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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
▲ <언더그라운드> 겉표지
ⓒ 검은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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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여름, 우리나라에 상륙한 '메르스'라는 전염병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중동호흡기 증후군'이라는 명칭의 이 병을 사람들은 경계했고 언론에서는 매일 메르스 사망자가 몇 명이라는 보도를 했다.

대형 병원에 가면 '메르스로부터 안전한 병원'이라는 간판이 입구에 걸려있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하고 거리를 걸었고, 개인적으로도 뭐가 그렇게 걱정되는지 마스크를 하고 다니는 날이 많았다.

그때 마음 한편으로 '마스크 업체들이랑 손 세정제 업체들 돈 많이 벌었겠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또 다른 생각도 떠올랐다.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치명적인 전염병이 전국적으로 퍼지면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마치 중세시대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처럼.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는 것만으로는 어림없는 사태가 될 수도 있을 텐데.

상류층에게만 허락된 대비처

S. L. 그레이의 2015년 작품 <언더그라운드>에서도 사람들이 전염병 때문에 공포에 떤다. 아시아에서 시작된 이 질병은 태평양을 건너서 미국에까지 퍼진다. 이 작품에서는 한국도 자주 언급된다.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죽어가겠네요'라는 식으로.

그래서 대피시설인 일종의 '벙커'가 만들어진다. 국가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인사업자가 하는 일이다. 이런 벙커는 핵전쟁이 터지거나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 기본적인 목적이지만, 작품에서는 질병을 피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이 벙커에 모인다.

'성소'라고 이름이 붙여진 그 벙커는 지상1층에서 지하 8층까지 만들어져 있다. 돈 많은 사람들은 마치 콘도를 구입하듯이 이 벙커의 객실을 구입했고 그곳에 모여서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다. 객실은 호텔처럼 꾸며져 있고 수영장과 체육실도 구비되어 있다. 대신에 지하에 있기 때문에 바깥을 바라볼 수는 없다.

동시에 문제도 생겨난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보면 화기애애한 분위기보다는 서로 간에 마찰이 생겨나기 쉽다. 이 공간에서도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겨나고 결국 살인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지하공간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

작가는 독특한 모습의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폐쇄적인 대피시설은 외부에서의 위협을 막아주지만, 동시에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시키는 역할을 한다. 휴대폰과 무선 인터넷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에는 그 안에 갇힌 채 바깥으로 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 일종의 밀실이 되는 셈이다.

사람들마다 생각의 차이는 있겠지만, 치명적인 질병이 전국에 떠돌면 이런 식의 폐쇄된 시설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안에서 어떤 다툼이 생겨날지 모르지만, 아무튼 질병의 감염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대신 이렇게 고립된 장소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폐쇄공포증을 유발시키는 공간에서 사람들은 조금씩 변해간다.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 죽고 싶은 장소가 따로 있지는 않지만, 전염병 때문에 세상에 종말이 오더라도 이런 벙커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다.

덧붙이는 글 | <언더그라운드> S. L. 그레이 지음 / 배지은 옮김. 검은숲 펴냄.



언더 그라운드

S.L. 그레이 지음, 배지은 옮김, 검은숲(2016)


태그:#언더그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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