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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도축을 금지하고 있는 일반 소와 뒤섞여 평화롭게 누워 있는 물소. 인도에서 도축이 허용되고 있는 물소는 고오타마 붓다의 수많은 전생 중에 하나였다고 한다.
 인도에서 도축을 금지하고 있는 일반 소와 뒤섞여 평화롭게 누워 있는 물소. 인도에서 도축이 허용되고 있는 물소는 고오타마 붓다의 수많은 전생 중에 하나였다고 한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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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시아리 언덕 위에 물소 몇 마리가 누워 있다. 누군가 새벽부터 물소들을 풀어 놓은 모양이다. 인도에서 도축이 허용되는 물소. 힌두교에서 도축을 엄하게 금지하는 일반 소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왜 저 물소만을 도축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일반소와 서로 적대감 없이 평화롭게 뒤섞여 있는 물소들을 저만치 거리에 두고 앉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생각을 따라간다.

사람들은 닭고기를 수시로 먹으면서 개고기를 먹는 것을 혐오한다. 사람과의 친밀한 관계 혹은 종교적인 이유로 먹거나 먹지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소중한 생명체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 생명체가 맛있는 먹잇감이 된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꽃을 그저 아름답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꽃을 향긋한 맛으로 먹는 사람도 있다.

고오타마 붓다의 전생을 다룬 불교설화집, 본생담(本生談)에 물소가 나온다. 물소 역시 부처님의 수많은 전생의 생명 중에 한 생명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고 부처님을 하늘처럼 받들고 있는 불교인이 물소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물소 역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먹어야 한다.

대자연은 거대한 생명체다. 또한 대자연은 생명체이면서 생명을 살리는 한울이다. 동학에서 이천이식(以天食天), 한울이 한울을 먹는다는 말이 있다. 한울이 한울을 먹으면서 서로가 서로를 살린다는 것이다. 서로에게 한울의 기운을 통하게 한다는 것이다. 대자연의 순리가 그렇듯이 한울을 먹은 기운은 한울에 되돌려 놓아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서로가 서로를 살릴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많이 먹겠다는 인간의 탐욕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게 만든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게 되면 한울의 기운이 뒤틀어진다. 한울의 기운이 뒤틀어지면 인간을 비롯한 대자연의 모든 생명들이 뒤틀어지기 마련이다. 인류의 성인들이 탐욕을 멀리하고 사랑과 자비심을 베풀라 강조하는 것은 그 뒤틀린 한울을 바로 잡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다.

물소들은 여전히 아무런 생각 없이 무엇인가를 오물오물 되새김질을 하고 있고 나는 무엇인가를 먹고 그 기운을 한울에 되돌려 놓아가며 살아가고 있는가 라는 생각을 되새김질 하고 있었다. 그 관념적인 생각들을 비워낼 무렵 아침 해가 히말라야 설산 머리 위로 훤히 떠올랐다.

가깝게는 30분, 멀게는 한 시간 반 걸어 등교하는 아이들

언덕 길 오르는 여학생들. 저 멀리 언덕 너머에서부터 걸어왔다고 한다.
 언덕 길 오르는 여학생들. 저 멀리 언덕 너머에서부터 걸어왔다고 한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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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곱 시 쯤 되자 교복을 입은 열댓 살 쯤 돼 보이는 여자 아이들이 저만치 햇살 고운 언덕을 타고 걸어온다. 학교에 가고 있다.

"어디서부터 걸어왔어요?"
"저기 언덕 너머요."

한 여학생이 저 멀리 언덕 너머라고 손짓한다. 여학생들에게 좀 더 말을 붙여보려고 다가가자 다들 고개를 숙이며 수줍게 지나친다. 잠시후 남자 아이들 셋이 다가왔다. 그중 한 아이가 느닷없이 "하우 아유?" 인사를 한다. "아임 파인, 앤드 유?" 했더니 그 아이 역시 정석대로 "아이 엠 파인"으로 대답한다.

그리고 나서 "어디서 왔습니까?", "나이가 몇 살입니까", "혼자서 왔습니까?", "가족은 있습니까?" 등등 마치 나를 상대로 기초영어를 연습하듯 물어온다. 영어를 제대로 못하는 나를 영어 회화 연습상대로 삼다니, 녀석들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아이들은 "이곳 문시아리를 어떻게 알고 왔습니까?", "인도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한국에서는 아이들이 어떤 공부를 합니까?" 등등 깊이 있는 영어로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공세를 퍼붓는다. 몇 마디 간단하게 대답해 놓고 나는 이실직고 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요. 질문에 대답할 만큼 나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합니다."

녀석들이 학교가 자리한 언덕 위로 걸음을 재촉하는 사이 녀석들보다 나이가 많은 열일곱 여덟쯤 돼 보이는 남학생 하나가 언덕 위에 앉아 있다. 조금 전 한 아이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내가 질문을 퍼부어 댔다.

"학생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어디서부터 걸어왔나요?"
"저기 저 마을에서요."

언덕 위에서 여동생을 기다리고 있는 남학생
 언덕 위에서 여동생을 기다리고 있는 남학생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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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가구가 살고 있다는 저 멀리, 다랭이 밭이 펼쳐져 있는 마을에서 한 시간 넘게 걸어왔다고 한다.
 20여 가구가 살고 있다는 저 멀리, 다랭이 밭이 펼쳐져 있는 마을에서 한 시간 넘게 걸어왔다고 한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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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손짓한 마을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그 주변으로 다랭이 밭이 펼쳐져 있다. 20여 가구가 살고 있다는 마을에서부터 이곳 문시아리 언덕을 거쳐 학교까지 한 시간 이상 걸린다고 한다. 마을까지 가려면 꼬불꼬불한 산길을 타고 오르락내리락 해야 한다.

"왜 학교에 가지 않고 거기에 있나요?"
"동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을에는 자신의 여동생을 비롯해 다섯 명의 학생이 있다고 한다.

"저기서 여기까지 얼마나 걸어야 하나요?"
"한 시간 정도 걸립니다."

거의 매일 걸어야 하는 익숙한 등굣길이기에 한 시간 정도 걸렸겠지만 만약 내가 걸어왔다면 한 시간 반 이상은 족히 걸어야 할 것이다. 조금 전에 만났던 아이들 역시 한 시간 거리에서 왔다고 했다. 이곳 학생들은 가깝게는 30분, 멀게는 한 시간 반 거리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한다.

남학생들과 달리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여학생들. 사진을 찍자 다들 고개를 돌린다.
 남학생들과 달리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여학생들. 사진을 찍자 다들 고개를 돌린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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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는 스쿨버스가 없다. 스쿨버스가 있을 수 없다. 대부분 아이들이 꼬불꼬불한 산길이나 가파른 언덕길을 타고 학교에 다니기 때문이다. 언덕 위에서 동생을 기다리며 물을 마시고 있는 학생처럼 먼 거리에서 등교하는 대부분의 아이들 손에 물병이 들여 있었다. 이 아이들에게 등굣길은 등산길이나 다름없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이 그랬듯이 남녀가 어울려 등교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언덕 위에서 여동생을 기다리고 있는 남학생처럼 멀리서 부터 산길을 타고 등교하는 오누이들조차 따로 따로 걸어오고 있었다. 학교에 도착해서도 남학생과 여학생들이 따로 몰려 있었다.

내가 인사를 건네면 선생님들은 피곤한 얼굴로 건성으로 받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밝다. 여학생들은 까르르 웃어가며 고개를 돌려 사진기를 피했지만 남학생들은 "헤이, 헤이, 헬로우! 헬로우! 하우 아유" 해가며 사진기 앞에 다가와 깊은 관심을 보였다.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북인도 문시아리 중.고등학교.
 북인도 문시아리 중.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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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건물 입구 벽에 고오타마 붓다와 마하트마 간디 그림이 걸려 있다.
 학교 건물 입구 벽에 고오타마 붓다와 마하트마 간디 그림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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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건물 입구 벽에 고오타마 붓다와 마하트마 간디 그림이 걸려 있었다. 두 사람의 그림에 성인들을 새긴 종교화의 그것처럼 둥근 원, 후광을 그려 넣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천장과 사방 벽면에 힌두교의 신으로 짐작되는 형상들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었다.

인도의 학교를 비롯한 공공시설물에서 힌두교의 신이나 마하트마 간디는 쉽게 볼 수 있지만 고오타마 붓다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곳 문시아리에서 내가 확인한 것만 해도 힌두사원이 세 군데나 있었다. 하지만 불교 사원은 찾아 볼 수 없었다. 힌두교 사원이 곳곳에 들어서 있는 마을에서 특히, 마을의 대표적인 건물인 학교에 고오타마 붓다를 성인으로 모시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혹시나 싶어 학교 선생으로 보이는 중년 사내에게 물었다.

"마하트마 간디와 함께 그려져 있는 저 그림은 고오타마 붓다가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문시아리 학교에서 붓다를 모시고 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힌두교에서는 고오타마 붓다를 인도의 3대 신 중 하나인 비쉬누의 아홉 번째 화신으로 여기고 있다. 거기다가 문시아리는 역사적으로 티베트 불교를 믿고 있는 티베트 사람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곳 문시아리는 고대시대부터 티베트와 인도의 소금 교역로였다고 한다. 인도 땅이기는 하지만 오래전부터 티베트인들이 소금교역로인 이곳을 오고가며 생활 터전으로 삼았을 것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티베트의 얼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불교 사원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학교 건물에 고오타마 붓다가 그려져 있다는 것은 불교를 믿는 티베트 사람들의 힘이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붓다와 마하트마 간디를 함께 모시는 것은 분명 이 학교의 교육이념과 관련이 있을 것이었다. 붓다와 마하트마 간디는 힌두교의 대표적인 제도, 카스트 계급을 거부했고 두 사람 모두 남존여비사상이 깊이 박혀 있는 인도에서 여성을 평등하게 대하고자 했다.

힌두교의 카스트는 브라만(성직자), 크샤트리아(왕족·무사), 바이샤(평민), 수드라(하층민) 등 4개로 구분되며, 카스트 계급에조차 속하지 못하는 하리잔, 불가촉천민이 있다. 석가모니는 카스트 제도를 반대하고 힌두교와 달리 현세의 계급에 상관없이 수행을 통해 여성이나 천민 등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생로병사의 고통의 굴레,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설파했다.

부처님의 말씀을 새긴 초기 불교 경전으로 알려져 오고 있는 숫타니파타(Suttanipata)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바라문(브라만)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 행위에 의해서 천한 사람도 되고 바라문도 되는 것이다.'

인도의 국부로 칭송받고 있는 마하트마 간디 또한 카스트 제도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살아가는 하리잔, 불가촉천민을 '신의 아들'이라 부르며 카스트 제도 철폐에 힘을 쏟았다.

이 학교 건물 입구 좌우에 새겨진 고오타마 붓다와 마하트마 간디의 그림 위에 "come to learn. go to serve."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직역하자면 '이곳에 와서 배우고 나가서 봉사하라'라는 뜻이겠지만 다른 관점에서 나름 해석하자면 붓다와 간디의 가르침이 그러했듯이 '진리를 깨달아 자비를 베풀라'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비심은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길이다. 모바일 번역기에서 '진리'와 '자비'라는 단어를 찾아내 학교 선생에게 내 뜻을 말했더니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중.고등학교 교실. 창고처럼 허름한 교실이었지만 학생들의 표정은 밝았다.
 중.고등학교 교실. 창고처럼 허름한 교실이었지만 학생들의 표정은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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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시아리에는 학교가 둘로 나눠져 있다. 이곳 언덕 위에 있는 학교는 고학년들인 6학년~ 12학년,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과정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고 1학년에서 5학년 아이들이 공부하는 초등학교는 문시아리 중심지에 자리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과정의 고학년들은 합반 수업을 하고 있었다. 6, 7학년, 9, 10학년, 11, 12학년을 묶어 세 개 반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산골학교처럼 인도의 오지라 할 수 있는 이곳 문시아리에서도 점점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1970년대 중반에 설립했다는 낡고 오래된 이곳 학교 교실은 창고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학교 건물 아래쪽에 새롭게 부지를 마련해 놓았다. 본래의 학교 건물은 새롭게 단장해 먼 거리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로 쓸 예정이라고 한다.

학교에서 나와 숙소로 향하는데 멀리 힌두사원에서 경전 읊조리는 소리가 느린 노래 가락으로 흘러나왔다. 바라나시나 델리의 힌두사원에서 들었던 소리와 달리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운해처럼 요란하지 않고 차분했다. 나직함 속에서도 변화무쌍했다. 때로는 생로병사를 노래하는 것처럼 구슬프게 다가왔고 때로는 우뚝 솟아 있는 히말라야 설산에 경배하는 소리처럼 힘이 실려 있었다. 나직하게 읊조리고 있었지만 신을 향한 그 어떤 간절함이 배어 있었다.

구멍가게에서 웃는 얼굴로 맞아주는 노인

사탕, 과자 몇봉다리에 비디 담배 몇 갑이 진열되어 있는 구멍가게. 이곳에서 매일 아침 짜이를 마셨다.
 사탕, 과자 몇봉다리에 비디 담배 몇 갑이 진열되어 있는 구멍가게. 이곳에서 매일 아침 짜이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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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니 빠진 웃음으로 반기던 구멍가게 노인이 사진을 찍겠다고 하자 입을 꼬옥 다문다.
 앞니 빠진 웃음으로 반기던 구멍가게 노인이 사진을 찍겠다고 하자 입을 꼬옥 다문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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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근처에는 코딱지만한 구멍가게가 있고 거기에 앞니 빠진 노인이 정물처럼 앉아 있다. 사탕과 과자 몇 봉다리에 비디 담배 몇 갑이 진열되어 있는 작은 구멍가게인데 이곳에서 짜이를 마실 수 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듯 나는 이 구멍가게를 지나칠 때마다 짜이 한 잔을 시켜 마셨다.

오늘은 구멍가게에 손님이 있다. 구멍가게 앞에 세워진 트럭으로 짐작하건데 고산지대를 오가는 운전기사들이다. 짜이를 마시던 그들은 구멍가게 옆에 딸린 작은 주방으로 들어섰다. 가만 보니 긴 탁자와 의자 몇 개가 놓여 있는 허름한 주방에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식사도 할 수 있습니까?"
"예 물론입니다. 여기는 식당입니다."

노인이 주방 쪽을 가리키며 식당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본래 아침을 먹지 않는 나였지만 짜이 한 잔 마시고 죽치고 있는 게 미안해 인도에 와서 즐겨먹고 있는 모모와 자오민을 시켰더니 짜파티(Chapatis. 밀가루 반죽을 납작하게 펴 화덕에서 구워낸 빵으로 카레나 달과 함께 싸서 먹는)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아침부터 짜파티를 먹게 되면 위에 부담을 줄 것 같아 짜이와 함께 어제처럼 길쭉한 막대 빵 한 개를 시켰다. 막대 빵 한 개에 3루피, 우리 돈으로 50원 정도 한다. 헤벌쭉 앞니 빠진 웃음으로 노인은 묻지도 않았는데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모모나 자오민을 요리하는 식당을 알려준다. 이 구멍가게 노인처럼 서민들이 즐겨 찾는 인도 식당의 주인들은 자신의 식당에서 취급하지 않는 메뉴를 주문하면 어느 식당에 가면 먹을 수 있는지 친절하게 알려주곤 했다.

구멍가게의 헐렁한 상품 진열대 한 칸에는 과자나 사탕 대신 작은 전구가 켜져 있는 공간이 있다. 힌두신을 모시는 작은 성소다. 노인에게 조악한 사진 속의 신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비쉬누'라고 말한다. '비슈누'는 커다란 금시조(金翅鳥)를 타고 다니며 악을 제거하고 정의를 지키는 신이다. '브라만' '시바'와 함께 힌두교의 3대 신 중에 하나인 평화의 신이다.

빵부스러기를 던져주자 참새들이 발 아래로 몰려 들었다
 빵부스러기를 던져주자 참새들이 발 아래로 몰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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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에 살짝 튀긴 막대 빵에서 부스러기가 많이 나왔다. 먹다가 너저분하게 떨어진 빵 부스러기를 점포 밖에서 털어냈더니 새들이 몰려든다. 내가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2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에서 얼쩡거리고 있다. 가만 보니 참새다.

녀석들에게 좀 더 많은 빵부스러기를 던져주자 어디서 소문을 듣고 왔는지 잠시 후 여러 마리가 떼로 날아든다. 줌 렌즈 없이도 사진 찍기에 안성맞춤이다. 사진을 찍다가 먹을 것, 특히 고기가 귀했던 어린 시절 살생의 본능으로 참새들을 잡으러 다녔던 기억이 떠올랐다.

고소한 참새 뒷다리를 구워먹기 위해, 새총을 비롯해 덫, 대바구니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살생 본능의 쾌감을 맛보기도 했다. 이제 그 참새들이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내 발 아래에서 빵부스러기를 쪼아 먹고 있다.

참새들은 이곳 사람들이 그렇듯이 낯선 이방인인 나 또한 자신들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기운을 감지하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새총 대신 평화롭게 모이를 쪼아 먹는 새들을 향해 사진기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살생했던 업 갚음을 하듯 막대 빵 한 개를 더 사서 참새들에게 나눠 주었다.

구멍가게를 나오면서 어제 막대 빵 한 개와 짜이 값으로 12 루피를 낸 기억을 더듬어 1루피 짜리 성냥 한 갑을 더 사고 노인에게 16루피를 냈더니 1 루피짜리 동전 세 개, 3루피를 되돌려 준다.

"왜 3루피를 되돌려 주나요?"
"......"

내가 3루피를 노인 앞에 내밀며 말하자 노인은 환하게 웃기만 한다. 3루피는 내가 참새에게 보시한 빵 값일까. 아니면 요 며칠 단골손님처럼 오고갔던 것을 감안해 깎아준 것일까. 그도 아니면 내가 계산을 잘못한 것일까.

3루피면 우리 돈으로 50원 정도에 불과한 돈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돈이 아니었다. 어떤 이유로 내게 3루피를 되돌려 주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노인이 내게 큰 자비를 베푼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노인은 자비심이니 뭐니 따지지 않고 별 의미 없이 내게 3루피를 돌려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그 3루피는 노인이 베푼 자비심이었다. 그렇게 노인은 내게 자비심은 관념 따위와는 상관없이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주고 있었다.


태그:#물소, #붓다와 간디, #자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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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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