 밝히고 알을 낳는 닭처럼 살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핵 마피아들이 뒷짐 지고 서서 자본의 알 낳는 일을 감시하겠다는 것이다.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위험천만한 핵발전소는 인간 스스로를 망치는 욕망의 덩어리다. 좀 더 많은 자본의 알을 낳겠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인류를 위협하는 핵발전소는 사라져 갈 것이다.

이곳 모한네 고향 마을처럼 전기가 수시로 나가는 지역에서 손으로 쟁기질 하는 사람들을 미개한 삶으로 몰아붙인다면 그만큼 미개하고 우매한 짓은 없을 것이다. 농기계 대신 사람의 손으로 농사를 짓는 가난한 사람들의 땀방울만큼 가진자들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 가난한 네팔의 농민들에게 미개하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감사하다고 말해야 한다.

누구나 화석연료를 필요로 하는 농기계나 전자제품을 사용한다면 지구의 환경변화는 더욱더 극심할 것이고 지구의 생명은 좀 더 단축될 것이다. 그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것은 지구의 생명을 좀 더 연명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모한의 고향 마을 사람들은 수시로 찾아오는 정전의 환경 속에서 손으로 쟁기질을 해가며 가난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지만 밤하늘에 별을 보며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나는 모한의 고향 마을에서 사람들이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소리, 웃음소리를 들어가며 아까 만난 한국인 목사를 떠올렸다. 그에게 이들의 종교는 바로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이들에게 자본을 앞세워 이들의 종교를 개종시키려 한다면 이들의 웃음을 빼앗아가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어떤 이들은 우물 안에 신을 만들어 놓고 그 우물 안에서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신에 구속당하고 살아간다. 다른 사람들마저 자신들의 우물 안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삿된 수행자들 또한 그 우물 안에서 온갖 미신으로 신도들을 현혹시키고 겁박해 가며 권력을 행사한다. 그들은 권력자를 닮아 있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신은 통제가 손쉬워 정치 권력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신이다. 진정한 예수나 붓다를 만나려면 그 우물 밖으로 나와야 한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나란히 누워 있던 모한이 내게 불쑥 제안을 했다.

"네팔어 모르죠? 나도 한국어 몰라요. 간단한 한국어하고 네팔어 서로 배우면 어떻겠습니까?"
"좋은 생각입니다."

모한의 고향 마을에는 다양한 부족이 살고 있는데 그들은 각자 '네팔리', '네와리', '다방', '그릉', '라이' 등의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서로 소통하는데 별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가 내게 가르쳐준 언어가 이 중에 어느 언어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는 서로 간단한 모국어를 교환했다. 그와 나는 서로가 발음한 것을 메모장에 받아 적었다. 그의 발음을 정확하게 적었다고 볼 수 없지만 내 메모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안녕하세요'는 '만파알라'. '좋아요'는 '요코말라'. '어디가십니까?'는 '거나와네우'. '나는 카투만두에 갑니다'는 '지 카투만두와네고'. '어디서 왔습니까?'는 '거나워야고'. '어떤 음식을 좋아합니까'는 '천타수네여'. '배고프세요?'는 '네피티아떨라'. '미안합니다'는 '지따체마얀나비아'. '언제 갑니까'는 '고블레와네고'. '나는 오늘 가려고 합니다'는 '니누니파와네고'...

나는 그와 서툰 대화를 주고받아 가며 문득 세상의 모든 종교들이 이처럼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 배우고 가르쳐 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자신의 종교, 자신의 언어만을 고집한다면 소통이 될 수 없다. 인도와 네팔에서는 '당신의 신에게 경배를 드린다'는 의미가 담긴 인사말 '나마스테'가 있다.

다른 종교를 자신의 종교로 개종시키겠다는 것은 '당신의 신은 엉터리니 오로지 내가 믿는 신에게만 경배하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세상의 다툼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다른 종교를 개종시키려 하는 저들이 배워야 할 것은 바로 '나마스테' 인사말처럼 다른 종교의 신을 존경하는 마음이다. 사랑과 평화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모한네 고향 마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들꽃. 들꽃은 제 자리에 있어야 아름답다. 다른 종교를 자신의 종교로 개종시키려는 것은 비바람에 노출되어 있는 들꽃이 안쓰럽다하여 자신의 방식대로 화단에 옮겨 심어놓고 물과 거름을 주겠다는 짓이나 다름없다.
 모한네 고향 마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들꽃. 들꽃은 제 자리에 있어야 아름답다. 다른 종교를 자신의 종교로 개종시키려는 것은 비바람에 노출되어 있는 들꽃이 안쓰럽다하여 자신의 방식대로 화단에 옮겨 심어놓고 물과 거름을 주겠다는 짓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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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국 목회자, #종교 개종, #정전, #사랑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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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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