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토트넘)은 올 시즌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극과 극의 입지를 보이고 있다. 대표팀에서는 여전히 의심의 여지가 없는 한국축구의 간판이자 보물 대접을 받고 있다면, 소속팀에서는 비싼 몸값에도 불구하고 주전 경쟁에서 밀려난 계륵 신세가 됐다.

손흥민의 엇갈린 위상은 지난해 토트넘 이적 이후부터 시작됐다. 이전까지만 해도 손흥민은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레버쿠젠을 거치며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했고, 3년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돌파하며 유럽에서도 인정받는 공격수 반열에 올랐다. 대표팀에서도 월드컵-아시안컵 등 큰 대회를 누비며 팀내 최다 득점을 기록하는 등, 박지성 이후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손흥민은 지난해 9월 토트넘에 입성하며 프리미어리그(EPL) 역대 아시아선수 최고 이적료인 400억의 몸값을 기록했다. 초반만 해도 뛰어난 골감각을 과시하며 EPL에서도 연착륙하는 듯 했으나 오래가지 못하고 부상에 발목이 잡혔다. 손흥민이 주춤한 사이 경쟁자들이 눈부신 활약을 보이며 주전 자리를 꿰찼고, 팀 성적까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면서 졸지에 손흥민의 입지가 애매해졌다.

물론 부상에서 돌아온 이후 주전과 교체멤버를 오가며 출전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포체티노 감독의 확실한 믿음을 얻는 데 실패하며 올 시즌은 사실상 '덜 중요한 경기'에나 기용되는 로테이션 멤버로 입지가 굳어진 듯한 모습이다.

도르트문트-본머스와의 지난주 2연전은 손흥민의 현 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 경기였다. 손흥민은 18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유로파리그 경기에서 선발출전하며 골까지 터뜨렸지만, 사흘 뒤 열린 21일 본머스와의 리그 31라운드 경기에서는 교체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어차피 유로파리그는 도르트문트와의 1차전에서 0-3으로 패하며 이미 탈락 가능성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반면 우승 가능성이 더 높은 본머스와의 리그전에서는 손흥민을 제외하고 기존의 주전들이 모두 나섰다. 결과적으로 손흥민 나선 도르트문트전은 2차전도 1-2로 패했고, 결장한 본머스전은 토트넘이 3-0으로 완승하며 우승에 대한 희망을 이어갈 수 있었다. 손흥민이 중요한 경기에서 우선적으로 믿고 내보내는 옵션이 아니라는 사실만 다시 확인한 셈이었다.

토트넘은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창단 첫 우승에 도전하고 있다. 2위를 기록 중인 토트넘은 선두 레스터시터와의 승점 차가 5점, 7경기를 남겨둔 현재 따라잡을 수 있는 범위의 격차다. 손흥민으로서는 어쩌면 박지성 이후 두 번째로 한국인 선수가 EPL에서 우승컵을 거머쥘수 있는 기회를 잡았지만 팀 기여도와 입지를 생각하면 마냥 좋아할 수만도 없는 처지가 됐다. 그렇다고 손흥민의 포지션 경쟁자들이 손흥민보다 떨어지는 활약을 보인 것도 아니니 크게 할 말이 없는 처지다.

소속팀에서 출전 기회 잡지 못하고 있는 손흥민

소속팀에서의 부진과 달리, 손흥민은 여전히 대표팀에서는 중요한 선수로 대우받고 있다. 손흥민은 이레적으로 슈틸리케 감독이 지휘하는 이번 3월 A매치 명단에서 제외됐다. 소속팀에서의 부진에 대한 질책의 의미가 아니라 배려였다. 손흥민은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2016 리우 올림픽 본선 와일드카드(23세 이상) 대상 선수로 낙점받으며, 소속팀과의 협력 차원에서 A팀 명단에서는 제외된 것이다.

손흥민은 와일드카드 발탁 조기 결정은 다소 이례적이다. 당초 손흥민이 유력한 후보 0순위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본선을 5개월이나 남겨둔 상황에서 특정 선수만 일찌감치 와일드카드로 낙점하는 것도 흔한 경우는 아니다. 지난 런던올림픽에서 와일드카드 무임승차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박주영도 이렇게 빨리 올림픽 출전을 보장받지는 않았다.

그만큼 손흥민이 한국축구에 있어서 중요한 선수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한편으로는 특별대우를 받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는 대목이다.

물론 손흥민이 대표팀에서 새삼 검증이 필요한 선수는 아니다. 손흥민이 소속팀에서 일시적으로 부진하다고 해도 기존 23세 이하 올림픽 선수들과 비교할 때 차원이 다른 실력과 경험을 쌓은 선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하필이면 유럽 진출 이후 가장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던 시점에, 정작 올림픽팀에서는 와일드카드로 무혈입성하는 듯한 모양새가 된 것은 아이러니하다. 손흥민의 와일드카드 발탁이 기정사실화되며 또다른 후보로 꼽히던 석현준(포르투)이나 다른 와일드카드 후보들, 올림픽을 꿈꾸는 많은 선수들의 입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손흥민도 '올림픽 출전보장'이라는 혜택에 안주하지 말고 더 분발이 필요하다.

올림픽 본선 출전 자체가 신태용호와 손흥민의 궁극적 목표는 아니다. 지금처럼 소속팀에서의 부진과 들쭉날쭉한 출전이 계속 된다면 설사 손흥민이 올림픽에 출전한다고 해도 경기력에서 보탬이 되지못할 수도 있다. 손흥민이 경험한 EPL이나 월드컵만큼은 아니라고해도 올림픽 본선 역시 결코 수준이 만만한 대회가 아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팀은 사실 공격보다는 수비 보강이 더 시급했음에도 굳이 손흥민을 먼저 선택한 것은, 그만큼 '세계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는 해결사'로서 손흥민에게 거는 기대가 막중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의가 계속 되면 권리인줄 안다'는 이야기가 있다. 냉정히 말해 올 시즌만 놓고봤을 때 손흥민은 실력으로 와일드카드를 쟁취한 게 아니라, 대표팀으로부터 배려를 받은 모양새다. 손흥민이 잘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선수가 없어서 와일드카드를 보장받았다면 그만큼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또한 손흥민이는 아직 군미필자라는 점을 감안할 때 병역혜택이라는 측면 역시 감안한 결정이다.

그만큼 손흥민이 대표팀과 한국축구를 위해 더 헌신할 수 있는 인재라는 믿음이 있기에 주어진 기회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속팀에서 지금부터라도 경기력을 더 끌어올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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