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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따의 추억

현철우씨(가명·광운대 산업심리학 2)는 자신을 "2013년 말부터 일베 전복을 노렸던 세력이었지만 기대를 접고 모니터링만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기대를 접은 이유는 "초기 일베는 과거 디시인사이드처럼 찐따 코스프레나 하며 노는 분위기였다면 점점 열등감과 물적, 정신적 결핍을 내장한 '진성 찐따'들이 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서 "요즘 일베의 주요 떡밥은 '찐따'다. 주로 학창시절 이야기인데 이런 건 사회적·심리적 분석이 필요한 문제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일간베스트 게시판(추천 수가 가장 많은 글을 모아놓는 곳) 약 46만 건의 글 중 약 1.49%는 제목에 '찐따'가 들어갔다. 하지만 최근 일주일간 2500여 건 중에서는 약 2.16%로 늘었다. 보통 게시물 제목의 일관성을 종잡기 힘든 유머 사이트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눈에 잘 띄게 삐죽 튀어나온 키워드다.

'찐따'란 '다리 병신'에서 유래한 비속어다. 6.25 때 지뢰를 밟고 다리가 잘린 상이군인들을 '멍청하게 지뢰나 밟았다'는 뜻으로 냉소하던 악습이 변용 돼 오늘날 '덜떨어진 사람'을 비하하는 말이 됐다. 일베가 '찐따'를 사회생활(특히 학창시절)과 자주 연관시킨다는 점에서 '왕따'와도 맥락이 닿는다.
 '찐따'란 '다리 병신'에서 유래한 비속어다. 6.25 때 지뢰를 밟고 다리가 잘린 상이군인들을 '멍청하게 지뢰나 밟았다'는 뜻으로 냉소하던 악습이 변용 돼 오늘날 '덜떨어진 사람'을 비하하는 말이 됐다. 일베가 '찐따'를 사회생활(특히 학창시절)과 자주 연관시킨다는 점에서 '왕따'와도 맥락이 닿는다.
ⓒ 일베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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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따스럽다, 즉 '덜떨어졌다'는 사실판단이 아니라 가치판단이다. 멸시와 배제의 아이콘인 학창 시절 '왕따' 역시 보통 '찐따'로 낙인 찍힌다. 일간베스트 게시판도 '찐따'를 제목에 포함한 최근 글 50건의 주제를 분석해보니, '찐따의 특징(35건)' '기타(10건)' '찐따 관련 글이 너무 많다는 비판(3건)' '찐따 시절 경험(2건)' 네 유형으로 나눌 수 있었다.

가장 인기를 끄는 '찐따의 특징' 시리즈는 말 그대로 학창 시절 찐따였던 이들의 특징을 묘사하는 게시물들이 주류다. 처음 연애하는 찐따의 특징, 수학여행에서 찐따의 특징, 게임하는 찐따의 특징, 화장실 갈 때 찐따의 특징, 학교폭력 당한 찐따의 특징, 초등학교 찐따의 특징, 혼자 밥먹는 찐따의 특징, 공통된 찐따의 특징 등등. 그렇다보니 "찐따들 그냥 지들 학창시절 이야기 쓰면 베스트게시판 올라간다"(유키*)라며 '찐따 특징 글' 작성자들의 남다른 리얼리티에서 '찐따 혐의점'을 찾는 글도 올라온다.

하지만 이 글은 추천보다 높은 반대를 받았는데(추천 213, 반대 -230), 작성자들의 학창시절을 성급하게 단정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찐따 경험'을 털어놓거나 퍼온 글은 적다(2건). 물론 종종 '찐따 경험'을 댓글로 고백하는 경우도 아예 없진 않다. 가령 찐따의 특징을 남의 이야기처럼 말하다가 느닷없이 자기 과거를 고백하는 반전도 종종 보인다("수학여행 중 MP3 일진에게 뺏길까봐 화장실에서만 들었다더라... 내가..." 따닥**).

하지만 고통을 호소하기보다 잠시 그 시절을 '객관화(사건화)'시켜 보는 데 그치는 수준이다. '찐따의 특징' 시리즈와 댓글의 대세는 차라리 '나는 이미 찐따를 간파하고 있다'라는 사실의 재확인에 가깝다. 찐따의 특징을 묘사한 글이 베스트게시판에 올라오고 "ㅇㄱㄹㅇ(이게 리얼이다)"를 외치고 부연 설명을 댓글로 줄줄이 달 뿐이다. 누구라도 왕따였거나 가해자였을 수 있기에 자칫 불편할 수 있는 상황. 그런데 이들은 왜 열광할까.

열등감과 우월감은 '동전의 양면'.. '다시는 안 속는다'는 우월감

열등감과 우월감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열등감과 우월감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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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 불안감, 무력감은 삶의 목표를 세우고 구체화되게끔 돕는다. 아이는 이미 신생아 때부터 부모의 관심을 받고 싶어하고 어떻게든 주의를 끌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인정욕구는 열등감의 영향 속에서 발전해 가고, 아이가 주위 환경보다 더 우월해 보이는 목표를 설정하게끔 유도한다"
-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 <인간이해> 76쪽(일빛).

인간은 스스로 혹은 주위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갖는다. 인간의 자유도 불행도 여기서 시작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지만 아무나 인정받지는 못하는 '친밀성의 배반'을 경험할 때, 남과 자신을 비교하고 더 많은 인정을 받는 우월한 위치에 서려고 할 수 있다. 우월감이라는 동전의 뒷면은 열등감이다. 일베의 '우월감'의 원형도 이와 비슷하다.

저널리즘의 언어로 변역 돼 장안의 화제가 된 바 있던(관련 기사: 이제 국가 앞에 당당히 선 '일베의 청년들'), 김학준의 사회학 석사 논문에는 2030 일베 이용자 10명과의 인터뷰도 있다. 왕따 경험의 피해자 E씨와 목격자 C씨도 참여하는데 이들의 이야기는 같은 결론으로 수렴한다.

우선 E씨는 초등학교 때 왕따를 당했지만 반이 재편성 된 후 차례로 학급 반장, 부반장까지 맡았다. 학급의 중심에 서자 자신을 괴롭혔던 아이들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아는 척했고 환멸감을 느꼈다. 이러한 친밀성 배반 경험은 인간 관계 '불신'의 원체험이다.

한편 C씨는 직접 피해자는 아니지만 학창 시절 한 여학우가 마녀사냥식 성희롱을 당한 사건을 목격한 충격을 잊지 못한다. 사건을 알면서도 묵과한 교사들에 대한 기대가 깨졌고, 자신도 이해타산에 따라 인간관계를 맺고 끊고 적절한 무관심과 남을 동정하지 않는 삶의 처세를 유지하는 계기가 됐다. 친밀성 배반을 간접 경험으로 가져가며 '불신'의 원체험으로 삼은 케이스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생겨난 이런 불신들은 사회 관계 전반으로까지 확장된다. E씨와 C씨뿐 아니라 일베 전반에서 타인에 의해 '통수(뒷통수)' 맞는 습격에 주의하고 정치적 주장을 손쉽게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선동'으로 규정짓는 입장들을 쉽게 볼 수 있다. E씨와 C씨의 공통점은 '누구나 고통 하나쯤은 있다'라는 평범 서사를 삶의 태도로 수용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왕따 경험을 "트라우마"라면서도 "누구나 마음 속에 상처 하나씩은 있"다며 자신이 이를 "이겨냈다"고 재가공하거나, 고통을 "누구나" 겪는 걸로 수렴시킨다.

일베에게 고통을 스스로 삭이지 못하고 호소하며 어떤 공공선의 실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노력도 안 하고 나대기나 하는' 무임승차자다. 묵묵히 모나지 않게 자기 경영을 하며 사는 1등 시민인 자신들과는 '구별 짓기'할 만하다. 그렇다면 '찐따의 특징 글'이 일베에 왜 자꾸 전시되는지도 이해할 준비가 됐다.

<제3의 자본>(이동원 외)에 따르면 한국은 일반적 신뢰가 약하고, 가족 신뢰만 강한 대표적인 '불신 사회'다. <제3의 자본> 94쪽 표에 따르면 가족을 신뢰한다는 응답자의 비중은 OECD 12개국 평균인 86.9%보다 높았으나, 낯선 사람을 신뢰한다는 응답자의 비중은 평균 33.9%보다 낮은 13.4%를 기록했다.
 <제3의 자본>(이동원 외)에 따르면 한국은 일반적 신뢰가 약하고, 가족 신뢰만 강한 대표적인 '불신 사회'다. <제3의 자본> 94쪽 표에 따르면 가족을 신뢰한다는 응답자의 비중은 OECD 12개국 평균인 86.9%보다 높았으나, 낯선 사람을 신뢰한다는 응답자의 비중은 평균 33.9%보다 낮은 13.4%를 기록했다.
ⓒ 일베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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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의 우월감은 '평범한 지위 획득'에서 나오므로 열등한 존재로서 '찐따'의 특징을 자꾸 설명하는 건, '어떨 때 평범함의 범주에서 벗어나는지, 나는 이미 안다'라는 일종의 우월감 재확인 의례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일베에게 '찐따'에 대한 연민을 기대하는 건 힘들다. 오히려 "찐따는 조금만 잘해줘도 나대고 기어오르"므로 "조련이 절실히 필요한 애들"이라는 주장(추천 314, 반대 161), "찐따들 불쌍해서 잘 대해주면 어찌되는 줄 아냐? 이 XX들이 눈치도 없이 기어오른다"(추천 373, 반대 196)라는 주장 등이 힘을 얻는다.

여기서도 '나댐'에 대한 혐오와 뿌리 깊은 인간 불신이 눈길을 끈다. 일베를 데이터베이스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비슷한 성향의 이용자들끼리 비슷한 정보만을 공유하며 마침내 '과학적인(?) 편견'까지 등장한다(나도 학창 시절에 비슷한 경험있다→사회에서도 그렇더라→한국인들의 종족 특이성이 분명하다→인간의 본능인갑다). 현철우씨는 "일베는 따지고보면 대단히 폐쇄적인 커뮤니티라고 볼 수도 있다"라고 평가했다.

또르*: "인간은 평등한데 기어오르고 말고 하는 게 어딨냐 웃기는 놈이네"
페페***: "내가 너의 기억 중 어느 한 부분을 자극했다면 미안하다. 다만 내 짧지도 길지도 않는 삶에서 찐따 XX들한테 잘해주니 백이면 아흔아홉 정도는 그 친구들이 좋지 못한 행동으로 이끌더라고 자기한테나 타인한테나"
배재*: "찐따의 특성이라기 보단 한국인의 종특 아니냐? 나보다 아래놈한테 잘해주면 이 XXX들은 처음에만 고마워하지 결국 자기보다 아래라고 생각하고 만만하게 본다"
彌*: "인간은 차별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다. 타인 위에 서는 존재가 되어라"

우리는 '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일베는 뿌리깊은 인간 불신의 이면에서 여전히 타인의 인정(사랑)을 갈구한다. '찐따에게 잘 대해주면 안 된다'는 글을 올린 글쓴이(페페***)조차도 "진정한 우정은 있지 다만 그것이 찐따와 함께하지 않을 뿐"이라며 여지를 남긴다. 여기서 '우정'을 '사랑'으로 '찐따'를 '김치녀'로 바꿔도 일베의 전반적인 경향과 어긋나지 않는다.

일베는 데이트 좌절 경험을 여성혐오의 원체험으로 가져가면서도 여전히 사랑을 갈망하며 혼란스러워한다(관련 기사: 너는 왜 날 사랑하지 않는 거니). 인정욕구는 양날의 검과 같다. 왜곡되면 우월욕구로 변질 돼 서로를 억압하려 들지만, 사회적 약자가 '무시'를 당해 '분노'를 느끼면서 표출하는 인정욕구는 종종 '나의 존엄성을 인정해달라'는 인정투쟁의 원동력이 되면서 사회의 진보를 이끌어낸다(악셀 호네트 <인정투쟁> 참조).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뤄지는 12일 오전 서울 청운동 경복고에 마련된 시험장에서 수험생들이 책을 펴놓고 마지막까지 하나라도 더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뤄지는 12일 오전 서울 청운동 경복고에 마련된 시험장에서 수험생들이 책을 펴놓고 마지막까지 하나라도 더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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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누리는 인류 역사 상 대부분의 정치적 진보는 '인정투쟁'이 이루어낸 결과다. 꼭 인정투쟁이 아니어도 좋다. 청년들이 어떤 삶을 꿈꾸던, 한국 사회는 청년이기 전에 청소년이었던 이들이 자신의 삶의 대안을 '상상'해낼 수 있는 자율적 능력을 기를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일베는 그런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고 그래서 '평범함'이라는 꿈 이상의 무언가를 잘 상상해내지 못하는 기능 장애에 걸려 있다.

주관적이고 특수한 심리 상태로서의 '고통'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자꾸 '누구나 고통 하나쯤은 있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수렴한다. 친밀성 좌절 경험이 인간 불신으로 이어져 타인에게 신뢰를 잘 주지 못하고 타인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도 상상력이 부족한 상황에 빠져 있다. '찐따'에 대한 냉소가 보여주듯 그 원체험은 '학창 시절'을 정확히 가리킨다. 학교는 청소년들이 세상을 '인식'하는 관점과 사람들 사이에 '관계 맺기'를 동시에 습득하는 몇 안 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현재 학교는 물리적으로는 아이들을 한 장소에 모이게 해 서로 웃고 떠들고 동고동락하게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주입식 입시 경쟁 체제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공간이 단절된 채 어쨌든 서로를 잠재적 적으로 받아들이고 각자도생과 처세를 습득하게 하는 곳이다. '수포자' '영포자'까지 양산되고 하버드대생도 잘 풀지 못한다는 살인적인 수학, 영어 학습 부담을 이제 그만 줄여야 한다. 대신에 아이들에게는 철학 교사가 필요하다.

토론 수업에서 서로를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며 대화하는 가운데 인간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해주어야 한다. '고통'의 의미에 대해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 역시 주어져야 한다.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생전에 언어가 생각을 조작하고 가둬버릴 수 있음을 경고했다. 철학적 사유는 조작된 언어들을 폭로하고 재정립하는 과정이다.

그 명확해진 언어의 의미들을 재조합할 수 있을 때, 아이들은 자기 삶의 주인으로 거듭날 것이다. '평범하고 줄 세울 수 있는 '고통'은 없다'. 일베 청년들의 고통 역시 마찬가지다.


태그:#일베, #찐따, #고통, #평범,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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