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귀향>의 한 장면 일본군에게 끌려가는 소녀

▲ 영화 <귀향>의 한 장면 일본군에게 끌려가는 소녀 ⓒ (주)와우픽쳐스


3·1절을 하루 앞둔 지난 2월 29일 오후, 영화 <귀향>을 보고 왔다. 이른바 예상치 못한 흥행 돌풍에 과연 어떤 영화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3·1절이 되기 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평일 낮에 찾아간 동네 극장 안은 절반 가까이 차 있었다. 소위 말하는 흥행작도 아닌데 방학임을 고려하더라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앉아있었다. 의외였다. 흥행이 꽤 잘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귀향>은 5일 만에 100만을 돌파하면서 극장가에 핫이슈가 되고 있으며 3·1절 하루 동안에만 45만 명이 관람하면서 이제 신드롬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게 됐다. 처음 전국적으로 상영관을 잡지 못했던 초기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줄거리, 하지만...

그런데 사실 영화의 줄거리와 내용은 새로울 것이 없었다. 14살 어린 나이에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가 겪는 절망과 고통의 시간, 그 안에서 서로 나누는 소녀들의 아픈 사연과 우정, 그리고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치유되지 못한 역사의 아픔까지 모든 이야기가 새롭다기보다 너무 익숙했다.

하지만 왜일까 어느 장면에서부터인가 흐르는 눈물이 끊길 줄 모른다. 어쩌면 충분히 예상했을 법한 결말을 보면서 특히 그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왜일까.

새롭지 않지만, 영화는 지루하지도 않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공감될만한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낸다. 소녀들이 당하는 고초와 고통이 드러나는 장면들조차 아주 자극적이지 않음에도 아주 아프고 매우 힘들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지금 살아있는 혹은 떠난 할머니들의 얼굴이 함께 떠올랐다. 정부가 역사적 합의라며 떠들어 대고 있는 지난 연말의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후에도 할머니 두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 이제 확인된 피해자 할머니들은 불과 44분밖에 남지 않았다. 남은 분들도 물론 아흔 전후의 고령으로 언제까지 살아계실지 알 수 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짓눌렀던 힘겨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 속에 흘러가는 고통스러운 이야기들이 어쩌면 아직도 현실에서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실 할머니들은 어떤 고통을 다시 느끼실지 쉽게 가늠되지 않는다. 어제 97번째 삼일절 기념식이 열렸지만, 아직도 우리는 일본과 한국 정부 모두에게 법적 배상, 진상규명을 외쳐야 하는 현실에 살고 있다.

영화의 내용만큼이나 제작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귀향>은 제작이 추진되던 초기부터 오늘까지 수없는 난관을 가까스로 이겨낸 작품이다. 극장에 걸리기까지 걸린 14년이라는 기간이 말해주듯 어렵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조정래 감독은 2002년 '나눔의 집' 봉사활동을 하면서 영화를 기획했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며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하지만 제작에 관한 준비를 마쳤음에도 제작비를 마련하지 못해 온라인 모금을 통해서야 지난해 4월 촬영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알려진 것처럼 불과 나흘 만에 제작비가 모두 동났고 제작 무산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 제작진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일반인들이 추가로 투자에 나서면서 위기를 넘어섰다.

영화를 모두 완성하고 나서도 어려움은 계속됐다. 정작 상영관을 확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2주 전만 해도 귀향은 전국에서 상영관을 구하지 못한 가운데 보고 싶어도 보기 힘든 영화였다. 하지만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예매운동에 나서고 직접 청원 운동 등을 통해 극장에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이에 한두 극장씩 이에 반응을 보이면서 차츰차츰 상영관이 늘어났다. 온라인 제작비 모금부터 상영관 마련까지 관객들이 또 한 번 고비를 넘는 데 힘을 모은 것이다. 지금도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통해 상영관이 많아지고 상영 일자도 차츰 늘어가고 있다.

손수건이 없으면 휴지라도 챙겨라

영화의 뒷이야기도 화제가 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극 중 악독한 일본군으로 나오는 영화에서 악독한 일본군을 연기하기도 한 임성철 프로듀서가 화제다. 임 프로듀서는 백범 김구 선생의 외종손이다. 그는 집안이 어려워 건설현장에서 다니며 간신히 대학에 갈 정도로 힘겨운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사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김구 선생의 자손이면 뭐하냐는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영화가 끝난 후 올라가는 엔딩 크레디트 또한 특별한 감동을 안겨준다. 일반적인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와 달리 <귀향>은 제작과정에서 모금에 참여한 7만5200명의 이름이 제작진보다 먼저 화면에 올라간다. 빼곡히 올라가는 이름과 닉네임 등을 보며 영화만큼이나 큰 감동을 할 수 있다. 또한, 후원자들 이름 위로 보이는 할머니들의 그림도 짠하게 전해온다. 할머니들이 함께 사는 나눔의 집에서 직접 그린 그림들은 때론 아름답게 때론 고통스럽게 마음을 전해준다.

몇 달 전 <귀향>에 대해 제대로 알기 전 영화 제작비가 부족하다며 모금을 해달라는 내용의 글을 인터넷에서 접한 적이 있었다. 당시 바쁘다는 핑계로 자세히 읽지도 않고 제작비 펀딩에 참여하지 못했는데 끝없이 올라가는 후원자들을 이름을 보며 몹시 부끄러웠다.

우리가 사는 일상이 언제이든 바쁘지 않은 시간이 있었던가 돌아보게 된다. 정작 해야 할, 이 시대의 한 구성원으로서 힘을 보태야 할 순간에 여전히 주변인으로 살아 있었던 데 대한 자책이 스스로 쏟아졌다. 혹여나 작은 힘들이 부족해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오지 못했더라면 어쩔 뻔했는지 안도의 한숨도 지어졌다.

오늘도 <귀향>을 보기 위한 행렬은 이어지고 있다. 특히 가족관람이나 단체 관람이 많다고 한다. 현재에 이어지고 있는 역사를 살아있는 그대로 배우는 것이라며 아이들과 함께하는 어른들이 많다고 한다. 심지어 다른 이들을 위해 극장을 대여하는 적극적인 관객들도 생기고 있다. 말 그대로 <귀향> 신드롬이 아닐 수 없다.

이 <귀향> 행렬이 오랫동안 이어졌으면 좋겠다. 더욱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영화 속 이야기가 오늘까지 이어지지 않고 어서 마무리됐으면 좋겠다. 살아계신 할머니들만이라도 분명한 역사적 해결의 순간을 보시고 떠나실 수 있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좋겠다.

끝으로 한 가지, 극장으로 향할 때 꼭 손수건을 챙기길 권한다. 손수건이 없다면 휴지라도 충분히 챙기고 가시라.

특히 아저씨들은 흐르는 눈물에 당황하지도 옆 사람 눈치 보지도 마시길 바란다.

영화 <귀향> 포스터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영화 <귀향>에 관객이 몰리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 영화 <귀향> 포스터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영화 <귀향>에 관객이 몰리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 (주)와우픽쳐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대구 강북지역 작은 언론 <대구강북신문>(www.kbinews.co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귀향 아저씨 위안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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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살고 있는 두아이의 아빠, 세상과 마을에 관심이 많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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