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보다 추가 시간은 길지 않았다. 종료 휘슬을 들은 손흥민과 골키퍼 구성윤은 게아드 그리샤(이집트) 주심에게 달려가 온두라스 공격수 알베르트 엘리스가 노골적으로 누워서 시간을 지연했던 사실을 상기시켰지만 이미 경기는 공식적으로 종료된 뒤였다. 그 억울함을 누가 모르겠는가? 하소연이 소용없는 시간에는 오직 측은함이 느껴질 뿐이다. 그 1골을 넣지 못한 실력을 탓할 수밖에 없는 것이 축구다.

신태용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올림픽남자축구대표팀이 한국 시각으로 14일 오전 7시 브라질 벨루 오리존치에 있는 미네이랑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온두라스와의 8강 경기에서 후반전 역습 한방을 얻어맞고 0-1로 패하고 말았다.

<올림픽> 손흥민 브라질에서 두번 울다  13일(현지시간) 오후 브라질 벨루오리존치 미네이랑 경기장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축구 8강전 한국과 온두라스의 경기에서 1대0으로 패한 한국의 손흥민이 경기 후 그라운드에 누워 울다가 코칭 스태프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고 있다.

▲ <올림픽> 손흥민 브라질에서 두번 울다 13일(현지시간) 오후 브라질 벨루오리존치 미네이랑 경기장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축구 8강전 한국과 온두라스의 경기에서 1대0으로 패한 한국의 손흥민이 경기 후 그라운드에 누워 울다가 코칭 스태프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고 있다. ⓒ 연합뉴스


골키퍼 로페스의 능력만 탓할 수 있을까?

전반전 중반을 넘어서면서 한국의 공격은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신태용 감독이 공격형 미드필더를 4명(류승우, 문창진, 권창훈, 손흥민)이나 두면서 선취골을 넣기 위해 과감한 지시를 내린 덕분이었다.

39분에 손흥민이 오른발로 감아찬 직접 프리킥부터 온두라스 골키퍼 루이스 로페스는 골병이 들 정도로 이리저리 온몸을 내던져야 했다. 45분 류승우의 오른발 중거리슛이 온두라스 수비수 몸에 맞고 살짝 방향이 바뀌어 골문 안으로 날아드는 순간 로페스는 오른쪽으로 날아올라 그 공을 쳐냈다. 골키퍼 입장에서 수비수 몸에 맞고 방향이 살짝 바뀌는 것은 반응하기 어려운 노릇이지만 루이스 로페스는 예외였다.

전반전 추가 시간에도 오른쪽에서 주장 장현수가 크로스한 공을 손흥민이 잡아 놓고 기막힌 오른발 발리슛으로 골을 노렸다. 하지만 루이스 로페스는 마치 그 방향을 알고 있었다는 듯 몸을 가볍게 띄우면서 그 공을 쳐냈다.

23살이면서 키도 골키퍼로서 그리 크지 않은 183cm의 루이스 로페스는 이처럼 한국의 승리 의지를 때마다 막아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조별리그에서도 무실점 경기를 펼쳤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온두라스는 D조에서 남아메리카의 강팀 아르헨티나를 탈락시켰지만 3경기 모두 실점을 기록했다. 그것도 1승 1무 1패를 기록하며 5득점 5실점의 흔적을 남겼으니 한국으로서는 골을 터뜨리지 못한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축구가 상대적인 스포츠라는 사실을 또 한 번 확인했다.

침대 축구 화나죠? 그럼 먼저 'Goal'

후반전에도 한국은 변함없이 온두라스 골문을 여러 차례 위협했다. 47분이 지나면서 '심상민-문창진-류승우-손흥민'으로 이어지는 연결이 완벽했다. 여기서 부드럽게 상대 수비수 속임 동작으로 슛 기회를 잡은 손흥민이 회심의 오른발 슛을 날렸지만 역시 상대 골키퍼 루이스 로페스는 전반전의 몸 상태 그대로였다. 마치 우리 선수들이 어느 방향, 어느 높이로 슛을 날리는지 다 알고 나온 듯 보였다.

특히, 한국의 에이스 손흥민은 이 경기가 더 한으로 남을 듯하다. 유독 자신이 결정적인 유효 슛 기회를 많이 만들었지만 1골도 성공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손흥민은 55분에도 '문창진-권창훈'의 연결을 받아 왼발로 골을 노렸지만 이번에도 루이스 로페스가 왼쪽으로 몸을 날려 그 공을 쳐냈다.

전반전 2개, 후반전 2개에 이르는 결정적인 유효 슛 기회 중에서 그 1골이 터지지 않아 속이 터지는 손흥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상대 골키퍼 루이스 로페스를 탓할 수 있겠는가? 마무리의 섬세함과 위력을 더 갖추지 못한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는 것이 축구다. 가까이 있었던 조별리그 1차전 피지와의 전반전에 우리 선수들은 무수한 득점 기회를 모두 날리며 겨우 1골로 만족해야 했던 경험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신태용호는 우려했던 역습 한 방으로 무너졌다. 59분, 로멜 키오토의 빠른 역습 드리블에 우리 수비수들은 공간을 쉽게 내줬고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알베르트 엘리스의 오른발 슛에 구멍이 뚫렸다. 측면 풀백들(심상민, 이슬찬)의 공격 가담 수위가 높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온두라스의 호르헤 루이스 핀토(콜롬비아) 감독이 선수들에게 준비시킨 역습 전술이 제대로 먹힌 순간이었다.

이후 30분 이상의 시간이 우리 선수들에게 주어졌지만 이전처럼 날카로운 공격력을 뽐내지 못했다. 71분에 황희찬의 훌륭한 크로스를 받은 권창훈이 왼발로 동점골을 노렸지만 그 공은 골키퍼 루이스 로페스의 정면으로 굴러가고 말았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멕시코를 집으로 돌려보낸 결승골 순간을 기대했지만 그런 완벽한 슛이 아무 때나 터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가르쳐주는 장면이었다.

이후 우리 선수들은 온두라스 선수들의 노골적인 시간 끌기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했다. 72분, 주장 완장을 찬 브라이언 아코스타가 옆줄 밖에서 공을 소유하려고 하는 순간 우리 미드필더 박용우가 화를 참지 못하고 강하게 밀어 넘어뜨렸다. 여기서 돌아오는 것은 그리샤 주심이 발급한 옐로 카드였다. 그리고 불필요한 시간이 흘러가는 것 뿐이었다.

84분에는 온두라스의 로멜 키오토가 비신사적인 행동으로 추가골까지 노렸다. 중앙선 부근에 쓰러져 있는 동료를 위해 공을 밖으로 내보낼 듯한 동작을 취하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빠른 드리블로 한국 골문을 노렸다. 구성윤 골키퍼가 침착하게 각도를 잡고 키오토의 슛을 막아냈지만 한국 선수들로서는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순간이었다.

갈 길 바쁜 한국은 89분에 수비수 심상민이 알베르트 엘리스에게서 공을 넘겨받기 위해 지나치게 밀었다고 해서 경고를 받았다. 오히려 시간을 지연시키며 쓰러져 침대 축구를 펼치는 엘리스에게 경고장이 발급되어야 할만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리샤 주심은 이를 그냥 지켜볼 뿐이었다. 온두라스 의료진이 들어오고 뒤늦게 들것이 들어와 엘리스를 밖으로 내보낼 때까지 어림잡아 2분 가량 흘렀지만 그리샤 주심은 90+3분 45초에 종료 휘슬을 불었다.

이에 결정적인 유효 슛을 4개나 날린 손흥민과 키오토의 비신사적인 슛을 막아냈던 골키퍼 구성윤이 종료 직후 그리샤 주심에게 달려가 주심 재량의 추가 시간이 겨우 45초밖에 이어지지 않은 이유를 따져 물은 것이다. 그들은 그 시점에서 항의하는 것이 아무런 소용없는 줄 몰랐을까? 그만큼 억울했다는 것 십분 이해하지만 우리 선수들이 골을 먼저 터뜨리지 못한 것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다음부터라도 상대 선수들의 비신사적인 침대 축구가 펼쳐지더라도 실력으로 우위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면 된다. 그것이 축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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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2016 리우올림픽 남자축구 8강 결과(14일 오전 7시, 미네이랑-벨루 오리존치)

★ 한국 0-1 온두라스 [득점 : 알베르트 엘리스(59분,도움-로멜 키오토)]
- 경고 : 이슬찬(45+1분), 박용우(72분), 심상민(89분)

◎ 한국 선수들
FW : 황희찬
AMF : 류승우(87분↔최규백), 문창진(68분↔석현준), 권창훈, 손흥민
DMF : 박용우
DF : 심상민, 정승현, 장현수, 이슬찬
GK : 구성윤
축구 신태용 리우올림픽 손흥민 온두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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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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