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울의 아들>의 한 장면. 수용소 내에서 유대인 절멸을 돕는 '존더코만도"임을 나타대는 붉은 엑스 표시를 한 채로, 아들의 주검을 내려다 보고 있는 주인공 사울의 모습.

영화 <사울의 아들>의 한 장면. 수용소 내에서 유대인 절멸을 돕는 '존더코만도"임을 나타대는 붉은 엑스 표시를 한 채로, 아들의 주검을 내려다 보고 있는 주인공 사울의 모습. ⓒ (주)비트윈 에프앤아이


때로 극영화에서 홀로코스트(나치에 의한 집단 살해)는 그저 '소비'되곤 합니다. 성장 서사에서 주인공이 극복하거나 피해야 할 '끔찍한 일'이거나, 전쟁물이나 액션물에서 나치 독일을 징벌하기 위한 '합당한 이유'로 등장하는 식이지요. 이렇게 대중의 오락을 위한 순화 과정을 거치며 추악한 역사적 범죄의 무게는 한없이 가벼워지기도 합니다.

영화 <사울의 아들>은 그런 경향에 맞서 홀로코스트의 처참한 실상을 담아내는데 전력을 다했습니다. 우선 충실한 고증 노력이 돋보입니다. 감독 라즐로 네메스는 역사 연구 자료와 생존자 증언 등을 바탕으로 이 영화를 기획했고, 촬영장을 세팅할 때도 역사학자의 도움을 받아 전구 하나까지 꼼꼼히 재현했다고 합니다. 이 영화의 시공간적 배경이 '존더코만도(Sonderkommando. 수용소의 시체처리반)들의 반란' 당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인 것 역시 실제 고증에 따른 것이지요.

표현 방식에서도 감독은 지옥도를 가상 현실 체험처럼 묘사하기보다 주인공 사울의 움직임을 따라다니는 카메라가 마치 손전등처럼 어둠의 일부를 드러내도록 했습니다. 여기에 사운드를 통해 관객이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사울 주변의 거의 모든 소리는 공들여 디자인됐습니다. 다양한 지역에서 끌려온 포로들이 썼을 법한 각종 언어가 그 예입니다.

이 영화에서 소리의 힘은 무척 셉니다. 관객의 상상력을 증폭시켜 나치의 유대인 말살 정책의 끔찍함과 역겨움을 날것 그대로 전달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기존 영화들의 홀로코스트 묘사가 얼마나 순화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들의 시체를 잘 묻겠다며 헤매고 다니는 아버지의 모습을 전면에 내세운 이야기 구성 역시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기존 극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의 관습적 기대-어찌 됐든 주인공은 고난 끝에 자기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는-를 이용해 극에 대한 집중도를 높일 수 있었으니까요.

이 영화에서 사울과 다른 존더코만도들이 상징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태도입니다. 과거의 비극을 제대로 기억하고 추모하는 태도, 그리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미래를 강조하는 태도.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는 너무나도 명백해집니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 역시 수많은 아픔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멀게는 일제의 만행부터, 가깝게는 세월호의 비극까지.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역사적 비극에 대해 제대로 기억하고 반성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왜곡하고, 심지어 죄상을 감추려 했었죠. 앞으로 더 잘 살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요. 어쩌면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몇몇 처참한 모습은 백 년 넘게 지속된, 역사적 비극에 대한 이런 잘못된 태도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영화 <사울의 아들> 포스터

영화 <사울의 아들> 포스터 ⓒ (주)비트윈 에프앤아이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오윤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사울의 아들 게자 뢰리히 라즐로 네메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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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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