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와 <스타트렉>은 SF 영화 시리즈의 양대 산맥입니다. 둘 다 광대한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은 같지만, 작풍은 완전히 다릅니다. <스타워즈>가 액션이 강조된 신화적 영웅담에 가깝다면, <스타트렉>은 인간 존재와 정치 사회적 문제에 대해 사고 실험을 하는, 60년대 뉴웨이브 SF의 사변소설(speculative fiction)적 전통에 가까우니까요.

2009년에 개봉한 <스타트렉: 더 비기닝>은 수백편의 TV시리즈와 극장용 장편 영화 10편을 뒤로 하고 새롭게 리부트된 작품입니다. 흥행에도 성공했고 영화적 재미나 완성도에 대한 평가도 좋았지요. 다만 <스타트렉>의 기존 팬들은 제작과 감독을 맡은 J.J. 에이브럼스가 너무 <스타워즈>처럼 연출한 것이 아니냐는 불만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것도 일리가 있는 것이, 주요 캐릭터들의 젊은 시절을 다루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성장 플롯이 강조되었고 이전보다 훨씬 잘 고안된 액션 신들이 돋보인 것이 사실이었거든요.

이런 특징은 리부트 2편 <스타트렉 다크니스>(2013)에서도 여전했습니다. 내부의 적과 싸우는 설정을 통해 시리즈 특유의 딜레마를 담아내긴 했지만, 액션 신과 커크 함장의 성장 플롯은 전편에 비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전편보다 더 강해졌다

 영화 <스타트렉 비욘드>의 포스터. 차별 없는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우주 개척과 외계 문명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다뤄 온 오리지널 시리즈의 정신과 주제 의식을 잘 계승한 작품이다.

영화 <스타트렉 비욘드>의 포스터. 차별 없는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우주 개척과 외계 문명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다뤄 온 오리지널 시리즈의 정신과 주제 의식을 잘 계승한 작품이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 영화 <스타트렉 비욘드>는 리부트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으로서, 캐릭터의 개별적 성장보다는 원작 TV 시리즈가 즐겨 다루었던 방식의 가치 충돌 상황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시리즈의 무대가 되는 행성 연방의 정신이자, 시리즈 전체의 테마라고 할 수 있는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고 외계의 존재들과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한다'는 명제에 맞서 '힘의 논리를 앞세운 투쟁과 정복의 불가피함'을 주장하는 적이 등장하지요. 이 과정에서 엔터프라이즈 호 승무원들은 미지의 행성에 뿔뿔이 흩어지고 행성 연방은 절체 절명의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리부트 시리즈 1, 2편의 감독인 J.J. 에이브럼스가 <스타워즈> 시리즈의 연출을 맡게 되면서 하차하고, <분노의 질주> 시리즈 3편부터 6편까지를 연출한 대만 출신의 저스틴 린이 이 영화의 감독을 맡은 것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평화적 공존과 차별없는 세상, 공동선을 이루기 위한 협력을 강조하는 이런 콘셉트의 영화에서는 감독이 미국 사회의 비주류인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 같습니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나 <뜨거운 녀석들> 등의 영화에서 각본과 주연을 맡아 비주류 정서에 정통한 사이먼 페그와, 한국계 시나리오 작가 더그 정이 각본을 맡은 것도 시너지 효과를 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여름 블록버스터 답게 여전히 화려한 3D 효과가 강조된 큰 스케일의 액션들이 많지만, 그런 신들도 주인공 한 두 명의 활약을 돋보이게 하는 쪽이 아니라 승무원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면서 과업을 해결하는 식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인간의 선의와 자발적인 협력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죠. 1, 2편과는 달리, 핵심 주인공인 커크와 스팍의 내적인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소소한 서브 플롯들 중 하나로 축소시켜 관객들이 중심 주제에 보다 집중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결말까지 가는 과정도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너무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 놓아 템포가 늘어지지도 않고, 설명이 부족하여 보는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지도 않으며, 억지스럽지 않게 논리적으로 잘 구성돼 있지요.

의미심장한 영화의 메시지

 영화 <스타트렉 비욘드>의 한 장면. 전작들에서 서로 껄그러워 했던 스팍(재커리 퀸토)과 본즈(칼 어번)는 미지의 행성에 불시착한 후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돕는다. 유독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가 빛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 <스타트렉 비욘드>의 한 장면. 전작들에서 서로 껄그러워 했던 스팍(재커리 퀸토)과 본즈(칼 어번)는 미지의 행성에 불시착한 후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돕는다. 유독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가 빛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의미심장합니다. 국제 관계든, 국내 정치든 힘의 논리를 강조하는 현실주의가 너무 과도한 요즘의 한국 사회 같은 곳에서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흔히 강조되는 약육강식의 논리와 끊임없는 경쟁은 실제로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고 자기 몫을 차지하려다 보면, 웬만큼 금수저가 아닌 이상 평범한 사람들은 모두가 패자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결국 마지막에 살아남는 것은 사회의 최상류층들 뿐입니다.

연대와 협력으로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생각을 이상주의자의 백일몽 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떠올려 보세요.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다른 사람의 노력과 희생을 통해 알게 모르게 도움 받는 일이 있는지 없는지. 가족과 직장, 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그러한 인간적인 연대가 일종의 접착제 노릇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의 도덕 교과서 같은 결론도 무척 현실성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물론 모든 것을 연대하고 협력하는 정신만 가지고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도 거짓말일 겁니다. 현실 세계는 어느 한 가지 원칙만 가지고 살아 가기엔 너무 복잡한 곳이니까요.

이렇듯,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이상론과 현실론, 논리와 감정, 규칙과 임기응변 등 여러가지 가치 기준들이 빚어내는 딜레마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숙고하게 하는 것이 <스타트렉> 시리즈가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 영화 <스타트렉 비욘드>는 그런 특징을 아주 잘 계승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오윤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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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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