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형식을 취한 재난-SF 호러물 <클로버필드>(2008)는 제한된 시점이 주는 공포감이 돋보인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영화 전체가 뭔가 큰 떡밥처럼 느껴져서 그다음이 더 궁금한 영화이기도 했죠.

<클로버필드>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클로버필드 10번지>(2016)는, 전작에서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한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단초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다음 편에서 계속될 모험을 암시함으로써 더 큰 떡밥을 던지면서 끝나지요.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닙니다. 세계관의 연결을 위해 영화 앞뒤에 덧붙여진 장면들을 걷어내면, 탄탄하게 구성된 서스펜스 호러물이라는 몸체가 드러나니까요. 폐쇄된 공간에서 함께 갇힌 타인을 공포의 대상으로 삼아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이 장르의 특성을 교과서적으로 잘 구현하고 있습니다.

클리셰의 현명한 활용


그러고 보면 이 영화에는 호러 영화의 클리셰들이 많지요. 주된 배경이 되는 미국 내륙의 농장은 무수한 미국 호러 소설과 영화의 무대였습니다. 고립된 위치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폐쇄적인 성향 때문이지요. 핵전쟁을 대비해 만든 벙커 역시 냉전 시기에 많이 등장했던 SF 호러물에서 자주 봤던 설정입니다. 게다가, 호러 영화의 다양한 하위 장르에서 공포의 대상으로 자주 설정된 사이코패스 살인마, 외계 생명체, 재난, 처음 만난 사람(stranger) 등이 총출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요소들은 관객들에게 지금 보고 있는 영화가 호러물이라는 걸 지속적으로 환기합니다. 앞으로의 전개가 호러 영화의 장르 공식을 따를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관객들은, 바로 그 때문에 앞일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행동하는 등장인물들을 더욱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각본은 일반적인 호러 영화와는 다르게 캐릭터 구축에 좀 더 신경을 쓴 편입니다. 주요 등장인물 세 명 모두에게 그럴싸한 과거사를 설정해 놓고 그것을 적절한 시점에 흘림으로써, 긴장감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증폭시키는 효과를 얻어내지요. 또한, 복선들이 촘촘하게 잘 깔려 있어서 그것들을 찾아내고 맞춰 보는 것도 영화 보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아쉬운 연출을 멋진 연기로 극복

그러나 연출이 좀 아쉬운 편입니다. 좋은 연출자라면 배우의 연기, 샷 구성, 편집만으로도 긴장감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영화의 감독 댄 트라첸버그는 부족한 부분을 음악으로 채우려 할 때가 종종 있거든요. 그래서 영화 음악이 관객의 감정보다 약간 앞서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꽤 있습니다. 아무래도 감독이 신인이라는 점을 고려해야겠죠.

배우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는 불안정한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희생자이면서도 도발적인 매력을 가진 주인공 '미셸' 역할에 그야말로 딱 들어맞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에 맞서는 베테랑 배우 존 굿맨 역시 특유의 몸집과 표정 연기로 카리스마를 발산하죠. 존 갤러거 주니어 역시 이 두 사람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충분히 드러냅니다.

<클로버필드>의 다음 속편이 무슨 내용을 어떤 형식으로 담아낼지는 아직 예측하기가 힘듭니다. 이 영화 <클로버필드 10번지>는 단지 세계관만 공유하고 있을 뿐이니까요. 하지만 이 정도의 재미와 완성도를 갖출 수만 있다면 충분히 흥미로운 속편을 기대할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