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슨 크루소>의 한장면

<로빈슨 크루소>의 한장면 ⓒ (주)영화사 빅


무인도에 홀로 남은 주인공의 생존기. 대니얼 디포가 쓴 소설 <로빈슨 크루소>의 이 설정은 많은 영화들의 모티브가 됐다. 항공기 추락사고 뒤 무인도에서 깨어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캐스트 어웨이>(2000)가 그랬고, 화성에 남겨진 우주비행사의 고독한 사투를 다룬 <마션>(2015)이 그랬다. 픽사 애니메이션 <월-E>(2008)의 경우는 아예 기획의 시발점이 <로빈슨 크루소>라고 표방한 바 있다. 이 소설이 전 세계 110여개 언어로 번역되며 세계적인 명작으로 자리잡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벤 스타센 감독과 엔웨이브 픽처스의 영화 <로빈슨 크루소>는 이 동명 소설을 처음으로 애니메이션화 한 작품이다. 항해 중 난파된 배에서 혼자 살아남은 로빈슨이 외딴 무인도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원작 그대로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에 섬에 살고 있던 각양각색 동물들의 존재를 더한다. 앵무새인 '튜즈데이'를 비롯해 테이퍼 '로지', 물총새 '키키', 천산갑(팽골린) '팽고', 고슴도치 '에피', 염소 '스크러비', 카멜레온 '카멜로'까지. 이들이 로빈슨과 가까워지며 함께 맞딱뜨리는 사건들이 영화의 큰 줄기를 이룬다.

 <로빈슨 크루소>의 한장면

<로빈슨 크루소>의 한장면 ⓒ (주)영화사 빅


초반부, 인간을 처음 본 동물들은 로빈슨을 두고 "새처럼 두 발 달린 주제에 날지도 못하는 흉측한 바다괴물"이라며 경계한다. 그렇게 영화는 '조난자'로서의 로빈슨이 아닌 '외지인'로빈슨의 모습을 부각한다. 그러다가 섬 밖의 세계를 동경하는 튜즈데이가 가장 먼저 로빈슨과 가까워지고, 악당 고양이들에 맞서 함께 싸우면서 다른 동물들도 점점 로빈슨을 친구로 받아들인다. 로빈슨을 도와 나무 위에 집을 짓고는 그와 함께 살림을 차리기까지 한다. 동물들은 "집 안에서 사니까 비도 안맞고 좋다"며 즐거워하는데, 로빈슨을 마땅찮게 여기던 키키는 "우린 원래 밖에서 살았다"고 쏘아붙인다. 문명에 길들여진 인류의 자화상마저 엿보이는 지점이다.

<로빈슨 크루소>가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하면서도 로빈슨의 시선을 끝내 배제하지 않는 점은 아쉽다. 여기에는 영화 속 모든 동물들이 사람처럼 말을 하고 로빈슨 또한 말을 하지만, 동물들과 로빈슨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설정이 큰 역할을 한다. 이들은 이심전심으로 서로 돕고 함께 싸우면서도 정작 서로 직접적인 대화를 하지는 못하는 셈이다. 동물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가 구분되어 있고, 오직 관객만이 두 언어를 다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의인화된 동물'과 '인간 로빈슨'사이에 괴리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동물들과 로빈슨의 입장과 감정 서사가 구구절절 겹쳐가다 보니 어디에 감정을 이입해야 할지도 애매해진다.

 <로빈슨 크루소>의 한장면

<로빈슨 크루소>의 한장면 ⓒ (주)영화사 빅


영화 속 동물 캐릭터들은 익숙하치 않은 종으로 구성돼 다소 낯설지만 그만큼 신선하다. 큰 부리 때문에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기 어려울 법 한 튜즈데이와 키키는 눈꺼풀의 움직임만으로 개성을 획득한다. 멧돼지와 하마를 섞은 듯해 보이는 로지의 넘치는 식욕, 늙은 염소 스크러비의 불안해 보이는 일거수일투족은 주요한 웃음 포인트다. 여기에 갑옷처럼 딱딱한 등을 가진 팽고와 고슴도치 에피는 작은 포유류 특유의 귀여움을 발산하는 캐릭터로 제 몫을 다한다. 폭소를 자아내는 초중반부 에피소드들, 작고 아름다운 섬의 분위기에 걸맞은 달콤한 레게 풍 음악들도 인상적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오는 9월 8일 개봉한다.

로빈슨크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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