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형제가 집 밖에 나가지 않은 게 자의적 선택이 아니라 부모의 교육 방침 때문이란 점은 의미심장하다.

여섯 형제가 집 밖에 나가지 않은 게 자의적 선택이 아니라 부모의 교육 방침 때문이란 점은 의미심장하다. ⓒ (주)더쿱


2010년, 뉴욕 맨하탄 한복판에 수상한 아이들이 나타난다. 머리는 미용실에 간 적이라곤 없는 것처럼 워낙 길어 허리까지 닿고, 어딘가 촌스러운 흰 셔츠와 검은 슈트, 선글라스는 영화 <맨 인 블랙>의 MIB요원이나 밴드 비틀즈 멤버들을 연상시킨다. 겁먹은 듯 하면서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10대 중후반의 여섯 소년. 우리 나라로 치면 청학동에서 나고 자란 뒤 처음 서울에 올라온 아이들이나 그런 모습일까.

영화 <더 울프팩>은 짧게는 11년에서 길게는 18년까지 외부와 단절된 채 뉴욕의 자그마한 아파트에서만 지내온 여섯 형제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프로듀서이자 연출자 크리스탈 모셀 감독은 막 세상에 나온 형제를 우연히 만나 그들의 사연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 작품을 제작하게 됐다. 감독은 5년여의 시간동안 형제와 함께하며 그들의 삶을 역추적했고, 이를 통해 부모의 존재나 외부와 단절된 생활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까지 깊숙이 다룰 수 있었다.

여섯 형제가 집 밖에 나가지 않은 게 자의적 선택이 아니라 부모의 교육 방침 때문이란 점은 의미심장하다. 영화는 "사회에 오염되어서는 안 된다"며 가족 이외에 다른 사람들과 말을 섞지 않게 한 아버지의 확신 섞인 교육관을 드러낸 뒤 여기에 반항해 드디어 집 밖으로 나서는 형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형제가 사춘기를 지나는 시점에 스스로에게 물음표를 던지며 세상과 마주하는 전개는 다행스럽지만, 형제가 겪은 어린 시절의 공백을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단 사실 만큼은 못내 뼈아프게 남는다.

 아버지와 화해하는 매개체 또한 영화다.

아버지와 화해하는 매개체 또한 영화다. ⓒ (주)더쿱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실질적으로 감금 상태였던 형제의 과거를 단순히 공백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아버지가 형제를 집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대신 수천 편에 이르는 영화 DVD를 선물하고, 결국 이것이 형제가 세상을 배우는 중요한 기준이 된 점을 조명한다. 영화 <모히칸족의 최후>(1936)를 통해 야생을 경험하고 <대부>(1972)와 <좋은 친구들>(1990)에서는 각각 시실리 거리와 뉴욕의 암흑가를 접한 형제. 이들의 간접 경험이 타인과의 소통이나 사회성 영역까지 영향을 주며 나름 교육적 역할을 한 사실은 놀랍다.

여섯 형제가 영화를 공통된(거의 유일한) 관심사이자 놀잇거리로 삼는 장면들은 이들을 말 그대로 '울프팩'(Wolf pack; 이리 떼, 패거리)처럼 보이게 한다. 형제는 습관처럼 수많은 영화의 대사를 일일이 적고, 대사를 주고받으며 그럴 듯한 연기까지 선보인다. 심지어는 집 안에 있는 물건들만 가지고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배트맨과 악당 베인의 의상을 제작해 영화 속 장면을 재치있게 재연해 내기까지 한다. 아버지와 화해하는 매개체 또한 영화다. 영화를 제외하곤 외부와의 모든 접촉을 금지했던 아버지는 형제에게 원망의 대상이이지만, 결국 집안에 모인 형제는 아버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으로 무언의 화해를 건넨다.

 여섯 형제가 영화를 공통된(거의 유일한) 관심사이자 놀잇거리로 삼는 장면들은 이들을 말 그대로 '울프팩'(Wolf pack; 이리 떼, 패거리)처럼 보이게 한다.

여섯 형제가 영화를 공통된(거의 유일한) 관심사이자 놀잇거리로 삼는 장면들은 이들을 말 그대로 '울프팩'(Wolf pack; 이리 떼, 패거리)처럼 보이게 한다. ⓒ (주)더쿱


내부로 침잠하던 삶에서 외부로 뻗어나가는 삶으로. 결국 영화 <더 울프팩>은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지금까지와는 정반대의 삶 앞에 선 이들의 이야기다. 여섯 형제는 무지했지만 그래서 천진난만할 수 있었고, 새 친구를 사귀진 못했지만 자신의 내면을 더할 나위 없이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었다. 한창 연애할 나이에도 "여자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 모르"고, 차창 밖 숲을 보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판고른 숲 같다"며 감탄하는 이들에게서 밝은 미래가 엿보이는 이유다. 오는 22일 개봉.

덧붙이는 글 제31회 선댄스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심사위원 대상, 제69회 에든버러국제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수상작.
더울프팩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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