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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에 의하면 인류 최초의 살인은 카인이 자신의 동생 아벨을 살해한 것이다. 어찌보면 이것은 최초의 범죄이기도 할 것이다. 최초의 범죄는 최초의 살인이었고, 그 대상은 자신의 직계가족이었다.

통계에 의하면 살인사건의 대상 절반 이상이 직계가족이라고 한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에서 부친 살해를 모티브로 삼지 않았던가.

같은 공간에서 오랫동안 함께 살다보면 애정과 동시에 미움도 생겨날 수 있다. 그것도 강력범죄로 성장할 정도의 증오로. 그 감정을 이기지 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행위로 이어지게 되고, 그 범죄자는 가족과 가정을 파괴하고, 결국 자기 자신까지 파괴하게 된다.

가장 최근 40대 남매가 어버이날 아버지를 살해 한 혐의로 검거되어 세상을 놀라게 한 일도 있었다. 이런 일들은 현실에서도 그리고 소설 속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사람은 살다보면 가족에게 가장 커다란 상처를 받게 될 가능성이 많다. 어떤 부부는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같이 살고, 형제와 친척 사이에도 원수처럼 지내는 경우가 있다. 그런 애증이 결국 범죄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들도 있다. 당연히 여기서 다루는 범죄는 다소 엽기적이다.

기시 유스케 <푸른 불꽃>

겉표지
▲ <푸른 불꽃> 겉표지
ⓒ 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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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유스케는 다작형의 작가가 아니다. 그의 작품들에는 굉장히 꼼꼼하면서 전문적인 지식들과 범죄 과정이 등장한다(개인적으로 <유리 망치>가 대표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작품을 쓰려면 다작형이 되기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1999년 작품인 <푸른 불꽃>도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독특한 살인방법으로 사람을 죽이려는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 슈이치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가 살해하려는 사람은 다름아닌 어머니의 전 남편. 백수에 알코올중독인 그는 슈이치가 어머니, 여동생과 평온하게 살고 있던 가정에 들어와서 그 평화를 파괴한다.

당연히 그는 슈이치에게 증오의 대상이 된다. 슈이치는 완전범죄를 꿈꾸면서 자기만의 살인방법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긴다. 하지만 아직은 마음이 여린 고교생. 그는 치밀하게 살인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공포와 죄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을 잊기 위해 독한 알코올을 들이켜기도 한다.

<푸른 불꽃>은 흔히 말하는 '도서(도치서술)형' 추리소설이다. 범인이 범죄를 구상하는 단계부터 시작해서 그 과정과 심리를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슈이치가 행한 살인은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전모가 드러나게 될까. 범인의 심리도 심리지만, 기발한 살인방법을 추적해가는 형사와의 공방전도 볼 만하다.

아비코 다케마루 <살육에 이르는 병>

겉표지
▲ <살육에 이르는 병> 겉표지
ⓒ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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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불꽃>이 도서추리소설의 전형이라면, 아비코 다케마루의 1992년 작품 <살육에 이르는 병>은 서술 트릭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서술 트릭은 쉽게 말해 작가가 독특한 서술 방식을 통해서 독자들의 눈을 속이는 것이다. 독자들은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이 트릭을 깨닫게 된다. 영화 <식스 센스>에서 감독이 관객들을 속인 것처럼.

트릭도 트릭이지만, 이 작품에서도 가족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가모우 마사코는 결혼 후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해오고 있다. 결혼 후에 이혼하겠다는 생각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 사람과 결혼하길 잘했다'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냥 평범한 가정생활을 유지해 왔던 것.

그러던 어느날 '자기 아들이 범죄자가 아닐까' 하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아들이 범죄자라면, 그것도 잔인한 연쇄살인범이라면 그 가정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 아들도 생각한다. 자신이 범죄자라는 걸 알면 어머니는 미쳐버릴 거라고. 그런데도 살인을 중단하지 못하는 아들. 그의 모습은 마지막의 커다란 반전에서 밝혀진다.

'반전'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작품이 아마 <살육에 이르는 병>일 것이다. 그 '병' 때문에 가족도 무너지고 자신도 망가진다. 가족을 지키려는 마사코의 노력이 인상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어지는 잔인한 범죄. 참고로 이 작품에는 '19세 미만 구독 불가'라는 딱지가 붙어있다.

온다 리쿠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겉표지
▲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겉표지
ⓒ 북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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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의 2000년 작품인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에서는 어떤 아이들이 부모에게서 버려진다. 버려지는 장소는 다름아닌 학교.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해야하는 고급 학교이다. 외딴 곳에 자리잡고 있고 외출이나 외부와의 통신도 통제된다. 주인공 미즈노 리세도 이 학교로 전학온다.

어찌보면 조용히 학업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라 생각되겠지만, 학교의 분위기는 어둡기만 하다. 한 동급생은 리세에게 '우리는 버려진 아이들'이라고 말한다. 학생들이 이곳에 오게 된 계기도 다양하다. 어떤 학생은 자신의 동생을 죽인 어머니를 식칼로 살해하고 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당당하게 얘기한다.

저마다의 과거를 가진 아이들이 모인 곳에서, 기괴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몇몇 아이들이 사라지고 누군가는 살해당해서 발견되기도 한다. 혹시 이런 사건들 속에는 학원 교장이나 선생들이 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나 지금이나 학교에는 괴담이 많다. 학교와 군대처럼 괴담이 많은 곳도 없을 것이다. 저마다의 사연과 과거를 가지고 학생들이 모여있는 곳이니, 이곳에서 괴담이 생겨나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누구나 학창시절의 추억을 하나 쯤은 가지고 있을 테지만, 그것이 괴담이나 학생의 죽음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이 더욱 어둡게 느껴진다.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는 '학교'라는 공간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푸른 불꽃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창해(2004)


태그:#푸른 불꽃, #살육에 이르는 병,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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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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