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별쌤'. EBS 간판 역사 강사이자 KBS 1TV <역사저널 그날>의 고정 패널인 최태성 교사(서울 대광고등학교)의 별명이다. 기자가 '최태성'이라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건 우습게도 2014년 한 성폭행 사건 때문이었다. 유명 EBS 강사 최아무개씨의 성폭행 사건이 보도됐고, 많은 이들이 '유명' 'EBS' '최씨'라는 단서에 그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그 최아무개씨'가 아니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온라인 여기저기에서 나타난 '쉴드 부대'였다. 최태성 선생이 <역사저널 그날> 녹화 중이라 자신이 황당한 오해에 휩싸였다는 사실조차 모르던 그때, "큰별쌤이 그럴 리 없다"며 변호에 나선 이들은 EBS를 통해 그의 수업을 들었던 수많은 '랜선 제자'들이었다. "만약 큰별쌤이라면 세상에 아무도 못 믿을 것 같다", "제발 아니길 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며 무한 신뢰를 보내는 제자들.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어떤 강의를 하는 사람이길래.

 서울 대광고 최태성 교사

최태성 교사는 랜선으로 얻은 제자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받고 있었다. 궁금해졌다. 어떤 사람이길래. 어떤 강의를 하는 사람이길래. ⓒ 권우성


"한동안 포털사이트에 제 이름을 검색하면 '최태성 강간', '최태성 도박'이 연관검색어로 떴어요. 녹화 중이라 전화를 바로 못 받았는데, 끝나고 휴대폰 보니 부재중 전화가 몇백 통이 와 있더라고요. 순간 '아 이거 뭔가 잘못됐나 보다' 싶었죠. 몇몇 분들은 제가 기소돼서 전화 못 받나 보다 하셨다고. 하하하. 지금 웃지만 아찔했어요. 믿고 지지해주신 분들에게 감사할 따름이죠. 대부분은 모니터를 통해 저를 만나셨을 텐데, 기계를 통한 만남이라 차가울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랜선을 통해서도 온정이 전해지더라고요."

콩트 하는 선생님

11일 서울 대광고등학교에서 그를 만났다. 현역 고등학교 교사와 <오마이스타>의 만남. 생뚱맞지만 이름부터 태성, 빅스타다. <역사저널 그날>에서 매주 개그맨 못잖은 콩트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최 교사에게 "<연예대상> 후보에 오르셔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하자 "월요일 아침마다 뒤통수가 화끈화끈하다"며 웃었다.

"<역사저널 그날>이 일요일에 방송되잖아요. 학생들이 웃으면서 슬금슬금 지나가는데 전 그 웃음의 의미를 알죠. 한 번은 신사임당 편에서 여장을 했었는데 그다음 날은 어휴..."

우스꽝스러운 분장. 교장·교감 선생님이나 학부모들이 싫어하진 않을까? 최 교사는 "저희 반 학부모님들과 밴드가 있는데, 분장한 제 모습 캡처해서 올리시는 분들도 계시다"고 말했다. 쑥스럽게 웃으며 "굳이 이러셔야 하나 싶기도 하다"고 했지만, "다행히 학부모님들도, 다른 선생님들도 좋아해 주시고 응원해주신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최태성 선생은 매주 일요일 방송되는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 능청스러운 콩트 연기를 선보인다. 여장은 물론 오랑캐 분장도 서슴치 않는다. 월요일 아침이면 자신을 보고 웃는 학생들의 모습에 뒤통수가 따가울 지경이라고.

최태성 선생은 매주 일요일 방송되는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 능청스러운 콩트 연기를 선보인다. 여장은 물론 오랑캐 분장도 서슴치 않는다. 월요일 아침이면 자신을 보고 웃는 학생들의 모습에 뒤통수가 따가울 지경이라고. ⓒ KBS


수강생 눈물 쏟게 만드는 강의

대게 유명 온라인 강사들은 현란한 말발과 개성 있는 말투로 수강생의 시선을 붙든다.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온라인 강의에서 같은 내용도 재미있고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능력은 '스타 강사'의 필수 능력. 하지만 수강생들이 최태성 선생의 수업을 좋아하는 이유는 화려한 말발이나 기억에 남는 말투가 아니다.

"의열단 관련된 시험문제에 김지섭이라는 인물이 나왔어요. 의열단 할 때 김지섭이라는 이름은 잘 거론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 사람이 시험문제에 나왔어요. 그때 여러분 반응이 뭔지 아세요? '이 새끼 뭐야?'

그런데 근현대사 공부할 때 그러시면 안 돼요. 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건 수능이라는 시험을 위해서지, 이분들 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독립운동하신 분들이에요. 함부로 뭐가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분들이 아니에요."


화제가 된 최 교사의 강의 중 일부다. 수강생들은 "강의 듣다 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면서 그의 수업의 매력을 '진정성'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는 강의 마지막마다 "역사에 무임승차하지 말자"고 강조한다. 자신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인 셈이다.

"EBS는 본질적으로는 시험을 잘 보게 하는 공간이죠. 하지만 역사를 공부하러 온 사람들이잖아요. 그저 주입식이나 암기식 역사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대부분 역사적 사실을 아는 걸 역사라고 생각하는데, 진짜 역사는 사람들의 삶이거든요. 역사라는 것이 내 삶과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자꾸자꾸 알리고 싶어요. 역사 공부하다가 한 번쯤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 그게 제 지향점이에요."

 서울 대광고 최태성 교사

최태성 선생 강의의 수강생들은 "강의 듣다 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면서 그의 수업의 매력을 '진정성'이라고 입을 모은다. ⓒ 권우성


그가 정색하는 순간

기본적으로는 푸근한 인상에 어울리는 편안하고 나긋나긋한 말투지만, 그도 정색하는 순간이 있다. 국가도 백성도 버리고 제 살길만 찾은 역사 속 인물을 이야기하며 "한 인간으로서는 이해된다"는 의견에 "역사는 그렇게 보면 안 된다"고 말할 때다.

그는 "지배층, 지식인의 책임이라는 게 있다, 그들의 입장과 처신이 일반 백성과 같을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아무리 상황 자체가 안쓰럽고 이해된다 할지라도 역사에서 평가할 때는 달라야 한다"면서 "역사가 정확하게 평가해주지 않으면 반복될 수밖에 없다, 평가의 기준은 먼 미래에 두고 현재와 과거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자신의 역사관을 덧붙였다.

"<역사저널 그날>은 1인 강의와는 느낌이 달라요. 여러 패널과 역사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곳이잖아요. 상황에 몰입되다 보면 저도 모르게 흥분할 때가 있죠. 네 시간 정도 녹화를 하는데, 녹화 마치고 분위기가 어색해질 때도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늘 뒤풀이를 합니다. 확실하게 다 풀고 집에 가요. (웃음)"

가벼운 인문학 불편? "사람들 관심이 먼저"

최근 인문학 열풍을 타고 TV 프로그램들이 수능 사탐 영역 스타 강사들을 미술, 역사, 경제, 철학 등 인문학 강연자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쉽고 재미있게, 핵심만 콕콕 집어 정리해주는 '입시식' 인문학 강의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높은 인기를 끌었다.

그러던 지난 5월, 수능 스타강사 최진기가 OtvN <어쩌다 어른> '조선 미술, 인문학을 만나다' 편에서 오원 장승업과 관련된 강의를 하던 중 잘못된 자료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곤욕을 치렀다. 결국 그는 출연 중이던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며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이후 입시학원 강사들이 너무 가볍게 인문학을 다룬다는 비난 여론도 생겨났다. 역시 스타 강사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공교육 현장을 지키고 있는 현역 교사로서, 이 같은 논란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저는 인문학을 쉽고 가볍게 다루는 움직임도 나쁘지 않다고 봐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인문학에 너무 관심이 없어요. 인문학자분들은 인문학을 가볍게 상품화시키고, 정답이 있는 것처럼 가르치는 걸 우려하시겠지만, 우선 사람들이 관심 갖는 게 먼저 아니겠어요? 그래야 그다음 단계가 있는 거죠.

같은 역사라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이 있듯 단계가 필요하거든요. 대중에게 다가가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는 역할을 최진기·설민석 선생님 같은 분들이 훌륭하게 해내 주셨다고 생각해요. 이분들이 분위기는 조성했으니, 다음 단계는 인문학자분들이 더 노력해주셔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게 없다면 앞으로 많은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겠죠."

 서울 대광고 최태성 교사

최태성 선생은 최근 인문학 열풍에 대해 "인문학을 쉽고 가볍게 다루는 움직임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진기, 설민석 등 '인문학 열풍'에 일조한 스타 강사들이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 주셨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렇게 조성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다음 단계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커리큘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권우성


<귀향>, 그리고 AOA

올해 들어 두 번, 최태성 선생이 연예란에 크게 오르내린 일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지난 2월 영화관 5개 관을 통째로 대관해 펼친 영화 <귀향> 무료 관람 이벤트였다. 그는 "영화 <귀향>에 대한 기사를 봤는데 너무 좋은 영화더라,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는데 상영관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획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초 그의 기획은 그저 '대관'까지였다. 사비로 상영관을 대여한 뒤, 친분이 있는 기자들을 통해 이벤트로 관람객을 모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하지만 연락하는 기자마다 직접 이벤트를 하는 게 화제가 되고, 영화 홍보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조언했단다.

"정부에서 위안부 합의를 했고, 저는 EBS에서 강의하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게 조금 부담스러웠어요. 저를 투사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사실 소시민이거든요. 그러다 갑자기 '내가 위안부 이야기를 하는데 왜 이런 자기검열을 하고 있지?' 싶더라고요. 이건 아닌 것 같았어요. 영화 하나 보자는 건데 저 혼자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했는데, 일이 일파만파 커졌죠. <귀향> 감독님이 직접 고맙다고 전화도 해주셨어요.(웃음)"

또 하나는 5월, AOA 설현과 지민의 역사 무지 논란에 대한 그의 트위터 글이었다. 온스타일 <채널 AOA> 퀴즈 코너에서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물론, 장난스러운 태도로 안 의사를 대했다는 것이다. 설현과 지민을 향한 비난이 온라인을 뒤덮었던 그때, 최 교사는 자신의 트위터에 "역사교과서 국정화 댓글은 고작 900개, AOA 설현과 지민의 안중근 의사 논란에 대한 댓글은 1만8000개"라는 <미디어스> 보도 내용을 올렸다. 설현과 지민을 향한 과도한 비난 여론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셈이다.

"충분히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문제 하나 맞혀보실래요? 지난 6월 평가원 모의고사 문제예요. 이순신의 활약, 조명 연합군, 의병의 활동. 무슨 전쟁을 말하는 걸까요? 임진왜란이죠. 그런데 이걸 틀린 학생들이 있어요. 이런 걸 알려주는 게 중요한 거지 몰랐다고 비난받는 건 과하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설현은 선택 한국사 세대예요. 60만 수험생 중에 한국사 선택하는 학생, 3만 명밖에 안 돼요. 한국사가 선택과목이 되면서 충분히 예견됐던 모습이죠.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한 사람의 잘못보다 이런 거시적인 문제들이 아닐까요?"

 서울 대광고 최태성 교사

최 교사는 지난 5월, AOA 설현과 지민의 역사 무지 논란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적이 있다. 그는 "설현은 한국사 선택 세대"라면서 "한국사가 선택과목이 되면서 충분히 예견됐던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한 사람의 잘못보다 이런 거시적인 문제들"이라는 교사로서의 의견을 밝혔다. ⓒ 권우성


사교육 스카우트 제의 많았지만

EBS로 스타가 된 많은 교사가 사교육으로 자리를 옮겨 거액의 몸값을 올렸다. EBS 간판 강사이자, 수많은 '팬' 겸 '제자'를 보유한 그에게 사교육 시장의 스카우트 제의가 없었을 리 없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학교를 지키며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최 교사는 "사교육 시장으로 옮기는 일이 나쁜 건 아니"라면서도 "하지만 제가 살아온 궤적에 그런 일이 없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저는 공교육, 사교육의 기준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 역사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EBS는 많은 사람이 들어오는 공간이에요. 학원으로 간다면 돈은 더 벌 수 있을지 몰라도 아무래도 수강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죠. 보통 학원가 일타강사들 강좌 수강생이 2만~3만 명이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EBS는 강좌 하나당 20만 명 정도예요. EBS라는 공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는 "대학 때까지만 해도 스스로를 신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 자신이 잘하는 게 뭔지, 그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깨닫게 해준 이들은 오로지 학생들이었다고 털어놨다.

"교사는 학생들을 통해 성장하는 것 같아요. 제가 가진 능력 중 제일 나은 것이 개념을 잘 버무려 쉽게 전달하는 일이라면, 거기에 플러스로 '역사란 무엇인가' 한 번쯤 고민하게 만드는 교사가 되고 싶어요. TV를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는 교사라 행복하고 영광일 따름입니다."


최태성 역사저널그날 큰별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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