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타이거즈의 메이저리그 출신 3인방 최희섭-서재응-김병현의 운명이 엇갈리고 있다. 이들 3인방은 광주일고 동문으로, 박찬호 등과 함께 1990년대 한국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 열풍을 이끌었던 '1세대'로 꼽힌다.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을 펼치며 2006년 초대 WBC에서 한국야구의 4강 신화를 합작하기도 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하나둘씩 국내 무대로 귀환하여 고향팀 기아 타이거즈에서 다시 한솥밥을 먹으며 뭉쳤다.

기아는 올해 김기태 감독 부임 이후 리빌딩을 선언했다. 비록 올 시즌 가을야구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가능성을 선보였다. 기아는 내년 이후를 대비한 세대교체를 가속할 움직임을 보인다. 자연히 노쇠화 조짐을 보이며 몇 년간 기대에 못 미친 베테랑 선수들의 거취가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최희섭 은퇴 유력, 김병현 잔류, 서재응 미정

 2009년 V10의 주역이었던 '빅초이' 최희섭. 지난 4월 상승세를 보이며 부활하는 듯 했으나, 부상으로 다시 침체했다. 최희섭 선수는 은퇴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V10의 주역이었던 '빅초이' 최희섭. 지난 4월 상승세를 보이며 부활하는 듯 했으나, 부상으로 다시 침체했다. 최희섭 선수는 은퇴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 KIA 타이거즈


최근 일부 언론보도를 통하여 세 선수의 거취가 윤곽을 드러냈다. 최희섭은 은퇴가 유력하고, 김병현은 팀 잔류, 서재응은 아직 불확실한 것으로 알려졌다.

팬들에게는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세 선수 모두 기아 팬들 사이에서는 애증의 선수들이었다. 팬들의 많은 기대와 사랑을 받았지만, 대체로 전성기의 명성에는 못 미치는 모습으로 아쉬움을 자아낸 순간도 많았다. 그래도 한 번 더 부활을 기대하며 수년간 희망 고문을 거듭해왔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을 막지 못하고 어느덧 해체를 눈앞에 두게 됐다.

최희섭과 서재응은 2009년 타이거즈의 역대 10번째 우승이자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한 선수들이다. 특히 최희섭은 그해 131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3할 8리 33홈런 100타점으로 홈런 2위, 타점 3위에 올랐다. 당시 MVP에 오른 김상현(현 kt wiz)과 함께 CK포로 불리는 막강 타선을 구축했다. 그해 1루수 골든글러브 역시 최희섭의 몫이었다. 2009년은 최희섭의 경력 최고시즌이기도 했다.

최희섭은 이듬해인 2010년에도 21홈런을 기록하며 그럭저럭 제 몫을 했다. 하지만 이후로는 잦은 부상과 슬럼프에 시달리며 더는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코치진 및 선수단 내에서도 갈등을 겪으며 이적설과 은퇴설이 거론되는 등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최희섭은 최근 5년간 매년 80경기 이하 출장에 그쳤고, 2014년에는 아예 전력 외로 분류되며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올 시즌 김기태 감독 부임 이후 모처럼 의욕적으로 재기를 노리며 1군 무대에 복귀했으나 이번에도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4월까지는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허리부상이 악화하며 5월 28일 한화전을 끝으로 더는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올 시즌 42경기에 나서서 타율 2할 5푼 6리 6홈런 20타점을 기록했다. 기아에서 통산 성적은 9시즌 동안 634경기 출전 2할 8푼 1리 100홈런 393타점이다.

광주일고 3인방 중 최희섭만큼 선수생활 내내 논란이 잦았단 선수도 없다. 한때 이름보다 더 유명했던 '형저메'(형, 저 메이저리거예요)나 '산악인'(비시즌마다 등산을 즐기는 데서 유래함)이라는 별명에서 보듯, 선정적 언론보도와 잘못된 선입견의 희생양이 된 측면도 강했다. 순탄하지 못했던 사생활과 체구보다 내성적으로 섬세한 성격도 오해를 부추기는 데 한몫을 담당했다.

꾸준히 헌신한 서재응, 희소성 있는 김병현

 광주일고 출신 빅리거 3인방 중 1명인 서재응. 면도날 제구를 겸비한 '아트 피처'였기에, 최근의 부진이 안타깝다. 서재응 선수는 아직 거취를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일고 출신 빅리거 3인방 중 1명인 서재응. 면도날 제구를 겸비한 '아트 피처'였기에, 최근의 부진이 안타깝다. 서재응 선수는 아직 거취를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KIA 타이거즈


서재응은 최희섭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불운했던 선수다. 오랜 경력에 비하여 활약이 짧고 굵었던 최희섭에 비교하여, 서재응은 가늘고 긴 활약으로 팀에 공헌한 쪽에 가깝다. 높은 몸값을 받고도 벤치에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는 그를 두고 '서재응원단장'이라고 비아냥거리는 팬도 있었다. 그러나 빼어난 통솔력으로 후배들을 아우르고 팀 분위기를 돋우는 역할을 자처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정점을 찍은 시즌은 없지만, 매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마운드의 한 축을 담당했다. 가장 활약이 좋았던 시기는 2010~2012년간 3시즌이었다. 이 기간 2010년(9승, 자책점 3.34)과 2012년(9승, 2.59)에는 개인 최다승과 자책점 상위권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특히 2012년도에는 44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며 이 부문 신기록을 세웠다(이전 기록은 선동열 37이닝). 광주일고 3인방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꾸준하게 팀 공헌도가 높았던 선수였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시절부터 유난히 승운이 없었던 서재응은 국내 무대에서도 단 한 번도 10승을 넘지 못하는 징크스를 극복하지 못했다. 2013년부터 기량이 급격히 내림세를 보이던 서재응은 올시 9경기에서 1승 4패 자책점 4.95의 성적을 남겼다.

김기태 감독의 배려 속에 여유 있는 등판 간격을 두고 간간이 5선발로 출장했으나, 여전히 호투한 경기에서 승운이 따르지 않았다. 4연패에 빠진 8월 17일 LG전을 끝으로 더는 1군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기아에서 통산 성적은 8시즌 간 164경기 745.1이닝 42승 48패 2세이브 4홀드 자책점 4.30이었다.

은퇴가 유력한 최희섭과 달리 서재응은 여전히 선수생활에 대한 의지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서 거취는 미지수다. 만일 구단으로부터 강제로 서재응의 은퇴를 종용하는 모양새가 될 경우, 논란이 될 수 있는 대목이다. 서재응이 말년에 다른 팀으로 옮겨가 선수생활 연장을 모색할 가능성도 있다.

 파란만장한 커리어 끝에 KIA 타이거즈로 온 김병현 선수. 보직을 오가는 그의 활약, 언더핸드 투수라는 희소성 등을 고려해 그는 조금 더 뛸 것으로 보인다. '핵잠수함'의 부활을 바라는 팬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파란만장한 커리어 끝에 KIA 타이거즈로 온 김병현 선수. 보직을 오가는 그의 활약, 언더핸드 투수라는 희소성 등을 고려해 그는 조금 더 뛸 것으로 보인다. '핵잠수함'의 부활을 바라는 팬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 KIA 타이거즈


광주일고 3인방 중 가장 파란만장한 경력의 소유자인 김병현은 기아에도 가장 늦게 합류했다. 넥센을 거쳐 트레이드로 2014시즌부터 합류했지만 사실상 기아에서도 김병현은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올 시즌에는 23경기에 나서서 49이닝 간 5패 2홀드 자책점 6.98로 인상적인 활약을 남기지 못했다. KBO 통산 성적은 넥센 시절을 포함하여 4시즌 간 78경기 257.1이닝 11승 23패 5홀드 자책점 6.19다.

하지만 불펜 자원이 부족한 기아의 사정상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활약할 수 있는 데다 잠수함 투수라는 희소성을 고려할 때, 아직은 김병현의 활용도가 아직 남아있다는 판단하에 구단이 한 번 더 신뢰를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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