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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헝그리(Hungry)하게 키우지 못한 50대 학부모입니다. 삶의 목표를 잡지 못해 표류하는 아이와, 은퇴 후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가 현실적인 문제가 된 저의 처지는 일응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 먼 이국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 보면서, 점점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문제와 베이비 부머들의 2막 인생에 대해 같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 기자 말

큰애에게 워킹 홀리데이는 어떤 의미였을까? 새벽녘 어슴푸레 반쯤 잠에서 깨어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달콤한 잠에서 벗어나기 싫어 따뜻한 이불 속에서 미적거리는 그런 시간이었을까?

내가 즐겨 본 <동물의 왕국>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세렝게티 초원의 '누우떼'처럼 강 건너 풍요로운 풀밭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악어 떼가 득실대는 강물에는 두려움 때문에 뛰어들지 못하고 있는 그런 상태가 아니었을까?

큰애의 나이 이미 이십대 중반, 청년기에 접어든 지 한참 되었지만 아직 삶의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워킹홀리데이라는 이름으로 먼 이국으로 표류하여 왔다. 여기에서 저 멀리 희미하게 가도 괜찮을 것 같은 길은 발견했지만 아직 그 길에 들어 설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지 않는 것 같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자기 적성에 맞는다면, 목수나 배관공으로 살아 가도 금전적,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공부를, 어찌 보면 재미있을 것도 같은 공부를 해야 하는데, 여전히 공부에는 두려움과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다. 무엇보다 참을성 있게 뭘 배워서 성공해본 경험이 없다는 게 새로운 시작을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 아니었을까?

아토피라는 피부염을 제외하면, 일주일 단위로 급여를 받고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생활은 괜찮았을 것이다. 일은 힘들지만 견뎌낼 수 있는 수준이다. 무엇보다도 볼 때마다 잔소리를 하는 부모가 없으니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생활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망설임에 허용된 시간은 2년이다. 큰애는 그 2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강을 건너기로 결심했다.

큰애는 'pre-intermediate'부터 시작했다

학원 건물 입간판. 건물 2층에 접수처가 있다.
▲ 어학원 건문 입간판 학원 건물 입간판. 건물 2층에 접수처가 있다.
ⓒ 정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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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토익, 토플, 아이엘츠와 같은 영어 인증시험에서 일정한 점수 이상을 획득해야 한다. 아니면 패스웨이(pathway)라고 하여 입학하고자 하는 학교와 협약이 된 어학원에서 제공하는 영어코스를 수료하면 된다. 큰애는 패스웨이를 이용했다.

패스웨이를 이용하는 외국인 학생들은 현지 사정을 잘 모르고, 바로 학교 또는 어학원을 상대하기가 어려우므로 보통 유학원을 통한다. 유학원에서 학과와 학교를 선정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얻고, 거기에 맞춰 어학원을 선택한다. 한국, 일본, 콜롬비아와 같이 유학생이 많이 오는 나라들의 경우에는 유학원에서 해당국가 출신들을 채용하여 학생들을 상담한다.

재미있는 것은 유학원에서도 협상만 잘 하면 할인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아껴야 하는 유학생 입장에서는 여러 군데 유학원을 다니면서 발품을 팔면 적은 액수이지만 비용절약이 가능하다.

유학원에서는 또 외로운 유학생들을 위해 친구를 소개해주기도 한다. 몇 주에 한 번씩 모여서 떡볶이 파티 같은 것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젊은 친구들끼리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큰애 말에 의하면 호주에서 생활하면서 부딪히는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을 컨설팅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영주권을 받기 위해 취득해야할 점수항목들이 다양하다
▲ 호주 이민성 영주권 취득 점수표 일부 영주권을 받기 위해 취득해야할 점수항목들이 다양하다
ⓒ 정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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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애는 'pre-intermediate'부터 시작했다. 어학원은 현재의 영어실력을 테스트해서 학교에서 요구하는 수준까지 올리는데 필요한 기간을 설정하고 거기에 맞춰 비용을 청구한다. 따라서 미리 어느 정도 공부를 해놓은 상태에서 어학원에 가야 비용을 최소화 할 수 있다. 어학원에서 레벨테스트를 해서 바로 EAP(English Academic Purpose) 과정에 들어 갈 실력이 안 되는 학생은 일반과정을 수료하게 한다. 

큰애는 'Performance Education'이라고 하는 어학원을 다녔다. 멜버른에는 수많은 어학원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비교적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여기에서의 일반과정은 'beginner  elementary pre-intermediate intermediate upper-intermediate advanced'로 세분화 되어 있다.

레벨테스트는 말하기, 듣기, 작문, 문법 네 가지를 본다. 먼저 시험관이 학생을 인터뷰 하면서 말하기와 듣기 실력을 동시에 평가한다. 문법은 시험문제를 내줘서 풀게 하고, 작문은 주제를 하나 줘서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적도록 한다. 이를 종합해서 레벨을 결정하는 것이다. 큰애는 'pre-intermediate'부터 시작했다.

일반과정을 수료하면 EAP과정으로 옮겨간다. 영어로 리포트 쓰는 법, 프레젠테이션 하는 법 등 대학에서 강의를 듣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소양을 함양한다. EAP과정은 필수과제와 일반과제로 나뉘어서 강의가 진행된다. 꼭 해야만 통과할 수 있는 필수과제는 ①프레젠테이션, ②토론 리더 역할 수행(2명의 리더가 하나의 주제에 대해 찬반을 나눠 토론을 한다.), ③리포트 작성, ④듣기 테스트의 4가지로 구성된다.

일반 과제는 말 그대로 당시의 현안에 대해 영어로 토론하며 영어실력을 쌓는 과정이다. 큰애가 공부할 당시에는 중동의 IS가 사회의 주목을 끌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신문기사를 선생님이 카피해와서 토론했다고 한다. 토론의 주제를 잡고 자기의 의견을 말하고 선생님의 질문에 답하는 형태로 트레이닝을 받는다.

'큰애가 잘 하는 일' 중 하나를 선택

큰애는 호주에서 영주권을 따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큰애 또래의 청년들이 호주에서 영주권을 따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호주의 직업학교를 나와서 호주에 필요한 인력이 되는 것이다. 어떤 직업을 가지는 것이 영주권을 따는 데 유리할까? 그건 그때그때 달라진다고 했다.

큰애가 그 문제를 상담하기 위해 유앤아이글로벌(U&I Gloabal)이라고 하는 현지 유학원을 방문했을 때 상담원이 추천한 직업중의 하나가 쉐프이다. 얼마 전까지는 대상이 아니었는데, 쉐프 인력이 부족해졌는지 영주권 부여 대상 직업으로 새로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나도 큰애가 쉐프가 되기를 원했는데, 그건 내가 알고 있는 '큰애가 잘 하는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큰애가 고등학교 다닐 때 또는 졸업 직후 집에 있을 때, 가끔 내게 술안주를 만들어 주었는데, 솔직히 아내가 한 것보다 맛이 있었다. 생선구이도 시골에 계시는 어머님이 한 것처럼 촉촉하게 잘 구워와서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다.

큰애는 대인 관계도 좋은 편이다. 나중에 레스토랑을 운영할 때 꼭 필요한 항목이다. 나는 성격이 다소 모난 편이 있어서 불이익을 많이 받았는데, 큰애는 아내를 닮아 사람을 만남에 있어서 치우침이 적은 것 같다.

내가 평생 부러워해 온 캐릭터이다. 나는 그 말을 믿는다.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나 골고루 재능을 나누어 주신다고 하는. 쉐프라는 직업을 하느님께서 주신 '큰애가 잘 할 수 있는 일'로 보고 적극 응원할 생각이다.


태그:#청년실업, #호주영주권, #쉐프, #워홀, #베이비부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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