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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유니온과 패션노조 회원들이 지난 2015년 1월 7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패션업계에 종사하는 청년들의 열악한 근로환경을 설명한 뒤, '2014 청년착취대상'을 시상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패션노조는 공개댓글 투표를 통해 이상봉 디자이너를 수상자로 선정했다.
▲ 청년유니온·패션노조, '청년착취대상' 수상자 선정 청년유니온과 패션노조 회원들이 지난 2015년 1월 7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패션업계에 종사하는 청년들의 열악한 근로환경을 설명한 뒤, '2014 청년착취대상'을 시상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패션노조는 공개댓글 투표를 통해 이상봉 디자이너를 수상자로 선정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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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페이'는 돈(페이) 대신 좋아하는 일(열정)을 해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일부 고용주들의 태도를 비판하기 위해 등장한 신조어다. 유명 디자이너가 청년들에게 '열정페이'를 강요한 것이 논란이 되면서 이 단어가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이상봉 디자인실이 직원들에게 지급한 임금은 야근 수당을 포함해 견습은 10만 원, 인턴은 30만 원, 정직원은 110만 원에 그쳤다. 이와 같이 용돈도 안 되는 수당으로 밤낮없이 청년들의 노동력을 착취한 결과, 패션노조로부터 '2014 청년착취대상'을 받았다.

이처럼 노동한 만큼의 임금을 주지 않고, 모자라는 임금을 청년들의 열정으로 채우려는 고용주들이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다. 그들은 아직 일에 대한 경험이 없는 청년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임금의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고용주들의 입장과 청년들의 의견은 다르다.

취업포털사이트 <미디어통>에서 청년들에게 "청년인턴, 열정페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청년들은 "열정을 대가로 한 무임금 노동착취에 반대한다"는 답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나이대나 직종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자신이 일한 만큼 임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 이는 당연한 사실임에도 때때로 고용주들은 청년들을 저임금으로 착취한다. 심지어는 열정페이 자체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직종이 있다.

열정페이가 당연한 문화예술 분야?

기자가 20대 청년들에게 "열정페이가 허용될 것 같은 직종"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대부분의 청년들이 "문화, 예술, 디자인, 방송 관련직"이라고 답하였다. 실제로 이 분야에서는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사례는 끝도 없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이희재(가명)씨는 대학 동기들과 함께 리조트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를 맡았다. 최종사업계획서를 제출하기까지 학교에서 먼 거리에 있는 리조트를 직접 답사하고, 디자인 회의를 하는 과정이 무보수로 이루어졌다.

"좋은 경험이 되리라는 생각으로 버티면서, 최종사업계획서에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인건비를 먼저 제시했어요. 그랬는데도 인건비 내역을 본 담당자는 이렇게 많은 돈을 줄 수는 없다며, 대신 리조트 시즌권으로 받아가라고 하더라고요."

특히 문화예술분야는 다른 직종에 비해 업무 과정에서 선후배들한테 배우는 도제식 제도가 정착되어 있어서, 이 '도제식 교육'이 열정페이를 정당화하는 구실로 작용하기도 한다. 임금이 적고, 근무환경이 열악하더라도, 유명한 선생님에게 돈까지 받으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적정한 임금보다도 높은 가치를 지닌다는 논리다. 이런 논리는 예술분야에서 청년들이 일을 하는 근로자이면서도 동시에 '배우는 학생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돈을 받지 않더라도 충분히 얻는 게 많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냥 좀 그려주면 되는 거 아니야?

인디음악 전문잡지인 '칼방귀' 2012년 여름호에 올라온 김간지의 글에 수록된 열정페이 계산법 표
▲ 열정페이 계산법 인디음악 전문잡지인 '칼방귀' 2012년 여름호에 올라온 김간지의 글에 수록된 열정페이 계산법 표
ⓒ 계간 음악잡지 <칼방귀>, 김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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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원래 그림을 잘 그리니까 공짜로 초상화를 그려 줘라.
당신은 어차피 공연을 하고 싶어 안달 났으니까 공짜로 공연하라.
당신은 경력도 없으니까 경력도 쌓을 겸 내 밑에서 공짜로 엔지니어를 해라.

이런 식으로 보수를 정당하게 지불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고용주들뿐만이 아니다. 예술가들과 가까운 지인들도 예술가들의 노동에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박다미(가명)씨는 예술고를 나와 동양화과로 진학했다. 이러한 그녀의 배경을 아는 가까운 친척들은 본인의 초상화나 집에 걸어놓을 동양화 작품을 그려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부탁에 어쩔 수 없이 응해서 무보수로 그림을 그려준 경우도 있다. 박씨는 "자발적으로 나서서 무보수로 일하기를 희망한 일이 아니라면, 열정페이로 후려치기 당하는 게 기분이 좋지는 않다"고 언급했다.

"사람들은 물질적인 것들은 분명한 값어치가 있다고 인식하고, 그런 값어치들이 비슷하면 서로 교환도 가능하다고들 생각해요. 예술도 분명한 노동의 결과물로 작품이 나와요. 그런데 그 값어치를 가늠하기 어려우니까 열정페이로, 친분 덕 좀 보고 공짜로 퉁 치자는 생각을 사람들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문화예술 직종에서는 노동시간만큼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인식이 고용주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팽배하다. 이는 어쩌면 문화예술이 다른 일반적인 노동과는 '다르다'는 일종의 편견이 퍼져 있는 탓일지도 모른다. 즉, 노동으로서의 문화예술 행위가 잘 정의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냥 좀 그려주면 되는 거 아니냐는' 이러한 일반적인 인식은 젊은 예술가들의 경제적 환경을 더욱 더 궁지로 몰아넣는 역할을 한다.

너희는 하고 싶은 일을 하잖아

젊은 예술가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은 맞다. 어떤 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젊은 예술가들에게 박봉을 강요한다. 예술은 노동과 배움의 경계가 애매하며, 노동의 가치를 따지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생각들이 젊은 예술가들이 열정페이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도록 한다.

예술노동을 다른 노동과 별개로 취급하지 않는 데에서 젊은 예술가들의 열정페이 문제 해결이 시작될 수 있다. 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직종은 일을 하면서 노하우가 생긴다. 즉, 예술 분야에서는 다른 분야와는 다르게 돈 대신 경험을 얻을 수 있다는 궤변은 성립하지 않는다. 모든 노동은 경험이 되고, 보람이 된다. 또, 모든 노동에는 정당한 금전적인 대가가 주어져야만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윤다솜 시민기자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http://seoulyg.net) 대학생기자단입니다. 청정넷은 7월 13일부터 7월 19일까지 열리는 서울청년주간(http://youthweek.kr/)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태그:#젊은 예술가, #열정페이, #청년, #청년예술가, #예술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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