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어? 여기서 어떻게 1년을 살아!" (2014년 10월 17일 방송된 <삼시세끼> 첫 회 중 이서진의 말)

그런데 1년이 지났다. 미국 유학파 이서진과 옥택연이 강원도 정선의 한적한 마을에서 그저 밥을 만들어 먹는 게 전부인 프로그램 tvN <삼시세끼>가 1년 프로젝트였던 정선편의 마침표를 찍었다. 우두커니 두 남자뿐이었던 세끼집은 그동안 조금씩 온기를 더하고, 풍성해졌다. 작물은 열매를 맺었고, 동물들은 새끼를 낳았다. 다양한 연예인들이 게스트로 방문해 함께 밥과 이야기를 지어먹었다. 그동안 옥순봉 세끼집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 노예에서 정선 만수르가 되기까지

 <삼시세끼>의 마지막 게스트로 출연한 박신혜와 고정 멤버 이서진, 택연, 김광규가 수확한 옥수수를 담고 있다.

<삼시세끼>의 마지막 게스트로 출연한 박신혜와 고정 멤버 이서진, 택연, 김광규가 수확한 옥수수를 담고 있다. ⓒ CJ E&M


<꽃보다 할배>에서 라면스프를 넣어 가까스로 김치찌개를 끓이던 이서진을 놀리듯, 나영석 PD는 '요리왕 서지니'라는 프로그램을 제안했었다. 이것이 <삼시세끼>의 태동이다. 그렇게 진짜 요리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이서진은 '자급자족 유기농 라이프'라는 기획의도에 매우 심드렁했다. 그저 삼시세끼 밥을 해 먹는 걸 보여주는 내용에, "이 프로그램 망했다"며 폭언과 저주를 일삼았다.

하지만 툴툴거리면서도 할 건 하는 게 예능인 이서진의 미덕. 노예처럼 수수를 베고 다시 그 자리에 옥수수를 심고 텃밭을 일군 것은 물론 양봉까지 했다. 덕분에 농작물 판매까지 할 수 있게 된 출연진은 "우리가 정선의 만수르"라고 떵떵거릴 정도로 수확의 기쁨을 누렸다. 게스트로 출연했던 홍석천은 최근 자신의 SNS에 <삼시세끼> 팀이 정선에서 보내준 농작물을 찍어 올렸다. 운이 좋으면 마트에서 생산자가 '옥택연'인 옥수수를 만나게 될지도.

# 지옥에서 핀 사랑

 올해 <삼시세끼>는 밭에 옥수수를 심어 이를 수확해 농협에 판매하는 모습을 내보내기도 했다.

올해 <삼시세끼>는 밭에 옥수수를 심어 이를 수확해 농협에 판매하는 모습을 내보내기도 했다. ⓒ CJ E&M


지난해 겨울, 나영석 PD의 소작농 이서진과 옥택연에게 붉은 수수밭은 지옥의 일터였다. "고기 없이 뭘 먹냐"는 푸드파이터 게스트 최화정의 먹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허리가 휘도록 수수를 베어, 한 가마당 겨우 돼지고기 한 근으로 바꿔주는 악덕 지주 나 PD와 계약을 맺고 빚더미에 올라앉아야 했다.

슬픔을 간직하고 있던 수수밭에 새 농작물을 심으며 옥택연은 트랙터로 하트를 새겼다. 이곳은 여자 게스트와 함께 서고 싶은 고백의 장이 되기도, 젊은이들의 사랑놀음을 시기한 이서진과 김광규의 난투극으로 그 의미가 훼손되기도 했다. 방송 이후 강원도 정선의 관광명소가 된 촬영지 대촌마을에 다녀온 사람들에 의하면, 옥수수 수확을 마친 지금은 안타깝게도 하트밭이 사라졌다고.  

# 밍키의 역변, 그리고 아이들

 2015년 <삼시세끼 정선편> 밍키의 '역변'

2015년 <삼시세끼 정선편> 밍키의 '역변' ⓒ CJ E&M


처음엔 작은 상자 안에 들어 있었던 강아지 밍키는 불과 몇 개월만에 깜찍한 이름이 무색한 크기로 성장해 있었다. 원래부터 약간 억울한 상이었으나, 세월의 풍파가 세차게 치고 지나간 후엔 조금 더 억울한 느낌이다. 이 정도면 '어촌편'의 마스코트 강아지 산체에게도 일어났을 변화가 자못 궁금해진다.

밍키는 에디와 사피의 엄마가 됐고, 염소 잭슨에게도 펄과 다이아라는 식구가 생겼다. 우리를 다시 만들어야 했고 새벽이면 밥 달라는 울음소리가 세 배로 커져 잠을 설쳐야 했지만, 늘어난 가족들만큼 세끼집에는 더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 손님인가, 일꾼인가

 올해 <삼시세끼>의 첫 게스트였던 박신혜는 마지막 게스트로도 출연했다.

올해 <삼시세끼>의 첫 게스트였던 박신혜는 마지막 게스트로도 출연했다. ⓒ CJ E&M


작년 게스트 윤여정이 "이게 뭐야 긍까, 이 프로가 긍까"라고 타박하고, 신구와 백일섭이 "있는 거 다 내놔 봐"라고 엄포를 놓을 때만 해도 이서진과 옥택연은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올해는 무려 양대창을 싸와 모두의 환영을 받은 박신혜가 샤브샤브와 잔치국수 등을 만들어 냈고, 셰프에 가까운 홍석천과 셰프를 연기했던 이선균의 등장으로 강원도 산골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알리오올리오와 수제햄버거까지 선보였다. 손님 같지 않은 손님들에 시청자가 길들여진 탓인지, 요리 실력이 다소 부족했던 김하늘 편에서는 시청자 반응이 엇갈리며 때아닌 '옹심이 논란'이 일기도 했다. 

#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올해 <삼시세끼>의 마지막 끼니로 만든 무밥에 된장찌개. 첫 끼니 때와 같은 요리지만, 햄이 추가됐다.

올해 <삼시세끼>의 마지막 끼니로 만든 무밥에 된장찌개. 첫 끼니 때와 같은 요리지만, 햄이 추가됐다. ⓒ CJ E&M


<삼시세끼>의 마지막 요리는 1년 전 첫 끼로 만들었던 무밥에 된장찌개. 텃밭에서 딴 갖은 채소들을 다 때려 넣은, 집밥 초심자들에게 그나마 어렵지 않으면서 '자급자족 유기농'이라는 취지를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요리다. 무공해 라이프스타일 1년이면 도시를 고집하던 이서진 같은 사람도 변하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기는 무슨, 그리웠던 MSG를 가득 담은 햄 반찬이 추가됐다.

이서진은 햄을 입에 넣으며 "역시 인스턴트가 최고야"라는 결론을 내렸다. <삼시세끼>에서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의 초심이다. "유기농이 싫다" "농약 좋아한다"며 어깃장을 부렸던 이서진은 여전히 "가능하면 자급자족보다는 외식"이라는 신념을 강조했다.

 올해 <삼시세끼>를 마치며 이서진은 여전히 "자급자족보다는 외식"이라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1년 프로젝트에서 유독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이서진의 초심이다.

올해 <삼시세끼>를 마치며 이서진은 여전히 "자급자족보다는 외식"이라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1년 프로젝트에서 유독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이서진의 초심이다. ⓒ CJ E&M


그러니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어쩌면 세끼를 챙겨 먹기도 바쁜 요즘 사람들에게 <삼시세끼>는 판타지였을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으레 '때운다'고 대충 넘어가던 한끼를 제대로 만들어 먹는 과정의 녹록치 않음, 그만큼의 보람을 간접적으로 느낀 시청자가 있다면 작지만 유의미한 변화다.

비록 이서진의 입맛과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 데는 실패했을지라도 얻은 게 있다면, "<삼시세끼>를 보고 작은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는 시청자와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를 오갈 수 있는 tvN의 이모작 예능인 이서진, 그리고 옥택연이 2PM 멤버로서 아무리 카리스마 있는 눈빛과 안무를 선보인다고 해도 눈에 아른거릴 '옥빙구'의 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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