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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역사를 나누는 기준은 여러 가지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사춘기 전과 후, 군복무 전과 후, 결혼 전과 후 등등. 개인의 사고와 행동에 큰 변화가 생기는 건 물론이고, 그 개인을 바라보는 사회와 주변의 시선에 특정 기준이 생기며, 요구사항 또한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 처음을 나누는 기준은 초등학교 입학식이다. 유아, 원생 등의 병아리빛 허물을 벗고,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갈아타기 때문이다.

입학식 한 달 전부터 요란했다. 친분이 있던 다양한 인맥들로부터 선물과 축하 메시지가 쏟아졌다.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신겨도 될 넉넉한 사이즈의 운동화들부터, 봇짐을 연상케 하는 물 건너온 가방에, 종합 선물 세트로 구성된 학용품까지…. 아는 이모들과 삼촌들과 진짜 친인척들까지, 큰 아이의 첫 입학식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차고 넘쳤다.

겉으로는 뭐 이렇게 난리법석이냐고, 짐짓 점잖은 척 했으나, 입학식 전날이 되자 나 또한 기대감에 부풀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월남치마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머리를 손수건으로 동여 맨 청순가련형 담임선생님을 꿈꾼 것은 아니다.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이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진정한 스승을 만나기를 고대했다. 참교육의 가치를 알고 실천하는 선생님다운 선생님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장손'의 입학식... 일가친척 총출동!

오래 입히려고 산 겉옷이 너무 크다. 내년에 동생 입학식때 입힐려고 고이 보관해 두었다.
▲ 초등학교 입학 기념 사진 오래 입히려고 산 겉옷이 너무 크다. 내년에 동생 입학식때 입힐려고 고이 보관해 두었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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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과 선배님들의 열렬한 환호와 관심을 받으며 입학식장에 들어서는 1학년 신입생들
▲ 입학식장에 들어서는 1학년 신입생들 선생님들과 선배님들의 열렬한 환호와 관심을 받으며 입학식장에 들어서는 1학년 신입생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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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교장선생님 말씀은 길고, 또 길다. 다행히 추운 운동장이 아닌 강당에서 진행되어 아이들은 조금 편했을것이다.
▲ 교장선생님 말씀 3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교장선생님 말씀은 길고, 또 길다. 다행히 추운 운동장이 아닌 강당에서 진행되어 아이들은 조금 편했을것이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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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식 날이 밝았다. 입학식 때 입히려고 사둔 상의는 소매가 너무 길어 안으로 두 번 접혀 입혔다. 내년에 동생 입히려면 깨끗이 입어야 한다는 깨알 같은 충고 또한 잊지 않았다. 장손(?)의 입학식답게 친가 쪽 가족이 총출동했다. 새벽에 출발해서 내려오신 할아버지, 할머니에 근무도 빼고 온 삼촌까지…. 좀 과하다 싶었지만, 다들 너무 궁금해해서 말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온 가족이 참석한 집은 우리집뿐이었다.

운동장에는 만국기가 펄럭이고, 학교 앞 정문은 꽃다발을 파는 상인들로 북적거리고, 전문 사진사들이 호객행위를 하는 그런 입학식일거라는 예상은 과녁을 완전 벗어난 것이었다. 현수막 한 장 없이 고요한 학교는 호들갑스럽지 않고 차분했다. 미리 도착한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교실에 앉아 담임선생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전교생 100명 중 1학년 신입생이 24명인 시골 초등학교의 입학식. 입학식은 강당에서 진행됐다. 칼바람이 부는 운동장에서 상의 왼쪽에 부착된 손수건으로 연신 코를 닦아가며 진행했던 유년 시절은 이미 흐린 기억 속의 그대였다. 신입생 입장식과 새롭게 발령받아 오신 선생님들의 소개가 끝나고 드디어 저 유명한 '교장 선생님 말씀'의 시간이 도래했다.

슬픈 예감이 틀리지 않듯, '교장 선생님 말씀'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교장선생님들 연수 프로그램 중에 길게 말하기 배우는 시간이 있는 건 아닐까? 교장 선생님들 밴드나 카톡방에서 연설 길게 하는 노하우 등이 공유되는 건 아닐까? 양식이 갖춰져 있어 그대로만 읽어도 길어질 수밖에 없는 건 아닐까? 마침내, 길이 측면에서는 30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교장 선생님 말씀'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과연 누가 아이의 짝꿍이 될 것인가

입학식때 받은 선물을 풀어보느라 다들 정신이 없다. 앞으로 1년간 이 공간에서 공부하고, 놀고, 때론 다투며 우정을 쌓아가리라.
▲ 산동 초등학교 2016년도 신입생들 입학식때 받은 선물을 풀어보느라 다들 정신이 없다. 앞으로 1년간 이 공간에서 공부하고, 놀고, 때론 다투며 우정을 쌓아가리라.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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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식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와서 방과 후 학교와 돌봄 교실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시골의 작은 학교임에도 저렴한 비용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한다. 실제로 월 수강료 1만5000원의 컴퓨터와 바둑부터, 2만 원의 골프, 피아노까지 다른 학교보다 절반 가까이 저렴하게 운영됐다.

오전 수업만 마치고 운동장에서 열심히 뛰어노는 아이를 상상했으나, 현실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친구들이 모두 방과 후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데, 우리 아이 혼자만 운동장에서 흙 파고 놀 수는 없지 않은가? 다행히 공부와는 크게 관련이 없는 과목들이고, 바둑 같은 경우는 직접 가르칠 생각까지 했던 터라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담임선생님의 설명을 듣는 동안에도 개구쟁이 녀석들은 선물 포장지를 뜯고, 떠들고, 돌아다녔다. 녀석들의 산만한 움직임과는 별개로 나의 눈동자와 머릿속도 빠르게 돌아갔다. 아이 한 명 한 명 눈여겨보며 중얼거렸다. 과연 이중에 누가 큰 아이 짝꿍이 될 것인가?

모든 아이들이 다 그렇겠지만, 착하고, 이해심 많고, 품행이 바르며, 용모 단정하고, 예의 바르며, 양보할 줄 알고, 예쁘기까지 하면서, 짝이 금을 넘어 와도 연필로 위협하지 않는 사려 깊은 아이가 짝이 되면 참 좋겠다는 꿈을 잠깐 꾼 것 같다. 모든 아이들은 사랑스럽고 평등하다는 보편적인 진리를 잠시 잊은 채 스멀거리며 기어오르는 부모의 이기심과 과욕을 고개 저어 저만치 내쫓는다.

초등학교 입학식은 더 이상 잔치가 아니다

전교생 100명의 시골 초등학교. 맑은 공기와 조용한 주변 환경, 무엇보다 아담하고 소박한 학교 분위기가 참 좋다.
▲ 산동초등학교 전경 전교생 100명의 시골 초등학교. 맑은 공기와 조용한 주변 환경, 무엇보다 아담하고 소박한 학교 분위기가 참 좋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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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식 날의 어수선함 탓인지 쌓인 업무가 많아서였는지 짝꿍을 정하는 건 다음날로 미뤄졌다. 좀 아쉬운 맛도 있었으나, 12명씩 딱 맞춰진 남녀 성 비율이 그래도 안심이다. 내일의 준비물을 다함께 확인하고, 담임선생님께 '안녕히 계십시오' 공손히 인사를 하고 모든 일정이 끝났다.

모두들 바쁜 엄마 아빠 아이들인지, 입학식 날 교정 여기저기서 사진 찍는 일은 이제 촌스러운 일이 돼버린 건지, 입학식이 끝난 학교는 정적이 흘렀다. 물론, 재학생들의 수업이 있는데 왁자지껄 떠드는 게 민폐라는 건 알겠지만, 쫓겨 가듯 사라지는 학부모와 아이들의 뒷모습은 영 개운치 않았다. 온 가족이 총출동한 우리만 남아서 기념 촬영도 하고, 학교도 구경했다.

첫 번째 젖니를 뽑으면 대부분은 보석처럼 여기며 조심스레 되받아간다. 예전처럼 지붕에 던지며 새 이를 달라고 외치지는 못하더라도, 베개 밑에 두고 자면 치아 요정이 가져가고 대신 선물을 놓고 간다는 걸 믿는 아이는 더 이상 없더라도, '처음'이라는 소중한 기억을 오래도록 보관하고 싶은 것이다.

아이의 첫 번째 입학식. 아이와 부모들이 조금 더 어우러질 수 있는 시간과 프로그램이 아쉬웠다. 내 아이와 함께 공부하고 뛰어놀 친구들과 부모들이 서로를 알 수 있는 시간을 바란다면 너무 조급한 부모일까? 엄마가 옆에서 한 말씀하신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식 때 부모들이 아무도 안와서 교실도 못 찾고 한참 헤맸다." 분명 그때보다 세상은 좋아지긴 한 것 같다.

[지난 기사 보기]

② 세상에, 아들 졸업식서 아빠가 상을 받았어요
① 아파트로 계급 매긴다는 아이들, 경악했다


태그:#초등학교 입학식, #산동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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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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