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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두 끼를 먹는데 한 끼는 식빵과 토마토, 혹은 과일로 해결했다.  토마토 샌드위치 비용은 5루피도 채 안되다. 우리 돈으로 따지면 100원 정도
 하루에 두 끼를 먹는데 한 끼는 식빵과 토마토, 혹은 과일로 해결했다. 토마토 샌드위치 비용은 5루피도 채 안되다. 우리 돈으로 따지면 100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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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침 산책을 다녀와 어제 있었던 일들을 노트북에 정리해 놓고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 앞에 펼쳐져 있는 히말라야 설산에 시선을 고정해 놓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원고를 쓰는 둥 마는 둥 빈둥거렸다. 그리고 오후 산책길을 나서기 위해 코사니 상가에서 가텀씨를 만났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손으로 왕왕 무는 시늉을 해가며 놀려댔다.

"헤이 송! 어제 당신 표범에 물려 간 줄 알았다고!"
"표범이 아니라 두려움이 나를 물었지요."
"그런데 모바일이 고장 났소? 통화가 되질 않던데..."

밤늦게까지 전화조차 불통인 내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자 월세방 주인 비놋씨가 가텀씨에게 여러 차례 전화했던 모양이다. 비놋씨의 전화를 받은 가텀씨 역시 내게 전화를 걸어 불통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나는 가텀씨에게 코사니에 있는 모바일 대리점에서 심 카드 충전을 했는데 돈만 꿀컥 삼켜 버리고 개통이 되지 않았음을 어렵게 설명했다. 그는 왜 자신에게 부탁하지 않았느냐며 델리에서 모바일 대리점을 한다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개통시켜 주기로 했다.

"24시간만 기다려 보세요. 개통될 테니까."

나는 그의 친절에 감사를 표시하며 숲 속에서 헤매게 된 사연을 설명했다. 그리고는 발을 들어 혓바닥이 나온 운동화 밑창을 보여줬다. 다람살라 맥간에서 거금 800루피를 주고 산 운동화였는데 2개월 버티지 못했다.

"그거 혹시 중국산 아니오?"
"잘 모르겠네요. 한국산은 분명 아닙니다."

가텀씨가 키득키득 웃어가며 인도에도 온갖 중국산 제품들이 판치고 있다고 말한다. 신발 수리점은 노점이나 다름없다. 수선비는 단돈 10루피. 가텀씨는 신발 수선공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신발 수선공뿐만 아니라 코사니 상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을 알고 있었다.

30년 전부터 거의 매년 코사니에서 1개월 이상 머물었다는 그였기에 그럴 만도 했다. 코사니 사람들은 그를 '미스터 가텀'이라고 부른다. 나는 라이방을 즐겨 쓰고 다니는 그를 장난삼아 '코사니 마피아'라 부르곤 했다.

빈부 격차 심한 코사니... 내가 유일한 한국인

가텀씨는 상가 사람들을 거의 다 알고 있다. 노점이나 다름없는 신발 수선집. 여기서 단돈 10루피로 혓바닥 나온 운동화를 수선했다.
 가텀씨는 상가 사람들을 거의 다 알고 있다. 노점이나 다름없는 신발 수선집. 여기서 단돈 10루피로 혓바닥 나온 운동화를 수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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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방을 쓰고 상가를 오락가락해 가며 만나는 사람마다 일일이 인사를 나누는 그를 나는  '코사니 마피아'라 부르곤 했다. 하지만 그는 자릿세를 뜯는 마피아가 아니라 이 점포 저 점포 골고루 물건을 팔아 주는 선량이다.
 라이방을 쓰고 상가를 오락가락해 가며 만나는 사람마다 일일이 인사를 나누는 그를 나는 '코사니 마피아'라 부르곤 했다. 하지만 그는 자릿세를 뜯는 마피아가 아니라 이 점포 저 점포 골고루 물건을 팔아 주는 선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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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영화 대부에서 나오는 마피아 두목처럼 상가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이 사람 저 사람 가릴 것 없이 만나는 사람마다 한두 마디씩 인사말을 주고받는다. 그는 당연히 자릿세를 요구하는 마피아가 아니다. 이 점포 저 점포 번갈아 가며 사소한 물건들을 구매해 준다. 그를 따라다닌 덕분에 나 또한 몇몇 상가 사람들을 만나면 눈인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오후 산책길 동무인 우리는 가끔 마피아 놀이를 하며 키득키득 거렸다.

"당신은 키가 작으니까. 영화 대부에서 마이클 콜로레오네 역을 맡은 알파치노!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도 알파치노를 좋아합니다. 그럼 당신은 뭐지?"
"나는 인상 더러운 총잡이 보디가드..."
"끼득 끼득! 당신 그렇게 보입니다. 그런데 영화배우 앤서니 홉킨스 알아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연기파 배웁니다."
"대부에 등장하는 배우는 아니지만, 그도 이곳 코사니 호텔에서 며칠을 묵었다오."

코사니에는 영화배우 안소니 홉킨스도 다녀갔다는 고급 호텔이 몇 군데 있다.
 코사니에는 영화배우 안소니 홉킨스도 다녀갔다는 고급 호텔이 몇 군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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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사니에는 놀이시설이고 뭐고 행락객들이 즐길만한 것이 없다. 함께 수다를 떨 외국인 배낭여행객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부잡스런 여행객에게는 무료하기 짝이 없는 관광지다. 다만 술 담배 육식 금지와 마음가짐 등 지켜야 할 것이 많은 간디 아쉬람과 마하트마 간디가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는 히말라야 설산, 난다데비가 눈앞에 펼쳐져 있을 뿐이다.

난다데비가 보이지 않으면 인도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문화 유적지 하나 없는 그냥 평범한 시골 마을에 불과하다. 하지만 조용한 곳에서 마음 수련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바라나시와는 달리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인도의 명상적인 그 무엇을 만날 수 있는 마을이다.

인도인들이 성산으로 여기는 난다데비를 만나러 오는 코사니의 관광객들 대부분은 호텔에서 묵는다. 코사니를 찾는 관광객들은 나처럼 일반 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자가용을 이용하는 델리의 부자들이 대부분이다. 더러 관광버스를 이용하는 단체 손님들도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이 호텔에 딸린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관광지가 그러하듯 코사니 역시 빈부 격차가 심한 인도의 축소판 같다. 하루 숙비 1000루피의 전망 좋은 호텔에서 한 끼에 500루피 짜리 식사를 하는 대도시 델리의 부자들이 들락거리고 있다. 그렇지만 한 달에 1000루피도 채 안 되는 허름한 쪽방에서 살면서 40루피짜리 식사를 하는 일용노동자들이 있다. 그리고 나처럼 하루에 150루피~200루피짜리 허름한 방문자 숙소에서 묵어가는 가난한 여행자들도 있다.

비수기의 코사니 상가 점포는 생필품 가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영세하다. 거기다가 게스트하우스의 방이 부족할 정도로 관광객들이 붐빈다는 6월에서부터 9월까지의 성수기가 아닌 4월이기에 거리에 배낭을 짊어진 외국인 관광객은 말할 것도 없고 인도 관광객들조차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상가에서 얼쩡거리는 외국인은 한국인인 내가 거의 유일했다.

채식식당에서 '스파게티'를 '짜파게티'로 주문하고 말았다

이곳 코사니 상가 도로 한복판에도 소들이 어슬렁거린다. 하지만 다른 지역과 달리 거리는 깨끗하다.
 이곳 코사니 상가 도로 한복판에도 소들이 어슬렁거린다. 하지만 다른 지역과 달리 거리는 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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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는 인도의 어느 지역에서든 볼 수 있듯이 소들이 도로 한가운데를 어슬렁거리고 개들은 아무 데서나 속 편하게 자빠져 있다. 하지만 길거리는 아주 깨끗하다. 거기다가 술을 파는 가게나 술집이 없어서 그런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곳 상가 사람들은 서로 형제나 사촌지간들이 많습니다."

가텀씨 말에 의하면 코사니 상가 점포들은 몇 집 걸러 몇 집이 형제나 사촌지간이라고 한다. 이곳 상인들이 점포를 대물림하고 있는 것은 오랜 카스트 제도의 영향 때문인 듯싶다. 카스트는 브라만(성직자), 크샤트리아(왕족 귀족 무사), 바이샤와 수드라(가장 낮은 계급인 불가촉천민으로 간디는 이들을 하르잔, '신의 아들'이라 불렀다) 4개 계급으로 나뉘는데 상인은 농부와 함께 세 번째 계급인 바이샤에 속한다.

코사니에서 가장 바쁜 곳은 모바일 대리점과 수선집이다. 재봉틀이 쉼 없이 돌아가고 있는 옷 수선집이 두 군데나 있다. 음식점 사정도 마찬가지다. 대여섯 군데의 음식점 중에서 요즘 같은 비수기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일당벌이 노동자들이 즐겨 찾는 싸구려 음식점이다.

내가 즐겨 찾는 노동자들의 식당. 이곳에서 자오민을 즐겨 먹는다.
 내가 즐겨 찾는 노동자들의 식당. 이곳에서 자오민을 즐겨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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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아주 작은 이 식당을 주로 이용하고 있다. 사실 식당이라기보다는 포장마차에 가깝다. 비좁은 주방에 서너 사람이 겨우 앉을 만큼 비좁다. 나는 이 식당에서 식용유에 국수를 달달 볶아 양파, 양배추, 고추 등을 넣고 버무린 40루피짜리 '자오민'을 즐겨 먹곤 한다. 자오민은 20루피로 반을 시켜 먹을 수 있고 포장해서 가져갈 수도 있다. 자오민을 볶을 때 주인장에게 미리 얘기하면 식용유를 덜 넣고 볶거나 짜고 매운 맛까지 조절해 준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이 작은 간이식당보다 싼 곳도 있다. 코사니에서 가장 힘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네팔 노동자들의 쪽방 합숙소 주변에 자리한 구멍가게다. 이 낡고 허름한 구멍가게에서 튀김을 팔고 있다. 식용유의 때가 덕지덕지 한 기름 솥에서 달걀에 묻힌 샌드위치 튀김과 고추나 채소 등의 튀김을 팔고 있다. 작은 접시로 담아 5루피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내가 40루피짜리 자오민 만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 식당에 비하면 고급 식당이라 할 수 있는 '요기 식당'을 가끔 찾아간다. 요기 식당의 한 끼 식사비는 우리나라 돈으로 3천 원 정도인 150루피에서 200루피 정도다. 거기서 요구르트 종류인 달콤하고 시원한 바나나 라씨를 즐겨 마시거나 어쩌다 인도의 전통요리를 시켜 먹는다.

채식식당인 '요기 식당'의 아이. 말이 많고 빠른 이 아이의 아버지 보다는 사진을 통해 말 없는 이 아이와 더 잘 통했다.
 채식식당인 '요기 식당'의 아이. 말이 많고 빠른 이 아이의 아버지 보다는 사진을 통해 말 없는 이 아이와 더 잘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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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기식당은 채식식당이다. 가텀씨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나를 고기를 먹지 않을 수행자라 여기고 제일 먼저 소개해 준 식당이다. 그 식당에는 나와 묵언으로 통하는 아이가 있다. 다섯 살 된 그 아이는 말이 빨라 간단한 영어조차 알아듣기 힘든 식당 주인의 아들이다. 말 많은 아이의 아버지와는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아이 와는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고도 통한다.

내가 물 마시고 싶은 표현하면 녀석은 쪼르르 달려가 물을 떠다 주고 사진기를 들이대면 예쁜 표정을 지어 준다. 나는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녀석의 맑은 눈빛에 푹 빠졌다. 녀석과 사진 놀이를 하기 위해 일부러 요기 식당을 찾아 라씨를 시켜 먹기도 한다. 녀석의 아빠 말에 따르면 내가 며칠 동안 보이지 않으면 녀석이 나를 찾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요기 식당은 그나마 싼 편이다. 오늘 점심 무렵에 여느 때처럼 토마토와 함께 식빵을 먹다가 갑자기 스파게티가 먹고 싶어 호텔 근처의 근사한 식당을 찾아갔다가 된통 당했다. 나는 가끔 발음이 비슷한 언어를 혼동한다. 오늘도 그 식당에서 그랬다. 평소 먹는 것에 큰 관심이 없는 나는 '스파게티'를 '짜파게티'로 주문했던 것이다.

식당 종업원은 그런 음식은 없다고 말했다. 나는 몇 차례에 걸쳐 '스파게티'를 '짜파게티'로 이름 붙여 설명했다. 당연히 '없다'라는 말이 되돌아 왔다. 스파게티가 먹고 싶어서 양식집을 찾아갔다가 짜장면을 내오라고 고집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신이 평소 먹는 열 끼 식사비를 단 한 끼로 해치웠군"

호텔 근처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프랑스 가족. 이 가족들과 똑같은 음식을 시켰다가 된통 당했다. 계산서에 열 끼 먹을 식비가 찍혀 있었다.
 호텔 근처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프랑스 가족. 이 가족들과 똑같은 음식을 시켰다가 된통 당했다. 계산서에 열 끼 먹을 식비가 찍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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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그냥 나올 수도 없고 하여 식탁 건너편에서 식사하고 있는 프랑스 가족의 음식에 눈독을 들였다. 두 아이가 할머니와 뭔가 맛있게 먹고 있었다. 식기에 담긴 음식도 맛있게 보였다. 아이들이 먹고 있는 음식의 가격이나 이름조차 모른 채 종업원에게 무조건 똑같은 음식을 내오라고 했다.

양고기가 들어간 음식이었는데 맛있게 배불리 잘 먹었다. 하지만 계산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주로 40루피짜리 음식을 먹다가 아주 가끔 150루피짜리 식사를 하는 게 고작이었던 내 앞에 370루피가 찍혀 있었다. 종업원에게 거스름돈 30루피를 팁으로 줄 무렵에서야 '짜파게티'가 아닌 '스파게티'를 기억해 냈다. 이 사실을 가텀씨에게 말하자 키득키득 웃어가며 놀려 댔다.

"당신이 평소 먹는 열 끼 식사비를 단 한 끼로 해치웠군."

인도에서 5개월여를 버티기 위해서는 최대한 저렴한 음식을 먹어야 했다. 인도에 와서 줄곧 두 끼 식사했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두 끼 식사를 해왔기에 큰 문제가 없었다. 오전 11시 무렵에 가루우유를 끊겨 과자 혹은 식빵과 과일로 한 끼를 때운다. 그 한 끼 식사를 돈으로 환산하면 20루피도 채 안 된다.

나의 일용할 양식들. 식빵과 토마토 바나나, 계란 과자 등 인도의 서민들이 즐겨 먹는 식품의 가격은 아주 저렴하다. 식빵 한 줄에 우리나라 돈으로 200원 정도하고 과일이나 과자는 한국보다 5배 정도 싸다.
 나의 일용할 양식들. 식빵과 토마토 바나나, 계란 과자 등 인도의 서민들이 즐겨 먹는 식품의 가격은 아주 저렴하다. 식빵 한 줄에 우리나라 돈으로 200원 정도하고 과일이나 과자는 한국보다 5배 정도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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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에는 식당에서 밀가루 음식인 자오민이나 쌀밥과 함께 나오는 인도음식을 사 먹는데 이 돈까지 합치면 하루 평균 100루피 정도, 우리나라 돈으로 2000원도 채 안 된다. 직접 음식을 요리해 먹는다면 이보다 더 저렴하게 생활할 수 있다. 인도에서 서민들이 먹는 음식재료는 비교적 저렴하기 때문이다.

달걀과 양파 토마토를 넣어 다섯 개 정도의 샌드위치를 해먹을 수 있는 식빵 한 봉지가 우리나라 돈으로 200원 정도인 10~15루피다. 과일이나 채소 역시 마찬가지로 싸다. 토마토 1kg에 15루피 정도 한다. 과자 또한 한국에서보다 5배 정도 싸다.

화장실 볼 일을 보고 물로 뒤처리 하는 인도에서 화장지는 사치품에 가깝다. 식빵 한 봉다리 보다 3배나 비싸다.
 화장실 볼 일을 보고 물로 뒤처리 하는 인도에서 화장지는 사치품에 가깝다. 식빵 한 봉다리 보다 3배나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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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휴지는 식빵 한 봉지 보다 세 배나 비싸다. 그것도 질이 형편없는 아주 작은 두루마리 휴지다. 인도 사람들은 대부분 볼일을 보고 휴지 대신 물로 씻기 때문에 휴지는 사치품이다. 인도에 온 지 한 달이 지날 무렵부터 나 역시 휴지 없이 볼일을 보는 데 익숙해졌다.

5개월여의 여행 기간 동안 250만 원의 지출을 예상했다. 최소한의 먹거리로 생활하다 보니 나보다 주머니 형편이 어려운 인도 현지인들과 식사를 함께할 때 주저 없이 돈을 내거나 저녁 식사에 초대받아 갈 때 선물을 준비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여행비에서 가장 많이 지출되는 것은 숙비와 교통비다. 숙비는 가장 싼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다니면 될 것이었고 교통비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여도 가능한 로컬 버스를 이용하기로 작정했다.

코사니에서의 일과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하루의 마지막 점을 찍는 곳, 부럼씨네 잡화점이다. 부럼씨는 락시미르 아쉬람의 부럼 선생과 이름이 똑같다. 나는 '잡화점 부럼씨'라 구별해서 불렀다. 부럼씨네 잡화점은 우리들의 아지트였다.

'잡화점 부럼씨'의 조카 결혼식에 초대받다

락시미 아쉬람의 부럼 선생과 이름이 똑같은 코사니 상가의 부럼씨. '부럼씨네 잡화점'은 우리들의 아지트다. 부럼 선생이 학교수업을 마칠 무렵이면 우리는 이곳에서 만나 짜이를 마셔가며 수다를 떤다.
 락시미 아쉬람의 부럼 선생과 이름이 똑같은 코사니 상가의 부럼씨. '부럼씨네 잡화점'은 우리들의 아지트다. 부럼 선생이 학교수업을 마칠 무렵이면 우리는 이곳에서 만나 짜이를 마셔가며 수다를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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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화점 부럼씨'의 첫인상은 험악했다. 인도영화 속에 나오는 악당 같은 캐릭터다. 앞니까지 빠져 있어 웃을 때는 더욱더 악당 같다. 하지만 그는 아주 순수한 사람이다. 내가 잡화점에 들어서면 편안한 의자를 내주면서 꼬박꼬박 존대를 했다.

그는 나보다 영어 실력이 더 형편없다. 우리는 서로 손짓 발짓으로 대화하는 일이 많다. 가텀씨나 부럼 선생이 없을 때는 서로 말 한마디 없이 멍하니 앉아 있을 때가 많다. 그러다가 눈빛이라도 마주치면 서로 빙그레 웃는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존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텀씨와 함께 우리는 거의 매일 같이 부럼 선생이 학교에서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잡화점에서 만났다. '잡화점 부럼씨가 타 주는 짜이와 5루피짜리 인도의 싸구려 담배, '비디'를 나눠 피우고 신문을 들춰 가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수다를 떤다. 대부분의 수다는 인도말로 한다. 단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인도 말이 길어질 때면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려 원숭이 시늉을 하며 끼어든다.

"당신들이 인도어로 말할 때 나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원숭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 배꼽을 잡고 웃으며 자기들끼리 얘기해서 미안하다는 손짓을 보낸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했던 이야기의 요점을 영어로 간단하게 설명해 주곤 한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인도말로 뭔가에 대해 진지하게 논쟁을 벌이고 있다.

내가 도중에 끼어들 수 없을 만치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을 때 잡화점 앞으로 두 대의 버스가 요란한 음악 소리와 함께 다가오고 있다. 청소년들이 버스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논쟁을 벌이던 이들도 잠시 멈추고 본다.

"아이들이 여행을 가는 모양입니다."
"아닙니다. 결혼식장에 가는 것입니다. 요즘 한창 결혼철입니다."

인도 시골에서는 농사가 시작되기 전인 4월부터 5월 초까지가 결혼철이라고 한다. 시골에서는 대부분 전통혼례를 올린다는데 며칠 후 '잡화점 부럼씨'의 조카가 결혼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조카 결혼식에 흔쾌히 나를 초대했다.


태그:#신발 수선, #코사니 마피아, #최소한의 먹거리, #요기식당, #잡화점 부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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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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