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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출신 간첩'으로 기소됐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유우성씨가 2일 오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이영광 시민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탈북자 출신 간첩'으로 기소됐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유우성씨가 2일 오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이영광 시민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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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과 검찰의 증거조작으로 간첩 혐의를 받았던 유우성씨가 지난 10월 29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10월 29일 대법원은 유씨의 국가보안법 무죄 판결에 대한 검찰의 상고와 자신이 중국 국적을 가진 채 북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사실을 감추고 남한 정부의 정착지원금을 받은 혐의 등(징역 1년·집행유예 2년, 추징금 2565여만 원)에 대한 유씨의 상고 모두 기각했다.

유씨가 대법원의 판결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여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은 소감과 함께 국정원 수사관에게 체포된 2013년 1월 이후, 2년 9개월을 어떻게 보냈는지 들어보았다. 다음은 유씨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사과는커녕 강제추방을 검토한다고..."

- 지난달 29일 간첩혐의에 대해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셨는데 소감 부탁드립니다.
"어느 정도 예상했어요. 없던 일을 있던 일처럼 만들어서 괴롭혔던 시간이 3년이잖아요. 너무 오래 걸려서 대법원 판결 순간에 옛날에 아팠던 일들이 생각나서 눈물이 났어요.

사실 대법원 판결이 나긴 했지만, 형사재판이 끝난 건 아닙니다. 국정원과 검찰의 증거 조작을 밝혀낸 것에 대한 보복으로, 검찰이 2014년 5월 추가사건으로 또다시 기소해서 형사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아직 형사재판이 안 끝나고 남아 있어서 마냥 기뻐할 수도 없어요.

어떻게 보면 '본전'인 거잖아요. 1심과 2심 시간이 너무 힘들었어요. 제 동생을 6개월 동안 불법으로 독방에 가두고 폭행과 고문을 한 부분도 대법원이 다 인정했어요. 앞으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저뿐만 아니라 그동안 항소심을 하면서 간첩으로 조작되었던 분들을 만나봤어요. 저의 경우 짧은 시간에 간첩 사건을 조작했다는 것이 밝혀졌잖아요. 그런데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사건이나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은 몇십 년씩 교도소에서 살고 나오고서야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았잖아요.

그분들의 억울한 심정을 저에게 빗댈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간첩 조작 사건이 우리 사회에서는 끊이지 않고 '이슈몰이'처럼 계속되는 것에 대해서 정부가 강력하게 제재할 수 있는 법안이나 환경을 만들기 바라는 마음은 그분들과 마찬가지예요. 정부가 더 이상은 재일동포 또는 탈북자들 등의 사회 약자를 상대로 간첩 조작 사건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그래도 이번 사건으로 인해 국가정보원의 합동신문센터(합신센터) 등이 공개되면서 탈북자의 실상이 알려진 건 성과인 듯해요.
"맞아요. 그전까진 국민이 합신센터에 대해 몰랐죠. 영장도 없이 사람을 구금하고 독방에 가두는 건 몰랐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합신센터에서 북한 이탈 주민을 어떤 방식으로 구금하고 간첩을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낱낱이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 판결문은 어떻게 평가하세요?
"대법원에서 조작된 부분과 일련의 있었던 사건들을 비교적 정확하게, 있는 사실 그대로 판결해준 것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매우 존경을 표합니다."

- 판결 직후 사과를 받고 싶다고 하시던데 혹시 검찰이나 국정원에서 의견이 나온 게 있나요?
"전혀 사과를 받은 사실이 없습니다. 오히려 언론 보도에 의하면 판결 당일 법무부가 강제추방을 검토하겠다는 식으로 답변했다고 합니다.

간첩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밖에 못 봤는데, 내가 간첩이라고?

'탈북자 출신 간첩'으로 기소됐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유우성씨.
 '탈북자 출신 간첩'으로 기소됐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유우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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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월부터라서 2년 9개월 정도 걸렸어요.

"저 혼자 큰 사건을 밝혀낼 수 있었던 건 아니고 3년 동안 무료로 변호한 민변의 천낙붕, 장경욱, 양승봉, 김용민, 김진형, 김유정 변호사님 덕분이에요. 이분들은 자기 시간을 쪼개가면서 3년 동안 무료로 저를 변호해 주셨어요. 증거 찾으러 중국도 다녀오시고... 그분들의 헌신적인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죠.

이분들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종교인들도 계셨고, 특히 많은 기자님들이 정확한 사실을 보도해준 덕분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게 돼서 사건의 진실을 밝히게 된 겁니다.

하지만 진실을 밝혔음에도 그 누구로부터 사과 한마디도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저한테 돌아온 건 사과가 아니라, 보복 재기소 및 괴롭힘이었습니다. 2007~2010년 사이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리한 사건을 재기소했습니다. 3년 내내 형사 재판 때문에 아르바이트 한번 제대로 못했는데 재기소 사건 1심에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 받았어요. 그리고 29일에 난 대법원 판결에서도 추징금 약 2500만 원을 선고 받았습니다. 조작 간첩사건 피해자로서 현재 제게 남은 건 빚과 추가 보복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얼마 전에 결혼했고, 가정이 있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강제추방 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가 일부 보수언론에서 들립니다. 자신들의 잘못에 대하여 반성을 하기는커녕 얼마나 더 괴롭히려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루빨리 형사 재판으로부터 자유로운 몸으로 평범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아요.
"제가 1심 때는 8개월 동안 구치소 독방에서 살았어요. 조사받는 과정이 너무 억울해서, 심장 쇼크로 쓰러져서 실려 나가기도 했어요. 죽을 고비도 많이 넘었지만, 변호사님들과 사회에 계신 종교인들이 면회를 많이 와주셨어요. 또 편지도 수백 통 받았고요. 그런 분들이 있었기에 진실을 밝힐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 아버지와 동생이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아서 지금도 국정원 얘기만 들으면 너무 힘들어하세요. 아버지는 3년 내내 마음고생이 심하셔서 종양까지 생겼고, 얼마 전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어요. 옛날보다 더 많이 늙으셨고... 너무 가슴 아픈 부분인데 이젠 진실이 밝혀져서 다행인 것 같아요."

- 2004년 탈북할 때는 이런 일을 당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을 텐데 처음 체포될 때 기분이 어땠나요?
"낮엔 서울시에서 일하고 있었고 밤에는 사회복지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었어요. 공부해서 남북한 통일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다는 작은 꿈을 갖고 사회생활을 했어요.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국정원 직원이 저희집에 와서, 그 자리에서 특수간첩죄 혐의가 있다며 가택 수색을 하고 저를 체포해갔거든요.

국정원에 조사받으러 들어갔을 때는 제가 변호사님들도 못 만났어요. 변호사를 불러 달라고 해도 국선 변호사들은 국정원이 무서워서 안 왔어요. 10일 동안 저 혼자 조사를 받았어요, 밤에 울며 잠도 못 자고... 그때 너무 아팠던 심정을 말과 글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제 몸무게가 15일 만에 10kg 정도 빠졌어요.

밥은 물론 물도 안 마셨어요. 입은 트고 눈은 충혈됐죠. 왜냐하면, 아무것도 모른 채 들어갔잖아요. 간첩이라는 건 드라마나 영화로밖에 못 봤는데 하루아침에 간첩이라고 몰아가면, 간첩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힐 방법이 없잖아요. 그래서 그냥 그 순간에는 너무 힘들어서 이대로 목숨을 끊을 생각도 수십 번 했어요.

목숨을 끊으면 편해질 수 있잖아요. 하지만 그 순간 '내가 죽으면 몸은 편할 수 있는데 결국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억울하게 간첩죄를 쓰고 죽은 사람으로만 기억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악착같이 이 악물고 수사기관에서 버텼어요. 제가 검찰과 국정원 합쳐서 50일 동안 수사를 받았거든요. 동생과 대질시켜 달라는 제 요청은 하나도 안 들어주고... 일방적인 이야기만 듣고 간첩으로 몰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탈북자 출신 간첩'으로 기소됐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유우성씨가 2일 오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이영광 시민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탈북자 출신 간첩'으로 기소됐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유우성씨가 2일 오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이영광 시민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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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신분 포기하고 탈북, 힘들었지만 후회하지 않아

- 탈북한다고 대한민국을 꼭 와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대한민국에 온 걸 후회했을 법도 한데 어때요?
"제가 북한에서 의학 공부를 했어요. 병원에서 의사 일을 하며 의학을 더 많이 배우고자 한국을 오게 됐어요. 북한에 인권이나 언론의 자유가 없는 게 싫어서 한국까지 왔는데, 제가 이런 일을 당하면서 '한국의 인권'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어요. 여긴 언론의 자유가 있긴 한데 언론의 자유라는 게 왜곡돼 있어요. 검찰에서 뿌리는 내용이 진짜인 것처럼 보도가 될 때 너무 힘들어서, 과연 목숨 걸고 한국에 온 게 잘한 건가란 고민을 했어요.

그러나 지금 후회하진 않아요. 이 사건을 겪으면서 저를 변호했던 김자연씨와 결혼도 하게 됐고, 한국엔 나쁜 사람도 있지만, 그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고 정의로운 사람도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들이 있기 때문에 진실이 밝혀졌고 사회에서 당당히 살고 있어요."

- 의학 공부 때문에 한국에 오셨다고 하셨잖아요. 어떻게 보면 유학인데, 그러면 차라리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제가 북한에서 한글로 초, 중, 고를 졸업했기 때문에 영어를 잘 못합니다(웃음). 한국에 와서 의대를 못 간 것도 영어시험을 통과 못해서예요. 전 한국은 한글로 시험 보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2007년 연세대 중문과에 입학해서 2011년에 졸업했고 탈북자 1호로 서울시 공무원이 됐죠. 그런데 '1호'가 좋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이런 사건에 휘말릴 줄은 몰랐죠."

- 북한 사람들이 바라보는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요?
"북한 사람들은 한국이 잘산다는 걸 TV나 라디오를 통해 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한국을 동경하는 사람도 많아요. 북한 언론을 통해선 한국에 대한 잘못된 정보도 나가고 있지만 (북한 사람들은) 안 믿어요."

- 탈북자로 대한민국에 사는 것이 힘들 것 같은데.
"한국에 사는 게 쉽지만은 않았어요. 북한에선 의학 공부를 해서 의사였지만 한국은 그런 부분을 인정 안 해줘서 막노동을 했어요. 그렇게 돈을 모아 학원에 다니면서 의대 준비를 했어요. 결국 의대를 못 갔지만, 사회에서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저같이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덕에, 이런 엄청난 사건을 당하고서도 오늘 인터뷰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힘든 부분은 있지만, 좋은 분들이 계셔서 꿋꿋이 버티며 살고 있어요. 탈북자들은 한국사회를 잘 모르기 때문에 사기를 당하거나 정착금을 날리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정착금을 날렸고요. 하지만 그런 일을 겪으며 배우는 거 같아요."

- 본의 아니게 유명인이 되셨는데.
"제가 유명인이 되고 싶어서 된 건 아니고 사건을 진행하다 보니 유명해지게 됐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제가 재북화교 출신이잖아요. 그래서 일부 보수언론에서는 추방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4대째 북한에서 살았어요. 고조할아버지가 독립운동하다 돌아가셨거든요.

저희 조상이 중국에서 북한으로 오긴 했지만 한반도에 저희 조상님들 피가 묻혀있거든요. 그래서 저도 한반도를 더 사랑하게 됐고 뼈를 묻으려고 한국까지 왔어요. 언론에선 여려 안 좋은 얘기를 하지만 저에겐 저를 지켜줄 좋은 분들과 가족이 있어요. 굳건하게 대한민국에서 좋은 일 하며 사는 게 꿈이죠."

- 만약 통일된다면 어딜 가장 가고 싶어요?
"고향이죠. 회령이에요. 고향엔 학창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들이 있어요. 그들도 보고 싶고 어린 시절 뛰놀던 고향의 향기도 느끼고 싶고, 한국의 선진 기술을 고향에 가서 나눠주고도 싶어요. 언젠가는 통일이 돼서 자동차로 고향을 방문할 날이 올 것으로 믿어요."

- 마지막으로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제가 겪은 일처럼 (정권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없어지려면 많은 분이 억울한 사람들에 대해 귀를 기울여 주셔야 합니다. 한 명의 목소리는 호락호락하지만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면, 결코 국가가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제 사건을 응원해 주시고 관심을 두신 분들이 계셨기에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어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한국에서 좋은 일 하면서 살게요. 그리고 다 같이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랄게요."

'탈북자 출신 간첩'으로 기소됐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유우성씨. 유씨 뒤의 사진은 14년 4월 무죄판결을 받기전 이희훈 오마이뉴스 기자가 촬영한 사진이다.
 '탈북자 출신 간첩'으로 기소됐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유우성씨. 유씨 뒤의 사진은 14년 4월 무죄판결을 받기전 이희훈 오마이뉴스 기자가 촬영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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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박정훈 기자



태그:#유우성,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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