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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부터 힘든 일을 하는 북인도 코사니 여성
 이른 아침 부터 힘든 일을 하는 북인도 코사니 여성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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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인도 코사니에서 해가 뜰 무렵이면 거의 매일 산책길을 나섰다. 저만치 히말라야 설산 난다 데비를 끼고 걸었다. 그 산책길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인도 여성들이다. 소에게 먹이를 주거나 소젖을 짜고 더러는 아침 기도를 올린다. 모두가 여성들이다.

그 일을 마치고 나면 밥을 짓고 아이들 학교 갈 준비를 돕는다. 간혹 일부의 남성들은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이른 아침부터 신에게 기도를 올리기도 한다. 대부분 남성은 여성들이 아침밥을 준비하는 사이에 방에서 나와 담배를 피워 물거나 세수를 한다. 농사 또한 대부분 여성의 몫이라고 하는데 농한기라서 밭일을 하는 사람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힘든 밭일하는 인도 여성들, 사진 찍기도 미안했다

돌을 머리에 이고 가파른 언덕길을 가로 지르고 있는 인도 여성
 돌을 머리에 이고 가파른 언덕길을 가로 지르고 있는 인도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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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중년 여성이 소젖을 짜고 있었다. 내가 지나가면 종종 짜이를 권했던 여성이다. 그 길을 지나쳐 몇십 분을 더 걸어가면 언덕길 아래 허물어진 외양간이 보인다. 주변에 집 한 채 없이 외떨어져 있는 외양간에서 며칠 전 송아지가 태어났다. 어린 아들과 함께 그 외양간을 오가는 여성이 있다. 우유를 짜는 중년 여성과 더불어 나와 눈인사를 하는 사이다. 내가 눈인사와 함께 두 손 모아 합장을 하면 웃음으로 화답한다. 그러면서 어린 아들에게 나를 향해 두 손을 모아 답하도록 한다.

주위에 어린 아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 홀로 외양간을 오가며 머리에 무거운 돌을 이고 있었다. 가파른 언덕길을 가로질러 저만치 언덕 너머에 자리한 보금자리로 옮겨 나르고 있다. 힘든 작업을 하고 있지만, 남편 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차마 그 힘든 작업을 하는 젊은 여성에게 바짝 다가가 사진을 찍을 용기를 내지 못했다. 다만 멀리 떨어져 사진기를 들어 보였다. 그녀가 찍어도 상관없다는 긍정의 웃음을 내보인다. 그녀를 향한 카메라의 셔터 소리조차 미안했다.

소의 먹이가 되는 나뭇잎을 이고 가는 인도 여성들
 소의 먹이가 되는 나뭇잎을 이고 가는 인도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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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걸음을 옮긴다. 길옆 숲에서부터 네 명의 여성이 머리에 포댓자루를 이고 걸어온다. 중년 여성과 열예닐곱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들이다. 아마 엄마와 딸들인 듯싶다. 남성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길옆 나뭇잎들을 손짓하며 소에게 먹일 것이냐고 묻자 여성들이 빙그레 웃는다. 이들의 표정으로 보아 소먹이로 줄 싱싱한 나뭇잎이 분명했다. 이번에도 역시 차마 앞에서 사진 찍을 용기가 나지 않아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또 다른 여성이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언덕길을 오르고 있다. 나는 20여 일 동안 이른 아침마다 이 길을 걸었다. 그동안 무거운 물동이를 이고 가는 단 한 명의 남성을 만난 것이 전부였다. 그는 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해 달콤한 짜이를 내주기도 했다. 그를 제외하고 짐을 이고 지고 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여성들이었다. 가템씨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그랬더니 이곳 남성들은 생계형 농부보다는 임금노동자가 많다고 한다. 농한기 때에는 대부분 돈벌이를 하러 도시로 나가거나 집에서 놀고먹는 일이 많다고 귀띔해 줬다.

밭 근처의 나무를 베지 않는 이유, 여기에 있다

밭 주변에 서 있는 나무들
 밭 주변에 서 있는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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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농사를 지어온 나로서는 인도 사람들의 농사일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즐비한 코사니에서는 녹차를 비롯해 밀과 밭벼, 보리, 기장, 채소, 과일, 향신료 등을 재배하고 있다고 한다. 코사니가 고향이라는 민박집 주인 비놋씨 말에 따르면 이곳 농민들은 대부분 농작물에 농약을 치지 않는 유기농 재배를 한다.

해발 1900m의 산 언덕에 자리한 코사니 농촌 마을에는 수로가 놓여있다. 그래서 볏논이 보이지 않는다. 물벼를 대신에 밭벼나 보리 밀 등을 재배하고 있다. 그런데 다랭이 밭 주변에 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밭 주변 나무들 대부분이 오크, 도토리나무다. 한국에서는 밭 주변의 나무들은 가차 없이 베어 버리는 게 상식이다. 그늘이 지는 만큼 수확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산책길을 걸으며 며칠 동안 관찰한 끝에, 밭 주변에 잎이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의 용도를 알게 되었다. 한 여인이 낫을 들고 나뭇가지를 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는데 나뭇가지를 치고 나서 그늘 밑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나무를 베지 않는 이유는 그 무성한 나뭇잎을 소먹이로 줄 수 있고 나뭇가지는 땔감으로 쓰기 때문이다. 또한 그늘은 땡볕에서 밭일하는 사람들의 쉼터가 된다.

소를 먹이기 위해 나뭇잎 무성한 가지를 치고 있는 여성
 소를 먹이기 위해 나뭇잎 무성한 가지를 치고 있는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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땔감을 이고 가는 여성
 땔감을 이고 가는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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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밀이나 보리처럼 씨를 뿌리고 풀을 뽑아주거나 따로 관리 하지 않아도 된다. 나무는 생명이 다할 때까지 아낌없이 내준다. 잎이 무성한 가지를 잘라내면 다시 자란다. 싱싱한 잎을 먹은 소들은 질 좋은 우유를 내줄 것이다. 소의 배설물은 질 좋은 거름이 된다. 거기다가 나뭇잎이 무성한 시기는 소와 염소 등이 새끼를 낳는 시기다.

나무 그늘만큼 줄어드는 밭작물의 수확량 이상의 가치를 얻고 있었다. 그러니 어찌 나무들을 함부로 벨 수 있겠는가. 밭 가장자리의 나무는 이들에게 소만큼이나 신성한 것이다. 지혜는 신성한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아가는 생활에서 나온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은 지혜로운 사람을 만든다.

참나무에 올라가 도토리를 따먹고 있는 원숭이
 참나무에 올라가 도토리를 따먹고 있는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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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인도 코사니 숲에 널려 있는 도토리. 짐승들의 먹이가 되고 있다.
 북인도 코사니 숲에 널려 있는 도토리. 짐승들의 먹이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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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사니 주변 숲에는 도토리나무가 즐비하다. 그만큼 도토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한국에서처럼 도토리를 가공해 묵을 쑤어 먹지 않는다. 도토리는 짐승들의 먹잇감으로 놓아둔다.
원숭이도 도토리를 먹는다. 간혹 원숭이들이 참나무에 올라가 도토리를 따 먹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원숭이들의 등쌀로 밭작물 특히 토마토나 과일 종류의 작물들을 심지 못할 정도라고 하는데, 풍부한 도토리로 인해 그만큼 밭작물을 덜 해칠 것으로 보인다.  참나무 숲은 인간도 살리고 동물도 살리는 셈이다.

소에게 참나무 잎을 주고 있는 여성
 소에게 참나무 잎을 주고 있는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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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사니에서는 우유의 생산성을 늘이기 위해 축사 안에서 꼼짝 못 하고 젖을 짜내는 공장식 축산을 볼 수 없다. 우유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촉진제를 비롯한 온갖 첨가제를 넣은 사료도 볼 수 없었다.

인도 사람 중에는 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가 많다. 이들 중에는 동물성 음식 중에서 고기와 동물의 알은 먹지 않지만, 유제품은 먹는 채식주의자(락토 베지테리언)도 있다. 이들은 인도 인구의 20~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전 세계 채식주의자들을 다 합친 인구보다 훨씬 많고, 전 세계 채식주의자의 70%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들은 육류에서 얻을 수 있는 단백질을 콩류와 우유, 버터, 요구르트 등의 유제품으로 보충한다. 그러다 보니 유제품을 가장 많이 얻을 수 있는 동물, 소의 젖은 무엇보다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채식주의자는 물론이고 유제품을 즐겨 먹는 인도 사람들이 소를 신성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인도 사람에게 우유는 시시때때로 즐겨 마시는 전통 차, '짜이'의 기본 첨가물이다. 북인도 코사니의 농가 대부분은 소 한두 마리 정도를 키우고 있다. 틈틈이 가족들이 먹을 만큼의 소젖을 짠다. 가족이 먹고 남을 우유가 생기면 발효시켜 요구르트나 치즈로 가공해 보관하거나 젖소가 없는 가정에 얼마간의 돈을 받고 팔기도 한다.

축사에서 사료를 먹고 대량의 우유를 생산하는 소와 숲의 나뭇잎이나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가난한 농가의 소에게서 나오는 우유의 질은 크게 다를 수 밖에 없다. 우유의 생산성을 높이는 사료를 먹일만한 형편이 못 되는 농촌 사람들이 오히려 질 좋은 우유, 유제품을 즐겨 먹는 셈이다.

이른 아침 부터 소젖을 짜고 있는 인도 여성
 이른 아침 부터 소젖을 짜고 있는 인도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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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농촌 사람들에게 소의 먹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농촌에서 소에게 먹이를 구해다 주는 것은 일과 중 하나다. 이 또한 여성들 몫이다. 우유는 소에서만 얻는 게 아니다. 내가 묵고 있는 민박집 주변은 참나무들이 즐비하다. 여자아이가 낫을 들고 참나무 위에 위태롭게 올라가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를 쳐낸다. 그 여자아이에게 물었다.

"그 나뭇잎들을 따서 소먹이로 주려고 하니?"
"아니요."

나는 영어로 염소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메에앰' 염소 소리를 내며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여자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한다. 이곳에서는 소뿐만 아니라 염소 젖을 먹기도 한다. 나는 그 아이의 해맑은 웃음에서 음식의 질에 따라 사람의 표정도 달라진다는 생각을 했다. 비좁은 축사에서 온갖 스트레스에 첨가물 사료를 먹은 소의 우유와 싱싱한 나뭇잎을 먹고 자라는 소에서 나오는 우유의 질이 다르다. 그렇듯이 그 우유를 먹고 자라는 아이들의 표정이나 심성 또한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의 영혼은 농촌에 있다"던 간디, 그 중심에 여성이 있다

북인도 코사니 농촌 마을의 결혼식에 모인 여성들. 결혼식 날 만큼은 남성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여성들은 일을 하지 않는다.
 북인도 코사니 농촌 마을의 결혼식에 모인 여성들. 결혼식 날 만큼은 남성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여성들은 일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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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사람들의 70% 이상이 농민이다. 가난하지만 대체로 표정이 해맑은 북인도 코사니의 농촌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인도의 영혼은 농촌에 있다'라던 마하트마 간디의 말에 수긍이 간다. 어느 나라이든 비슷하겠지만, 도시에서 벗어나 농촌 깊숙이 들어갈수록 현실에 찌들지 않은 순박한 농민들을 만날 수 있다. 인도의 영혼이 농촌에 있다는 말은 순박한 농민들이 하늘과 땅, 자연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심에 여성들이 있다.

인도 농촌의 힘은 여성에게서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도의 농촌 여성들은 생명의 모태인 땅이나 다름없다. 여성이 땅과 숲을 지켜왔다. 1970년대 북인도 여성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간 '칩코 운동('숲 껴안기 운동', 북인도 여성들이 이 운동으로 히말라야 숲을 지켜냈다)'은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땅을 지키고 숲을 지켜온 농촌 여성들의 생활에서 비롯됐다.

농촌 여성들은 땅과 숲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 왔다. 농촌 여성들에게 숲은 영혼이나 다름없다. 영혼이 없는 육신은 죽은 시체나 다름없다. 영혼의 숲이 사라져 가면 그나마 가난한 생활조차 어려워진다. 소에게 줄 여물을 얻지 못하면 우유를 얻을 수 없다. 또한 일용할 양식인 논· 밭작물을 풍요롭게 해주는 거름, 불을 지펴 짜이를 끓이거나 빵을 굽는 등의 음식을 요리할 땔감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여성들은 목숨을 걸고 개발업자들의 도끼질 앞에서 나무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생명의 숲을 지켜오고 있는 인도의 농촌 여성들이야말로 마하트마 간디가 말한 인도의 영혼이다. 인도 사람들이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성산으로 떠받들고 있는 '난다데비'가 있다. 난다데비가 여신인 이유 또한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태그:#인도의 농촌 여성들, #소의 먹이, #신선한 우유, #순환 농법, #인도 농촌의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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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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