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이 그야말로 진짜 '백인들만의 잔치'가 될 전망이다.

오는 28일(현지시각)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열리는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흑인 영화인들이 대거 불참을 선언, 인종차별 논란이 더욱 가열되고 있다.

지난달 아카데미상 주최 측이 발표한 남녀 주·조연상 후보 20명이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모두 백인 배우들로 구성되자, 소셜미디어에서는 'OscarsSoWhite'(오스카는 너무 백인 중심적)라는 해시태그가 달리며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그러나 <말콤 엑스> <정글 피버> 등 흑인 인권을 다룬 작품을 연출한 스파이크 리 감독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시상식 불참을 선언하며 "2년 연속 연기상 후보 20명이 전부 백인이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흑인 배우 윌 스미스도 아내 제이다 핀켓 스미스와 함께 불참을 선언했다. 그는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카데미상이 나쁜 방향으로 가고 있다"라며 "미국의 가장 큰 힘은 다양성에서 나온다"라고 일갈했다.

일부 백인 배우도 가세했다. <마션>으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맷 데이먼은 "2년 연속 유색인종 배우가 후보자 명단에 없다는 것은 굉장히 부끄럽고 당황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아카데미, 뒤늦은 '구색 맞추기'도 비난

아카데미 시상식을 거부한 흑인 영화인들이 향하는 곳은 최근 '납 수돗물' 파문으로 시끄러웠던 미시간 주 플린트의 자선 행사다.

흑인 주민이 많은 플린트는 예산 절감을 위해 수원지를 디트로이트 수도 망에서 오염이 심각한 플린트 강으로 바꿨다가 납이 섞인 수돗물을 공급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인종차별 논란이 뜨거운 곳이다.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965년 흑인 참정권 운동을 촉발한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셀마-몽고메리 행진'을 영화로 만들어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에바 두버네이 감독, 흑인 가수 자넬 모네 등이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날 LA가 아닌 플린트로 향한다.

흑인 배우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주최 측은 수습에 나섰다. 흑인 배우 겸 코미디언 크리스 록을 시상식 진행자로 내세웠고, 케빈 하트와 우피 골드버그 등 흑인 배우들을 시상자로 초청했다.

한국의 이병헌과 조수미도 공식 초청을 받아 참석한다. 주제가상 후보에 오른 '유스'의 노래 '심플 송'을 부른 조수미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관례대로 무대에 올라 축하공연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주최 측의 이런 뒤늦은 수습도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특히 진행자로 나설 록은 특유의 입담을 앞세워 아카데미상의 인종차별에 대한 강력한 '디스'를 예고했다.

대대적 개혁안 발표... 아카데미는 바뀔까?


그러자 아카데미상을 주관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대대적인 개혁안을 내놓았다. 셰릴 분 아이작스 AMPAS 회장은 지난 22일 성명을 통해 "아카데미 회원의 여성·소수계 비율을 2020년까지 2배 이상 늘리겠다"라고 발표했다.

아울러 회원의 투표권 행사 기간을 10년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또한, 최우수작품 상 후보를 10편으로 늘리고 남녀 주·조연상 후보를 대폭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 같은 개혁안이 흑인 영화인들의 마음을 돌려놓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런 가운데 흑인차별 반대 운동을 펼치는 전미행동네트워크(NAN)의 앨 샤프턴 목사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LA 할리우드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