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롯기 동맹', LG 트윈스와 롯데 자이언츠, 기아 타이거즈를 합쳐서 부르는 별명이다. 프로야구 역사를 조금만 아는 팬들이라면 결코 모를 수 없는 추억의 키워드다.

세 팀은 연고지와 스타일은 각기 다르지만 확고한 지역색과 두터운 팬덤으로 국내 프로야구 흥행을 주도하고 있는 인기 구단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결과적으로 세 팀이 잘할 수록 국내 프로야구가 흥행한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다.

이런 세 팀이 언제부터인가 본의 아니게 '엘롯기'라는 패키지로 묶이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중반부터다. 사실 이전에도 느슨하게 '기롯엘', '롯기엘'같은 호칭으로 불린 경우도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이 말들이 크게 유행하지는 않았다. 용어의 의미도 지금과는 다소 다르게 관중 동원력이 큰 인기구단을 전반적으로 아우를 때 쓰이는 표현에 가까웠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세 팀이 나란히 암흑기를 겪으면서 동병상련의 처지로 묶이는 경우가 점점 잦아졌다. 실제로 엘롯기는 2001년부터 8년 연속 리그 최하위를 돌아가면서 삼분했다. 세 팀이 모두 나란히 가을야구를 가지 못하는 굴욕을 겪은 시즌도 있었다.

엘롯기의 '웃픈' 응원가

 나무위키 '엘롯기' 항목 갈무리

나무위키 '엘롯기' 항목 갈무리 ⓒ 자료사진


엘롯기라는 말이 더 유명세를 치르게 된 것은, 누리꾼들을 중심으로 가수 송대관의 <유행가>를 패러디한 노래가 비공식적인 '엘롯기 응원가'로 자리 잡으면서부터다.

"엘롯기, 엘롯기 신나는 노래, 나도 한 번 불러보자~"로 이어지는 가사는 절묘한 싱크로율과 함께 풍자 반, 자학 반의 코드가 뒤섞여 역대 프로야구 사상 가장 '웃픈(웃기면서 슬픈) 응원가'로 재해석됐다. 심지어 가수의 원곡은 몰라도 야구 응원가를 먼저 알았던 사람도 있었을 정도다.

입에 착착 감기는 '엘롯기'라는 호칭이 세 팀을 아우르는 공식적인 수식어로 자리매김한 것도 이 노래의 영향이 컸다. 실제 포스트시즌 동반 탈락이 확정된 이후 경기장에서 세 팀 간의 맞대결이 있을때면 관중들이 이 응원가를 자발적으로 합창했다는 웃지못할 이야기는, 국내 야구계에서는 유명한 이야기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사실 야구계에서는 엘롯기라는 표현을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 각 구단 입장에서는 엘롯기자체가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보니 함께 묶이는 것을 싫어할 수밖에 없다. KBO로서도 엘롯기의 동반 침체는 곧 프로야구 흥행의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가급적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다.

프로야구 33년 역사에서 엘롯기 세 팀이 동반으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경우는 아직까지 한 차례도 없다. 유일하게 세 팀이 4강에 함께 진입한 것은 무려 20년전인 1995년 한 차례뿐인데, 당시 롯데가 정규시즌 2위, LG가 3위, 해태(기아의 전신)가 4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당시 3위와 4위의 승차가 3경기 이상이면 준플레이오프가 열리지 않는다는 규정 때문에 4위 해태는 가을야구에 참여하지 못했다. 하지만 1995년은 국내 프로야구가 인기와 화제 면에서 최고의 흥행을 거둔 시즌으로 기억되고 있다.

엘롯기 중 누가 생존할 것인가

2010년대 들어 한동안 잊혀지는 듯 했던 엘롯기라는 표현이 올 시즌 후반기들어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세 팀의 동반 하락과 관련이 있다. 세 팀이 모두 포스트시즌 진출의 기로에 놓이면서 엘롯기의 동반 PS 탈락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엘롯기는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최소 1팀 이상의 4강 진출팀을 배출해왔다. 그런데 올해는 상황이 녹록지 않다. 현재 1~4위까지는 삼성, NC, 넥센, 두산이 사실상 가을 잔치 티켓을 확보한 가운데 남은 와일드카드 5위 자리를 두고 4팀이 경합하고 있다. 현재 5위 롯데와 7위 기아가 가을 잔치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고, LG는 올시즌 9위로 처지며 이미 포스트시즌 자력 진출이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롯데와 기아도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롯데는 지난 21일 기아가 SK를 잡아준 덕분에 어부지리로 5위 반등에 성공했지만, 정작 팀은 3연패의 부진에 빠져있다. 기아는 9월 들어 마운드의 누수와 타선 침체로 7승 10패에 그치며 고전하고 있다. 두 팀 사이에서 6위 SK가 호시탐탐 재반등을 노리고 있고 8위 한화도 아직 진출 가능성이 열려있다. 엘롯기로서는 5강의 남은 한 자리를 놓고 이제는 '혼자 살거나, 아니면 다 같이 죽거나'의 외나무다리에 놓여있는 셈이다.

롯데와 기아는 올 시즌 성적보다 리빌딩에 무게중심이 놓인 팀이었다. 지난 2년 연속 가을 잔치에 참여하며 엘롯기의 자존심을 세웠던 LG도 올 시즌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세 팀 모두 지난 1년 사이에, 잇단 감독교체와 선수단 개편의 홍역을 거치며 또 다른 과도기에 놓여있다는 평가다.

야구계에서는 내심 엘롯기의 동반 부진을 아쉬워하는 반응이 많다. 2007년 이후 8년만의 엘롯기 동반탈락이 현실화될 경우, 포스트시즌 흥행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이 현실화 될 경우 다시 한 번 웃기면서도 구슬픈 '엘롯기 응원가'가 경기장에서 부활하는 장면을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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