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종영한 KBS 1TV 대하사극 <징비록>. 최고 시청률 13.8%(닐슨코리아 전국기준, 이하 동일), 마지막 회 시청률 12.3%로 전작 <정도전>에 비하여 아쉬운 성적이긴 하다. 하지만 그저 시청률이나 화제성만으로 '<정도전>의 벽을 넘지 못했다'고 평하기엔, 이 작품이 갑갑한 오늘의 현실에 남긴 시사점이 만만치 않다.

드라마 '징비록'이 갖고 있었던 태생적 한계

 KBS 1TV <징비록> 스틸컷

KBS 1TV <징비록> 스틸컷 ⓒ KBS


이제 와 하는 말 같지만 애초에 <징비록>은 시청률이 높이 나올 만한 드라마라 보기 어려웠다. 아무리 지난해 영화 <명량>이 인기를 얻었다 하나, 이미 대하사극의 소재로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임진왜란이라는 소재를 다시 한 번 사용했다는 점에서 태생적 핸디캡을 지닌 드라마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드라마의 제목인 <징비록>은 '지난 일을 경계하여 후환을 삼간다'는 시경의 문구에서 따온 것으로, 류성룡(김상중 분)이 쓴 책의 이름이다. 이 책에는 임진왜란 당시 정치 현장에서 그 국난을 겪은 류성룡이 정권으로부터 소외된 이후 칩거하며 적어간 전란의 속살이 담겼다.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전란의 과정에서 겪은 경험을 풍부한 사료와 경험을 밑바탕으로 써내려간 <징비록>은, 말 그대로 '객관적' 서술에 방점이 찍힌다. 임진왜란에 대한 저술 중 <선조실록> 등의 실록이나 중국과 일본의 그 어떤 사료보다도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저술로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정권의 중심에 섰던 사람이 그 누구보다도 객관적으로 그 역사의 소용돌이를 기록했다는 것은, 자신이 몸담은 역사를 혼내고 경계했다는 의미다.

드라마에서도 마지막 회, 선조(김태우 분)와 독대한 류성룡은 '전쟁이 끝난 이 마당에도 당신은 한 치의 반성도 없이 구구절절 변명만 늘어놓는다'고 일갈한다. 어쩌면 그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정치적 구원의 기회마저 꾸짖음과 반성에의 독촉으로 마무리한 류성룡의 모습은 바로 그가 쓴 책 '징비록'의 입장이요, 드라마 <징비록>의 관점이다.

드라마 <징비록>이 바라본 임진왜란은 어떤 것이었을까? 임금을 비롯한 대신들은 자기 안위만 생각하고, 그런 지배층에 의해 나라는 스스로 위기 속으로 빠져든다.

심지어 전쟁 중에도 임금은 적이 눈앞에 오자 싸우는 대신 도망치기에 바빴고, 양반들은 한 명의 군사라도 더 도모하기 위해 공을 세운 노비를 면천시켜 주겠다는 자구책에 몸을 던져가며 반대한다. 잠시라도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기라도 하면 정권은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다시 움직이고, 임금마저 뜻을 세운 의병들을 불의의 반란을 경계하며 제거하는 등 협잡을 일삼는다.

이런 가운데서도 7년의 전란을 버텨낸 것은 스스로 일어난 강직한 의병들, 자신의 땅을 지키고자 떨쳐 일어난 양민과 노비들의 힘 덕분이다. 지배 집단이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적들과 소통하고자 할 때, 그들은 정권에 반하기도 주저하지 않으며 나라를 지켜냈다. 하지만 드라마는 도망치는 적군을 한 명도 살려 보내지 않겠다던 이순신(김석훈 분)이 전사하고,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고군분투하던 류성룡마저 전쟁 후 토사구팽 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들의 '결사항전'의 의지는, 끝내 꺾이고 마는 것이다. 

'과거' 다룬 '징비록', 철저히 '현실적이었던' 드라마

 KBS 1TV <징비록>의 한 장면

KBS 1TV <징비록>의 한 장면 ⓒ KBS


그렇게 드라마 <징비록>은 철저히 '현실적인' 내용을 그린다. 적을 코앞에 두고도 자신들만의 이해에 따라 춤을 추는 이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드라마는 결국 오늘을 경계하게 만든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왜와 명 사이에서 무능력한 모습을 보이다 철저히 동아시아의 세력 판도에 따라 그 운명이 갈렸던 당시 한반도의 모습은, 최근 미중일 세 나라의 이합집산 속에 외교적 입지가 애매해지는 지금 우리의 처지와도 공교롭게 닮아 있다.

드라마 <징비록> 속에서 강건한 류성룡이나 우직한 이순신보다 노회한 선조가 돋보였던 이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선조가 끝까지 왕권을 지켰던 대신, 정직하고 강직한 의병장과 같은 인물들은 결국 역사와 정권의 희생양이 된다. 숭앙하고픈 충신 대신, 현실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역사 속 비겁자를 내세워 현실을 경계하려는 것이다.

승리와 영광의 역사 대신 실패와 치욕과 비굴의 역사, 그럼에도 잡초처럼 피어나는 끈질긴 힘을 그려내려고 했던 드라마 <징비록>은 다수 시청자들의 환호를 받기에는 고집스런 작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지배층의 자기 이익만이 우선시되는 지금과 같은 시점에서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현실에의 경계가 두드러졌던 '수작'이라고 평가 받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징비록>의 의의 또한 그런 점에서 강조되어야 한다. 그저 얄미운 인간 선조를, 무능한 권신들을, 무기력한 조선의 외교만을 담아낸 것이 아님을, 이것이 바로 현실의 모습이 다름 아님을 <징비록>은 50부 내내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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