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야구의 영원한 라이벌 한국과 일본이 또 한 번 피할 수 없는 승부를 펼친다. 19일 오후 7시 일본 도쿄돔에서 열리는 2015 WBSC 프리미어 12 준결승은 양국 야구의 자존심을 건 한판 승부다.

한국은 지난 8일 홋카이도의 삿포로돔에서 열린 개막전에서 오타니 쇼헤이를 앞세운 일본에 힘 한번 제대로 못쓰고 0-5로 완패했다. 6년만에 양국 프로 최정예 멤버들끼리 맞붙은 대결에서 무기력한 패배를 지켜본 국내 팬들의 실망감도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승부는 마지막에 이긴 자가 진짜 승자다. 한국은 지난 1, 2회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예선에서만 일본을 두 번이나 이겼으나 정작 중요한 토너먼트 단판승부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당시 일본은 WBC를 2연패했고 한국은 4강과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예선전 패배를 설욕하기 위하여 일본이 더 독기를 품고 달려든 면도 있었다. 반면 한국은 여기까지 왔다는 것만으로 이미 할 만큼 했다는 안도감도 있었고, 일본을 상대로 연속으로 이길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한국, 일본 선발투수인 오타니 쇼헤이를 넘어라

이번엔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 개막전에서 기대 이상의 완승으로 일본이 자신감에 차 있는 반면 한국은 독기가 올랐다. WBC에서 당한 아픔을 이번엔 정반대로 일본에게 되갚아줄 차례다.

지난 WBC 때 일본이 이치로의 30년 발언 등으로 본의아니게 한국의 투지를 더욱 자극했듯이, 이번에도 기형적인 대진 일정과 주먹구구식 대회 운영으로 빈축을 사고 있다. 참가국중 유일하게 한국-일본-대만, 다시 일본을 오가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던 한국은 일본의 텃세를 실력으로 응징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한일전 리턴매치에 대한 투지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냉정히 말해 부담감이 더 큰 쪽은 일본이다. 세계소프트볼연맹과 함께 이번 프리미어 12 개최를 주도한 일본은 자국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에서 무조건 우승을 통하여 미국에 버금가는 야구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부각시키고 싶은 의지가 강하다. 2006년 WBC 때의 한국처럼 예선 전승으로 분위기가 한창 승승장구하고 있는 시점에 만일 준결승에서 한 수 아래로 여긴 한국에게 덜미를 잡힌다면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열세인 전력을 극복하고 이미 1차 목표(8강)를 뛰어넘는 성적을 올렸다. 설사 일본에 또 진다고해도 우리 입장에서는 크게 잃을 것이 없다. 상대적으로 일본이 비록 전력은 우리보다 앞서고 있다고 하지만, 젊은 선수들의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예선과 차원이 다른 국제대회 단판승부 토너먼트에서의 압박감은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한국이 일본에 설욕하기 위해서는 역시 일본의 선발투수인 오타니 쇼헤이를 넘어야 한다. 오타니는 지난 8일 개막전에서 6이닝 10탈삼진에 2피안타 2볼넷만을 내주는 눈부신 호투로 한국 타선을 철저히 무력화시켰다. 시속 160Km대 강속구로 스트라이크를 잡고 140km 포크볼로 타자를 유혹하는 승부구에 한국 선수들은 알면서도 눈뜨고 당했다. 구위와 제구력 모두 완벽하며 상황에 따라 슬라이더로 수준급으로 구사할만큼 구종도 다양하다. 오타니는 한국전 이후 추가 등판없이 열흘가까이 휴식을 취해왔다. 철저한 한국전 맞춤형 카드로 낙점된 셈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한국 타자들이 재대결에서 오타니의 빠른 공에 얼마나 적응했느냐가 관건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컨디션이 좋은 날의 오타니는 일본 타자들도 알고서도 못친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공략이 까다롭다. 하지만 젊은 투수이다보니 종종 경기내용이 의도대로 풀리지 않을 때는 제풀에 무너지는 기복도 있다.

개막전 때는 한국 타자들의 컨디션이나 선구안이 아직 정상궤도에 오르지 않은 시점이었다. 강속구로 유리한 볼카운트를 선점하는 오타니의 투구패턴을 파악하고 변화구는 버리더라도 철저하게 한 가지 구종을 노려치는 게 그나마 확률이 높아보인다. 준결승이 열리는 도쿄돔이 삿포로돔에 비하여 공기저항이 적어 장타가 많이 나오는 타자친화적 구장이라는 점은 일발장타를 노리는 한국 타자들에게 나쁘지 않은 요소다.

오타니 역시 한국 타자들의 생각을 역이용하며 볼배합을 완전히 바꿀 가능성도 있으므로 한 타순이 돌기 전에 투구 성향을 빠르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타니의 공을 기다리고 초구부터 과감하게 승부수를 걸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좋은 공을 기다리거나 끊어내는 방식으로 오타니의 투구수를 소모하는 전략을 시도할 것인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불필요한 실책과 볼넷에 의한 실점 줄여야

물론 두려운 것은 오타니 한 명만이 아니다. 한국은 개막전에서 오타니 외에도 일본 불펜진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타선에게는 12안타로 5실점을 내줬다. 일본 타자들은 이번 대회에서 6경기 팀타율 3할 2푼 4리의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는 개막전처럼 불필요한 실책이나 볼넷에 의한 실점 비율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필수다.

한국도 미친 선수가 최소한 두세 명 쯤은 나와줘야 한다. 지난 WBC의 경우 대량득점은 아니어도 이승엽, 추신수, 이범호, 김태균, 이종범 등 필요할 때 한 방씩을 터뜨려주는 해결사들이 나왔다. 마운드에서는 박찬호와 봉중근이 히어로였다. 박찬호는 1회 WBC에서 마무리와 선발을 넘나들며 자책점 0의 완벽투를 선보였고, 봉중근 2회 WBC에서 부진힌 김광현을 대신하여 일본전 전담투수로 무려 3경기 연속 등판하여 맹활약을 선보였다.

이번 경기에서는 일단 첫 스타트를 끊어줘야 할 선발 이대은의 어깨가 무겁다. 개막전 선발이었던 김광현의 활약이 기대에 못미친 가운데, 이대은은 현재 대표팀이 일본전에서 내보낼수 있는 최상의 카드다. 지난 시즌 이대은은 일본무대에서 활약하며 9승 9패 자책점 3.84의 준수한 성적을 올렸고 일본 타자들의 성향에 대하여 잘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상대도 이대은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6년 전의 봉중근처럼 숨겨진 조커가 아니라는 점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이대은의 강점이자 약점은 막강한 속구다. 그러나 제구가 되지 않은 속구는 정교함이 주무기인 일본 타자들에게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성인대표팀 승선이 처음인 이대은이 가장 중요한 토너먼트 승부의 압박감을 얼마나 극복하고 안정된 피칭을 보여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한일전 사상 선발싸움에서 조기에 무너지고도 승리한 경우는 없었다.

타선에서는 역시 이대호와 박병호의 활약에 시선이 쏠린다. 이들 모두 현재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거포이자 한일전마다 결정적인 순간에 강했던 이승엽의 아성을 잇는 존재들이다. 김인식 감독은 대회 내내 기복을 보였음에도 두 선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놓지 않고 있다. 백전노장으로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한번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은 두 번이나 일본의 벽에 막혀 정상에 서지 못한 아쉬움을 만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한일전은 전력의 차이가 반드시 승패를 결정하지 않는다. 역대 한일전 사상 아시안게임 정도를 제외하고 한국야구가 전력의 우위로 일본을 누른 경우는 없다. 그러나 국제대회 단기전이라는 특수성과 한일전이라는 상징성이 주는 미묘한 긴장감이야말로 선수들의 집중력과 투지를 항상 극한까지 끌어올리게 하는 마력이 있다. 위기에서 더욱 강해지는 한국야구의 저력이 이번 한일전에서 다시 한번 빛을 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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