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밟은 손흥민(23, 토트넘 홋스퍼)이 데뷔전에서 아쉬운 활약을 보였다. 손흥민은 지난 13일 선덜랜드와의 프리미어리그 5라운드 원정경기에 선발 출전해 EPL 데뷔전을 치렀다. 후반 17분까지 62분을 뛰었으나 공격 포인트는 기록하지 못했다. 토트넘은 경기 종반 라이언 메이슨의 천금 같은 결승 골에 힘입어 1-0으로 승리하며 시즌 첫승을 신고했다.

첫 경기는 토트넘이 손흥민을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방향을 보여준 데 의미가 있었다. 포체티노 감독은 손흥민을 4-2-3-1의 오른쪽 측면 날개로 기용했다. 2선 공격수였지만 손흥민은 사실상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측면과 중앙을 오르내리는가 하면 때로는 공격수 해리 케인과 최전방에서 투톱처럼 보일 정도로 프리롤(자유로운 역할)에 가깝게 활약했다.

프리킥과 코너킥 등 세트피스 상황에서는 전담 키커로 나서기도 했다. 올 시즌 팀 이적료 지출 1위를 기록한 손흥민에 거는 토트넘의 기대치를 보여준다.

첫경기 부담 컸던 듯... 현지 언론은 '혹평'

하지만 이날 손흥민은 데뷔전에 대한 부담감이 컸던 탓인지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총 3차례 슈팅을 시도했지만 한번은 수비수의 벽에 막혔고 나머지 두 번도 유효슈팅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패스 성공률은 팀 내 최저였고 반대로 손흥민에게 연결되는 동료들의 결정적인 패스도 부족했다. 전반적으로 호흡을 맞춘지 얼마 안 되다 보니 토트넘의 팀플레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모습이었다.

영국 언론들도 손흥민의 데뷔전에 대하여 대체로 박한 평가를 했다. BBC나 데일리 메일, 스카이스포츠 등 주요 현지 언론들은 "손흥민이 데뷔전에서 빛을 발하지 못했다.", "세트피스 정확도와 패스 성공률 등은 형편없었다"고 혹평하며 대부분 낮은 평점을 매겼다. 영국 언론들은 손흥민이 토트넘 이적이 확정되던 시점부터 EPL에서 검증되지 않은 아시아 공격수의 기량에 여전히 선입견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사실 이 날 경기만 놓고 보면 손흥민만의 부진을 탓할 문제는 아니었다. 이날 손흥민과 함께 토트넘의 공격라인을 구성했던 해리 케인과 델레 알리, 나세르 샤들리 등 다른 선수들도 부진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리그 개막 이후 무득점에 그치고 있는 케인은 지난 시즌의 폭발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알리와 샤들리 역시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이 부족했다. 선수들 간의 포지션 스위칭 시에 약속된 움직임이 나오지 못하고 동선이 자주 겹치는 장면이 반복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손흥민으로서는 동료들과의 호흡을 빨리 끌어올리는 것은 물론, EPL의 템포와 거친 수비에 적응하는 것이 과제로 남았다. 조직적인 팀플레이를 강조하는 분데스리가와 달리 EPL은 어지간한 몸싸움에는 휘슬을 불지 않는 격렬한 플레이와 빠른 템포가 특징이다.

역동적인 공간 침투를 통한 치고달리기에 능한 손흥민의 장점에 어쩌면 더 최적화된 리그일 수도 있으나, 적어도 첫 경기에서는 지나치게 소극적인 모습으로 자신의 장기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손흥민은 토트넘에서 많은 기대를 걸고 영입한 공격수다. 레버쿠젠 시절처럼 조력자보다는 좀 더 자기 목소리를 내고 공격적인 역할에 욕심을 부려도 되는 입장이다. 볼을 지나치게 끌거나 이기적인 플레이를 하지 않는 이상, 공격수에게 욕심은 필수적인 덕목이기도 하다.

기회에서 볼을 주저 없이 동료에게 요구하고, 실패하더라도 적극적인 슈팅을 노릴 수 있어야 한다. 이동국, 박주영, 지동원 등 손흥민에 앞서 EPL에 입성했다가 실패한 한국 공격수들의 사례는 손흥민에게 좋은 반면교사다.

'오버페이' 논란 잠재운 마샬, 손흥민도 실력으로 증명해야

비슷한 시기에 EPL 데뷔전을 치른 앙토니 마샬(맨유)의 활약은 손흥민과 비교가 된다. '제2의 앙리'로 불리는 마샬은 AS모나코에서 활약하다가 올 시즌 3600만 파운드(약 650억 원)의 천문학적인 이적료에 맨유 유니폼을 입게 됐다.

이는 2200만 파운드를 기록한 손흥민보다 월등히 많은 액수이며 10대 선수의 이적료로는 역대 최대 몸값이었다. 아직 어린 유망주에 불과한 마샬에게 어지간한 특급 공격수도 받기힘든 몸값을 쏟아부은 것을 두고 '오버페이' 논란은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샬은 단 한 방으로 모든 비난 여론을 단숨에 잠재웠다. 지난 13일 맨유와 리버풀의 노스웨스트 더비에서 후반 19분 후안 마타와 교체투입된 마샬은 팀이 2-1로 쫓기던 후반 40분 경 문전 왼쪽에서 수비수 3명을 개인기로 제치며 환상적인 득점을 성공시켰다.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그것도 EPL 최고의 더비매치에서 기록한 것이다.

처음 20분간 별다른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며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던 마샬은 단 한 방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신인 선수가 난생 처음 빅클럽의 데뷔전에서 그것도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위축되지않고 자신만의 플레이를 펼친다는 것은 어지간한 배짱이 아니면 힘들다.

사실 이날 출전한 26분동안 마샬이 드러난 순간은 이 한 장면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 한 장면으로 충분했다. 그만큼 공격수는 누가 뭐라고해도 결국 골로서 이야기한다는 것을 증명한 장면이기도 하다.

데뷔골과 동시에 마샬에 대하여 '과대평가', '거품'이라고 비난하던 여론이 쏙 들어간 것은 물론이다. 맨유는 이날 간판 공격수 웨인 루니가 부상으로 결장하며 미드필더인 마루앙 펠라이니를 선발 공격수로 내보내야할 정도로 위기 상황이었으나 교체투입된 신예 마샬의 재능을 확인하며 전화위복이 됐다.

토트넘과 영국 언론이 손흥민에게 기대한 장면도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오버페이 논란까지는 아니지만 여전히 손흥민의 능력에 대하여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시선이 많다. 토트넘이 최근 대형 영입에서 몇 차례 실패한 사례도 있기에 더욱 예민할수밖에 없다.

잘할때는 극찬을 아끼지 않지만 조금만 부진해도 가혹하게 물어뜯는 것은 유럽에서도 영국 언론이 유독 극성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토트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손흥민의 초반 분발이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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