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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시 30분. 최근에 맞춰 놓은 알람 시각이다. 알람이라는 것은 그 시간에 일어나겠다는 자유의지의 표명이지, 못 듣거나 무시한다고 법의 저촉을 받는 건 아니다. 더구나 5분 간격으로 연달아 울리는 기능이 있으므로 처음 한두 개의 알람 따위는 꿈속에서 들려오는 배경음악쯤으로 여기고 넘어가기 쉽다. 나 또한 그랬다, 학부모가 되기 전까지는.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일주일이 흘렀다. 오전 7시 58분 스쿨버스를 태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보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혹자는 이것을 등교 전쟁이라 말하고, 다른 이는 '라이언 일학년 학교 보내기'라고도 표현한다. 불과 일주일이 지났을 뿐인데, 아이와 부모의 얼굴에는 극도의 피로감이 묻어난다.

아침잠이 많은 아내를 위해 만용을 부렸다. 큰 아이 아침밥과 등교는 내가 책임지겠노라고. 아무래도 저녁에 늦게 귀가할 확률이 절대적으로 높은 내가 총대를 짊어지는 게 가정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맞겠다 생각했다. 물론 그로 인해 밤 시간이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으리라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있었음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크나큰 착각이었다.

아이를 씻기고 재우는 저녁 육아보다 아이를 깨우고 먹여 등교시키는 아침 육아가 질과 양 두 측면에서 훨씬 더 힘들었다. 더구나 젯밥으로 여기던 밤의 자유시간도 밤 12시 이전에 집에 가서 쌀을 씻어 놓고 자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며 마냥 즐겁지 않았다. 나는 지각을 하더라도 아이만큼은 제때에 등교시켜야 한다는 절대 교리로 사는 학부모였다.

아이와 상의해 일주일치 식단을 짰다. 눈 비비고 일어나 입맛이 있을 리 없는 아이에게 최대한 좋아하는 메뉴를 들이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가급적 만들기 쉬운 것. 미역국, 콩나물죽, 삼각김밥 등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단골메뉴들을 권했다. 조금이라도 복잡한 메뉴는 못 들은 척 했다. 그렇게 식단표가 만들어졌다. 전쟁의 서막이었다.

이불 속으로 얼굴 파묻는 아이, 애잔하다

아침에 깨우기 위해 불을 켜고 이불을 걷어내면 저렇게 웅크리고 베게에 머리를 숨긴다.
▲ 기상을 위한 처절한 몸짓 아침에 깨우기 위해 불을 켜고 이불을 걷어내면 저렇게 웅크리고 베게에 머리를 숨긴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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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이 자세까지 만드는데 10분 이상이 소요된다
▲ 아침 기상을 위한 몸짓-2 아이를 이 자세까지 만드는데 10분 이상이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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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먹여야 하기에 아이가 좋아하는 메뉴로 일주일치 식단을 짰다.
▲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위한 아침 식단표 억지로 먹여야 하기에 아이가 좋아하는 메뉴로 일주일치 식단을 짰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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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가 시작됐다. 오전 8시 넘어 겨우 고양이 세수만 하고 유치원 버스 타러 달려가던 아이가 무려 1시간을 앞당겨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일어나야만 했다. 나는 오전 6시 반에 일어나 밥솥의 취사 버튼을 누르고, 국을 끓이거나 재료준비를 한다. 7시부터 아이를 깨워야 7시 20분께 겨우 아이를 식탁에 앉힐 수 있다. 깨우면 깨울수록 한 마리 슬픈 장끼처럼 이불 속으로 얼굴만 파묻는 큰 아이의 뒤태가 애잔하다.

그렇게 비몽사몽간 아침을 먹는 사이, 나도 부지런히 출근 준비를 한다. 뒤늦게 일어난 아내가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동안 번개처럼 해치워야 한다. 7시 50분이면 모든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선다. 아파트 입구의 스쿨버스 승차장에 도착하면 7시 55분이다. 생각보다 많은 초등학생들이 그 시간에 등교를 하고 있다. 생기 있는 얼굴을 찾아보기 어렵다.

등교 전쟁은 아이와 나의 생활 패턴을 바꿔놨다. 먼저 긍정적인 변화부터 살펴본다. 하루가 길어졌다. 1시간을 일찍 일어난 결과, 아이를 스쿨버스에 태우고 바로 나도 버스를 이용해 출근한다. 출근 시간 30분 전에 직장에 도착해 차 한 잔 마시며 여유롭게 신문을 읽는다. 늘어난 시간만큼 삶에 여백이 생긴다. 아이에게는 놀 수 있는 시간이 약간 늘어나서 좋을 것이다.

귀가 시간을 엄수하게 된다. 어쩌다 술자리가 있는 날도 자정을 넘기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 기상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과감하게 자리를 떨치고 일어난다. 그러다보니 술값도 줄고, 이튿날 숙취에 시달릴 일도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일찍 귀가하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아이는 취침 시간을 엄수하는 규칙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다.

일찍 일어난 새는 관절염으로 고생하지 않을까

7시 10분쯤 일어나서 옷 갈아 입고 식탁에 앉은 아이의 모습이다. 저 상태에서 밥이 제대로 넘어갈리가 없다.
▲ 아침 밥상을 앞에 두고 잠이 덜깬 아이 7시 10분쯤 일어나서 옷 갈아 입고 식탁에 앉은 아이의 모습이다. 저 상태에서 밥이 제대로 넘어갈리가 없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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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시간에 스쿨버스를 타기 위해 직장인인 부모보다 먼저 집을 나서는 아이들
▲ 초등학교 아침 등교길 정해진 시간에 스쿨버스를 타기 위해 직장인인 부모보다 먼저 집을 나서는 아이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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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과연 일찍 일어나는 새만 벌레를 잡는 것일까? 물론 잡기는 잡을 것이다. 시간을 그만큼 벌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벌레를 잡기 위해 일찌감치 날갯짓을 시작했던 새들은 다른 새들에 비해 관절염과 오십견으로 고생하지 않을까? 이제부터 일찍 일어나는 생기는 병폐를 짚어본다.

제일 먼저, 잠도 덜 깬 상태에서 떠 넣는 아침식사가 제대로일 리가 없다. 씹는 둥 마는 둥 삼키는 음식물은 소화불량을 유발할 것이고, 어설픈 아침 식사는 점심 때까지 주린 배를 쥐고 수업에 참여하게 만든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위장장애의 환경 속으로 아이를 몰아넣는 것이다. 나 또한 아이와 함께 집에서 나오기 위해 국에 대충 말아 후루룩 넘기는 게 전부였다. 출근 후 속은 당연히 더부룩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만 하는 아이는 온종일 피곤하다. 그렇다고 오후 내내 낮잠을 재울수도 없는 일이다. 낮 동안 열심히 뛰어노는 것이 아이들만의 특권 아니겠는가? 저녁 먹다 식탁에 엎드려 잠들었다는 아이들의 이야기도 들려온다. 특별한 과외나 학원을 보내는 것도 아닌데, 피로에 지쳐있는 초등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이것이 과연 잘하는 교육인가 싶다.

9시 등교가 부러울 따름이다

오전 9시로 등교시간을 연장하는 걸 반대하는 의견 중에는 결국 30분 늦게 가고 30분 늦게 오는 것 아니냐는 여론도 있다. 절대 시간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태도다. 늦게 일어나는 아이들은 등교시간을 30분 늦추면 여전히 거기에 맞춰 늦게 일어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부모 출근 전에 아이들 등교시켜야 하는데 무슨 소리냐며 언성을 높이는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어른과 사회의 시각으로 보면 그깟 30분이 별거 아닐지도 모른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야 할' 나이에 이 무슨 게으른 소리냐고? 아이에게 근면성실함을 길러주기 위해서 잠든 얼굴에 물이라도 끼얹을 법한 그분들께 묻고 싶다. 벌서듯 엉덩이만 들어올린 채 잠들어 있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는지. 당신의 유년시절을 한번 되돌아보라. 어느 군인처럼 기상나팔과 동시에 벌떡 일어나 등교한 날이 며칠이나 되는지.

근처 초등학교의 등교시간은 오전 8시 30분으로 통일돼 있다. 경북도교육청에 문의한 결과, 등교 시간은 학교장 권한이라고 한다. 지난해부터 등교시간을 9시로 늦춘 서울, 경기 및 그 밖의 일부 지역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아이들이 이 상태로 학교에 가서 과연 무엇을 얼마나 배우고 생활하는지, 삐딱한 나의 시선은 그것이 궁금할 뿐이다.

[지난 기사]

③ 만국기 펄럭이는 입학식, 이젠 옛날 이야기인가요
② 세상에, 아들 졸업식서 아빠가 상을 받았어요
① 아파트로 계급 매긴다는 아이들, 경악했다


태그:#등교시간 연장, #스쿨버스, #등교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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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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