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투하는 오릭스 선발 백차승  지난 2012년 12월 20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우라소에구장에서 열린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오릭스 버팔로스의 연습경기 1회 말 오릭스의 선발투수 백차승이 역투하고 있다.

▲ 역투하는 오릭스 선발 백차승 지난 2012년 12월 20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우라소에구장에서 열린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오릭스 버팔로스의 연습경기 1회 말 오릭스의 선발투수 백차승이 역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야구 선수로서 다시 한 번 도전을 선택했던 백차승이 새로운 팀의 입단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고 또다시 미아 신세가 됐다. 지바 롯데 마린즈에서 방출된 백차승은 한신 타이거스로부터 입단 테스트 기회를 받았으나, 아쉽게 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지난 13일, 일본 고치에서 열렸던 한신 타이거스의 마무리 캠프에서 자체 청백전이 열렸다. 이날 백차승은 백팀의 선발투수로 등판했다. 1회는 삼자범퇴로 무난하게 마무리했다. 그러나 2회에 볼넷과 도루 그리고 2연속 안타를 허용하며 실점한 게 아쉬웠다.

이날 경기가 끝난 뒤, 백차승은 한신으로부터 입단 테스트 불합격을 통보받았다. 대신 한신은 메이저리그 생존에 실패한 동년배 선수 후지카와 규지를 다시 영입하게 됐다. 그리고 백차승은 이적 시장에서 새로운 팀을 찾는 여행을 계속하게 됐다. 최근 몇 년 동안 1군 무대에서 보여준 모습이 하나도 없으므로, 새로운 팀을 찾는 데 있어 험난한 과정이 예상된다.

KBA 영구 제명... 생존을 목표로 한 미국 시민권 취득

1980년생 백차승은 부산고등학교 출신으로 송승준(현 롯데 자이언츠), 김사율(현 kt 위즈)과 동년배의 선수였다. 대학 입학까지 예정되어 있었던 백차승은 1998년 9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렸던 제3회 아시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주축 투수로 참가했다.

그러나 2차 리그에서 대만을 상대로 5회까지 투구를 마친 뒤, 팔꿈치 통증으로 인하여 자진 강판했다. 그리고 이때 감독의 1루 수비 지시를 이행하지 않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간 것이 화근이 됐다. 대회가 끝난 후 대한야구협회(KBA)에서는 상벌위원회를 열어 백차승에게 선수 자격 무기한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1998년 9월 24일).

당시 백차승은 시애틀 매리너스와 입단 계약을 체결한 뒤, 1999년에 바로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토미 존 서저리)을 받았을 정도로 팔꿈치 손상이 심각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 부상은 그의 선수 인생 내내 그를 괴롭히는 요소로 작용하며 험난한 선수 인생을 예고했다.

백차승은 2004년에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에 승격되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2005년에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고,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르내리며 험난한 인생을 이어갔다. 그러던 2008년에 그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이적하게 됐다.

여기서 백차승은 풀 타임 선발투수로 등판할 기회를 얻었다. 당시 파드리스 선발진은 제이크 피비(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필두로 크리스 영(현 캔자스시티 로열스), 그레그 매덕스(2008년 은퇴, 명예의 전당 헌액) 등이 포진해 있는 리그 수준급 로테이션을 구축하고 있었고, 백차승은 그 로테이션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백차승은 6승 10패 평균 자책점 4.79를 기록하며 자신의 커리어 하이 시즌을 만들었다. 그러나 2009년 다시 팔꿈치 통증이 재발했고, 시즌이 끝난 뒤 방출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독립 리그 구단을 떠도는 저니맨이 되었다.

거듭되는 1군 진입 실패, 향후 진로 의문

그러던 중 2011년 겨울, 박찬호(은퇴)가 1년 동안 뛰었던 오릭스 버펄로스와 계약하게 됐다. 그러나 백차승은 2012년 끝내 1군 무대에 올라오지 못했다. 1년 만에 다시 무적 신세가 된 그는 일본에서 독립 리그 구단을 떠돌았고, 2015년 여름에 지바 롯데 마린즈의 입단 테스트를 통과했다.

현재 지바 롯데에는 한국인 마이너리그 출신의 이대은이 활약하고 있었기에, 백차승의 입단은 더욱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백차승은 지바 롯데에서도 끝내 1군 무대에 올라오지 못하며 이대은과 함께 뛰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선수로서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던 백차승은 다시 한신 타이거스의 문을 두드렸고, 다시 입단 테스트 기회를 얻어 마무리 캠프 자체 청백전에 등판했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도 집중 출루 허용으로 실점하는 모습을 노출하면서 테스트부터 통과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만 35세의 백차승은 현재도 미국 국적을 갖고 있으므로 KBO리그나 NPB에서 뛰려면 외국인 선수 신분으로 뛰어야 한다. 다만 NPB에서는 1군에 들어갈 수 있는 외국인 선수가 4명이고, 그 이외 2군 대기 선수는 무제한으로 보유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백차승이 입단 테스트 기회를 계속하여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KBO리그에서는 구단 전체를 통틀어 외국인 선수 보유 인원이 3명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그나마 3명 모두를 투수 또는 야수로만 구성하는 것도 제한되어 있다. 게다가 최근 KBO리그에 영입되는 선수들 대부분은 최소 메이저리그 경험이 있는 선수들로 영입되는 추세이다. 백차승은 나이뿐만 아니라 기량에서도 다른 외국인 용병에 비해 경쟁력에서 밀리는 상황이다.

물론 백차승은 2006년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아래 WBC) 당시, 부모의 국적에 따라서도 대표팀에 참가할 수 있다는 대회 규칙으로 인하여 일단 KBA에서의 징계는 해제되었다. 다만 병역 기피 논란으로 인하여 그가 WBC 대표팀에 선발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공소시효가 무기한 정지 상태이기 때문에 한국 국적을 다시 취득하더라도 처벌 문제로 인하여 당장 리그에서 뛸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또한, 2007년 해외파 특별 지명 대상에서도 빠졌기 때문에 한국 국적을 취득하더라도 최소 2년은 KBO리그에서 뛸 수 없다.

일단 백차승 본인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계속해서 입단 테스트를 거쳐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그의 나이가 점점 걸림돌이 되었고, 그에게 언제 다시 기회가 생길지도 불투명하다. 험난한 선수 생활을 겪으며 꿈과 현실 사이에서 또다시 고민에 빠진 백차승. 이번에는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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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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