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간판 공격수 이근호(31)가 전북으로의 임대 영입을 완료했다. 기간은 올해 연말까지 6개월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서로가 웃을 수 있게 됐다. 리그 우승과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ACL)를 병행해야 하는 전북은 즉시 전력감인 이근호 같은 선수가 필요했다. 이근호는 카타르에서 경기 출전에 난항을 겪고 있기에 잃었던 경기 감각을 다시 끌어올릴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이근호는 K리그가 낯선 선수가 아니다. 오히려 반가운 선수이다. 2012년 울산이 ACL을 우승할 때, 대회 MVP를 차지하는 등 일취월장의 활약을 보여줬다. 리그에서도 울산 공격의 핵이었다. 일본, 카타르 소속 팀에도 있었지만, 특히 K리그 인천, 대구, 울산, 상주에서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해왔다.

이쯤 되면 이근호는 K리그 마당발이다. 자국 리그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이것을 발판으로 국가대표 공격수로도 성장하였다. K리그에서 오랜 선수생활을 통해 자신의 기량을 향상한 그에게 어울리는 단어는 대기만성이다. 인천에서 2군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현재 리그 1위이자 최강팀인 전북에 도착해있다. K리그의 역사에 기록될 만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이근호는 철저히 자국 리그 속에서 성장해온 선수이다. 지금의 이근호를 만든 K리그에서의 이근호는 어땠는지 충분히 알아볼 가치가 있다.

인천에선 2군 무명 공격수, 대구에서 스타로

이근호는 2005년 인천에서 선수생활의 둥지를 텄다. 인천에서 초중고 시절을 보낸 이근호는 선수 생활을 자신의 연고지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당시 라돈치치 등 여러 기존 선수들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사실상 인천 2군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이근호는 그야말로 힘든 무명의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이근호는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희망의 끈을 기적으로 바꾼 이근호는 2006년 인천의 2군 리그 우승을 도우며 MVP를 차지했다. 이를 눈여겨본 대구 FC는 이근호에게 이적 제안을 건넸다.

 ▲ 대구FC '태양의 아들' 이근호는 팬들이 선정한 역대 베스트11에 선정되었다.

▲ 대구FC '태양의 아들' 이근호는 팬들이 선정한 역대 베스트11에 선정되었다. ⓒ 대구FC


대구에서 날아오르기 시작한 이근호는 무섭게 K리그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대구에서 두 시즌 연속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며 2군 생활의 불명예를 씻었다. 첫 시즌인 2007년에 27경기 10골 3도움을 기록했고, 다음 시즌인 2008년에 32경기 13골 6도움을 기록했다.

컨디션과 경기감각 그리고 자신감마저 하늘을 찌르는 이근호에게 태극마크를 달 기회가 찾아왔다. 2007년 6월 29일 이라크전에서 데뷔한 이근호는 K리그 국가대표 공격수로서 활약을 펼쳐나갔다. 그러나 2010 남아공 월드컵 명단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며 잠시 주춤거리는 듯했다. 월드컵 예선에서 누구보다 활약했던 이근호이기에 충격과 아픔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울산에서 K리거 커리어의 정점을 찍다

 ▲ 아시아 축구연맹(AFC)에서 2012년 최고의 선수로 선정된 울산의 이근호

▲ 아시아 축구연맹(AFC)에서 2012년 최고의 선수로 선정된 울산의 이근호 ⓒ 울산현대


울산에서의 활약은 2010 남아공 월드컵 명단 탈락의 아픔을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리그에서 33경기 8골 6도움을 기록했으며, 김신욱과의 투톱은 당시 K리그 최고의 공격진으로 손꼽혔다.'빅 앤 스몰' 공격수 조합의 '스몰' 이근호는 ACL에서도 4골 6도움으로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MVP를 거머쥐었다.

K리그 선수와 아시아 선수로서 최고의 커리어를 달성한 이근호는 아쉽게도 병역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울산 팬들의 기대감이 고조돼 있는 상태에서 아쉽게도 이근호는 팀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상무에서 군인정신을 축구에 입히다

 ▲ 병역기간 K리그에서 활약한 상주 상무의 이근호

▲ 병역기간 K리그에서 활약한 상주 상무의 이근호 ⓒ 상주 상무


머리를 짧게 자르고 상주 상무의 유니폼을 입은 이근호는 더 믿음직해졌다. 군인정신이 확실히 베여 있는 듯 그라운드를 누비고 다녔다. 병역기간 동안 40경기 19골 4도움을 하며 상무의 부흥을 이끌었다. 2013년엔 K리그 챌린지 MVP, 득점왕, 베스트 11을 모두 이루어냈다.

비단 개인의 성장뿐만 아니라 팀의 성장도 끌어냈다. 상주 상무는 K리그 챌린지 3관왕을 차지했으며, 클래식 최초 승격 팀의 영광을 안았다. 팀의 보물이었던 이근호는 2014 브라질 월드컵에 국군을 대표하여 당당히 출전했다. 월드컵에서도 그의 경기감각은 살아있었다. 조별예선 러시아와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뽑아내며 팀의 고참이자 조커로서 맹활약했다.

이때 이근호의 골이 월드컵 출전 선수 중 연봉이 가장 낮다는 배경 탓에 감동적으로 느낀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 1골에는 K리그 2부리그에서 1부리그를 오가며 겪었던 이근호의 성장통이 담겨있다. 또한, 2010 월드컵을 나서지 못했던 아쉬움도 담겨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근호의 골 장면은 감동을 넘어선 한 편의 드라마였다.

이근호가 전북에서 이동국의 후계자가 되었으면

 ▲ 전북에서의 다시 K리그로 복귀한 된 이근호

▲ 전북에서의 다시 K리그로 복귀한 된 이근호 ⓒ 전북 현대


그런데 재밌게도 이근호(31)가 이적한 전북엔 K리그 전설로 기록될 선수가 한 명 있다. 현재 K리그에서만 399경기를 소화하고 175골 64도움을 한 선수, 바로 이동국(37)이다. 이젠 김병지(46) 다음으로 K리그의 전설이 될 준비를 하는 이동국도 후계자를 물색해야 한다. 이근호의 플레이스타일은 이동국과 다르다.

하지만 K리그 역사의 한줄기라는 면에서 충분히 자격이 있다. 인천 2군에서 시작하여 대구, 울산, 상무를 거치며 이제 전북에서 뛰는 이근호이다. K리그에서 이처럼 우여곡절의 이야기를 만들어온 선수 중 이근호만 한 선수도 없을 것이다.

이근호는 아직 축구선수로 사는 삶이 오래 남아있다. 현재 K리그 145경기 50골 24도움을 기록한 이근호는 축구 선수 전성기인 30대 초반의 나이이다. 이근호보다 6살 형인 이동국은 저물어가는 37살보다 떠오르는 37살이란 표현이 더욱더 어울리는 선수이다. 전북에서 이근호도 이동국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K리그의 전설로 남길 바란다. 또한, 한국축구의 소중한 보물이 되어 팬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간직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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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스포탈코리아>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K리그 이근호 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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