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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전 황교안 국무총리는 담화를 통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확정고시했다. 행정 예고 22일 만이다. 야당은 이에 반발해 국회 의사일정을 전면 보이콧 했고, 시민들은 매일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규탄하고 있다.

전국의 시·도교육감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들 대다수는 공개적으로 국정화에 반대하며 1인 시위 중이다. 이 가운데 김승환 전라북도 교육감의 행보가 눈에 띈다. 그는 국정화 초기부터 보조 교재 개발을 주장했다.

지난 4일 오전 김 교육감은 세종시 교육부 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이날 그와 만나 황교안 총리의 담화와 시국선언 교사 징계, 그리고 위헌 여부 등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다음은 김 교육감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헌법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지난 4일 교육부 앞에서 김승환 교육감이 1인 시위를 했다.
 지난 4일 교육부 앞에서 김승환 교육감이 1인 시위를 했다.
ⓒ 전북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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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일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확정고시했어요. 전북교육청은 이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냈던데.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역사 교육을 정치권력이 사유화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죠. 이것은 교육이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에서 바라봤을 때,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에요.

그리고 이번 결정은 국민 전체의 의사, 그리고 역사 전문가들의 의사를 오랜 기간 다양하게 수렴하지 않았어요. 정권 차원에서 군사 작전 하듯이 밀어붙인 거라, 이번 확정고시는 우리 헌법의 1조 1항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했어요. 때문에 정부가 '2015년 11월 3일 이후 대한민국은 더 이상 민주공화국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고 해석하고 있어요."

- 그럼 위헌이라고 보세요?
"예. 민주공화국 헌법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공화국은 1인 통치를 허용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번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1인 또는 소수가 결정한 일이죠. 또 민주주의 원리에 정면으로 반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민주주의는 국가가 권력을 행사할 때 민주적 정당성을 갖추라고 요구해요. 국민의 지지와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국민 60%가 반대하는 일을 정권이 강행한다는 것, 그 자체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아예 머리에 두고 있지 않다고 볼 수 있죠.

헌법 31조 4항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명령하는 조항이에요. 이 조항은 정치 세력이 교육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준엄하게 명령합니다. 이번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는 교육의 목적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으로 개입하겠다고 밝힌 것과 다름없습니다. 역시 헌법 31조 4항에도 반합니다.

또 헌법 22조는 학문의 자유를 말합니다. 학문의 생명은 다양성이에요. 이 다양성에는 현재 존재하는 기준에서의 다양성이 아니라, 앞으로 생겨날 기준에 따른 다양성까지 포함합니다. 그런데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면 역사교육에 관한 한 학문의 발전이 국가의 통제 아래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이번 확정고시는 어떤 각도에서 봐도 헌법적 근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은 헌법에 부합하는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하던데.
"그는 헌법전문가가 아니에요. 국사편찬위원장이 헌법에 관한 단순한 글 한번 써본 적이 없잖아요. 헌법에 대해 뭘 안다고 헌법에 합치하는 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하는 건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명분으로 일관되게 내세운 게 있어요. 학생들에게 균형 있는 역사의식을 갖추도록 하는 게 목적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균형이라고 하는 것은 관계에서 생겨나는 개념이에요. 저울에 접시가 하나만 있다면 그건 저울이 아니죠. 2개의 접시에 물건을 놓고 둘의 중량을 똑같이 맞추는 것, 이게 균형이죠.

국정 역사교과서 하나만 두고 이 교과서가 균형 잡혔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건 균형에 대한 논리 파괴예요. 균형이라는 개념에 대한 철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거나, 아니면 이 개념을 알면서도 탐욕이 앞서서 무시해버린 결과죠. 정부가 더 이상 국민을 기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국민 앞에 진실하고 겸손했으면 합니다."

- 오늘(4일) 교육부 앞에서 1인 시위하셨던데.
"확정고시는 어제였는데, 그것과 별개로 오늘 하기로 돼 있었어요. 예정된 대로 한 겁니다. 교육감으로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의사 표현입니다. 교육감으로서 직무상 책임을 일정 부분 감당하면서, 동시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인권을 행사한 겁니다. 이러한 행위는 우리 국민 누구나 할 수 있어요. 학생도 할 수 있고, 교사도 할 수 있죠. 교사가 교과서에 대해 발언하지 않으면, 누가 발언합니까? 교사가 교과서에 대해서 침묵하게 되면 그것은 바로 교사에게 부여된 기본적인 책무를 방조하는 거라고 말할 수 있죠."

- 교육부는 시국 선언한 교사들을 엄단하라고 하는데.
"유신 시대 재판이에요. 1972년 10월 17일 유신을 선포하고 유신헌법 개정안을 공고했습니다. 그때 정권이 유신헌법에 대한 일체의 찬반 의사 표현과 집회·시위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어요. 그런데 정작 반상회를 통해 유신헌법을 찬성하는 운동을 계속해왔거든요. 정권은 유신헌법을 찬성하는 행위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 조장했습니다.

지금 역사교과서 국정화도 여기에 찬성하는 표현에 대해서는 정부가 가만히 있단 말이죠. 대표적으로 교총이 찬성 의사를 밝힌 일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정부가 가만히 있어요. 그런데 반대 의사를 표현하는 일에 대해선 정부가 엄단하겠다고 겁박하고 있잖아요. 헌법 제1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평등원칙을 정권이 위반하는 겁니다. 어떻게 하나의 사안을 놓고서 한쪽의 의사 표현은 100% 보장을 해주고, 다른 쪽은 보장해주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건 말이 안 됩니다."

- 지난 3일 황교안 총리의 기자회견은 어떻게 보셨어요?
"담화문을 읽어보진 않았는데, 아마 내 기억에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헌법 가치에 부합한다고 한 것 같아요. 그런데 국무총리가 말하는 헌법 가치가 무엇인지 의문스럽습니다. 국무총리가 말하는 헌법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하면 좋겠어요. 그럼 거기에 대해서 대응할 생각이 있어요."

- 이틀이나 앞당겨 확정고시를 했잖아요. 이유는 무엇으로 보세요?
"독재정권부터 현재 정권까지 흐름을 쭉 보면 정치권력이 어떤 행위를 할 때 날짜 택일을 상당히 중요시하더라고요. 그래서 유신정변을 일으킨 1972년 10월 17일은 1884년 10월 17일 갑신정변 날로 택일한 것이죠.

11월 3일은 학생독립운동기념일입니다.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은 우리 국민이 독립을 위해서 싸우다 희생된 학생들을 기억하고, 그 넋을 위로하고, 정신을 계승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하필 그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확정고시한 거예요. 민족적으로 아주 중요한 날에, 국민의 상당수가 반대하는 일을 강행한 정부의 저의가 무엇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때문에 확정고시는 반역사적 행위라고 평가해도 지나침이 없을 겁니다."

"전국 교육감 절반 이상이 '반대', 보조 교재 발간할 것"

김승환 전라북도 교육감
 김승환 전라북도 교육감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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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감들의 전체적인 분위기인가요?
"전국 17개 시·도교육감 중 절반 이상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명확한 반대의견을 표명하고 있어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북교육청을 포함한 상당수의 시·도교육청이 역사 보조 교재 발간 작업에 착수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체계적으로요."

- 역사 보조 교재를 말씀하셨어요. 교육감께서는 수능 문제에 대해 논란이 심한 부분은 안 나온다고 하셨지만, 학생의 입장에서는 염려될 수밖에 없는데.
"대학교수들을 중심으로 수능시험 출제 체계가 상당히 다양합니다. 그리고 출제위원들이 낸 문제가 올바로 구성되어 있는지 검토하는 검토위원이 현직교사를 중심으로 되어 있어요. 그래서 출제위원들이 출제한 것에 대해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현직교사들이 아주 자유롭게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출제위원들은 검토위원들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묵살하지 않아요. 충분히 수용합니다. 어떤 입장에 서 있는 출제위원이든 최소한 이것만은 다 합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문제를 내지 않습니다."

- 하지만 정권이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지 않나요?
"우리나라가 그나마 다른 나라에 비해 공정하다고 꼽을 수 있는 게 공무원시험, 수능시험, 각종 국가고시입니다. 시험만큼은 정권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만약 그렇게 하면 국민적 분노를 일으킬 겁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정치권력이 수능시험에 개입하면 일어나는 국민의 분노는 그 크기가 다릅니다. 자식 문제면 국민이 더 이상 인내하지 않는 거죠."

 - 현재까지 문제가 된 게 현대사인데,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상고사도 손보겠다고 하던데.
"정치적 탐욕을 부리는 그 시대가 근현대사예요. 어차피 조선 시대 중기까지, 그리고 그 전 고려 시대, 삼국시대, 고조선, 부여 이런 것까지는 별로 관심이 없을 거예요. 본인들의 관심은 근현대사에 집중돼 있으면서 일종의 연막작전을 펼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일종의 정치적 술수죠."

- 국정 교과서는 법적으로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 알아요. 그러나 전북교육청 등에서는 대안 교과서를 개발하겠다고 했죠. 주교재를 국정 교과서로 하고, 대안 교과서를 부교재로 한다는 건데. 그럼 가르치는 교사나 학생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전북교육청은 지금까지 대안교과서라는 표현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교과서를 만들지 않아요. 국정교과서가 있는데 대안교과서를 만약에 만들게 되면 정권으로서는 너무나 즐거운 일일 겁니다. 자기들의 쳐놓은 그물망에 들어오는 것이거든요. 그때부터 강력한 법적 조치가 시작됩니다.

제가 왜 거기 들어갑니까? 대신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이 역사 보조 교재를 만든다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정권이 '아이들이 역사 공부를 하는데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선전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국정교과서로 인한 학생들의 인식 혼란을 역사 보조 교재로 막겠다는 거예요. 때문에 학생들의 역사교육에는 오히려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봐야겠죠."

- 최근 청소년들이 거리로 나오는 건 어떻게 보세요?
"청소년들이 거리로 나오는 걸 보고 있으면 착잡합니다. 지금 아이들은 이런 데 시간을 쏟지 않더라도 자기 삶을 가꿔나가는 데 써야 할 시간이 많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어른들의 잘못으로, 어른들의 정치적 탐욕으로, 아이들이 학교 밖으로 나와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저는 굉장히 마음 아픕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런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은 민주주의를 훈련하게 되고, 민주의식을 성장시켜 나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3일 정부가 확정고시한 것에 대해서 굉장히 불쾌하고, 불편합니다. 1929년 11월 3일 학생독립운동을 되돌아봐야 할 날에, 학생들이 역사적 의미를 숙고해볼 수 있는 여유를 정권이 다 빼앗아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부가 굉장히 나쁜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 교육감께서 반민주적 정책을 꾸준히 비판해오셨음에도 정부는 변하지 않고 자기들의 원칙을 밟아가잖아요. 원인은 뭐라고 보세요?
"그동안 헌법의 원칙이 무너질 때 우리 국민들은 과연 그것을 내 삶이 무너지고, 공동체와 미래가 무너지는 일로 봤을까요? 타인의 일로 봤죠. 이 방관자적 태도가 정권의 오만을 부추겼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대다수 국민은 마음속으로나마 이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쉽게도 그 생각이 하나의 에너지로 분출하는 계기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죠. 그 마음은 마음속에 침잠해 있지만, 언젠가 분출할 계기를 만난다면 확실하게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을 거라 믿습니다.

저는 역사의 흐름을 긍정적으로 봅니다. 우여곡절을 겪는 것 같지만 결국 역사는 자기 갈 길로 간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어요. 더구나 이번 일은 국제사회에서도 조롱을 당할 만한 사건이기 때문에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국내외적 고립을 면치 못할 거예요. 역설적으로, 긴 동면에 빠져있던 우리나라 국민의 민주주의 의식이 정부 덕분에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를 고맙게 생각해요."

○ 편집ㅣ손지은 기자



태그:#김승환, #전북 교육감, #역사교과서 국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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