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식사  한 달에 두 번 독서모임을 위해 준비하는 식사

▲ 북클럽 식사 한 달에 두 번 독서모임을 위해 준비하는 식사 ⓒ 조은미


밥을 짓고, 찌개를 끓이고 채소를 다듬고 데치고 볶고… 음식을 만드는 일은 행복하다. 그 음식이 나를 위해 만드는 것이어도 좋지만,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만들 때는 더욱 좋다. 나도 요리에 재주는 없지만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우선 주부이니 가족들을 위해 끼니를 짓지도 하지만, 가끔 친구들을 불러서 음식을 해주기도 한다. 어떤 음식들은 별로 공을 들일 것도 없이 간단히 씻고 다듬거나 찌기만 해도 먹을 수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차려낼 것은 다양하다.

내가 만들어내는 음식이 조금 다양해지고 나아진 것은 집에서 정기적으로 북클럽 모임을 가지면서이다. 학교 선생인데 요리에 남다른 재주와 관심이 있는 친구를 보조하면서, 우리집에서는 한달에 두 번 정도 북클럽을 위해 푸짐한 밥상을 차려낸다. 그랬더니 재미있는 현상은 아이들이 책을 읽지는 못해도 그 밥상이 좋아서 모임에 꼬박꼬박 오곤 한다는 점이다.

"나는 아이들이 나중에 군대에 가거나, 어른이 되어서 지낼 때 말이야. 어느 순간 힘들 때가 있잖아. 그 때 문학의 숲에서 먹었던 내 요리를 떠올려주면 좋겠어."

정성들여 요리를 만들어 내는 내 친구의 말이다. 아이들에게 음식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심어주기 위해서, 그녀는 마음을 다한다.

우리 북클럽에 오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그것이다. 아무 목적도 없이, 뭔가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환대하는 따뜻한 열린 공간… 날마다 팍팍해지고 비정해지는 이 세상에서 이해관계니 혈연, 지연, 학연을 떠나서 만나는 모임이 드문 시대다. 그런데 우리는 다만 서로 삶을 나누고, 음식을 나누고 서로 격려해주기 위해 모인다.

심야식당 포스터  영화 <심야식당>포스터

▲ 심야식당 포스터 영화 <심야식당>포스터 ⓒ '심야식당' 영화제작사


<심야식당>의 주인공 마스터가 바로 내 친구 같은 사람이다.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문을 여는 작은 심야 식당. 하루가 끝나는 시간에 그 곳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다. 여사무원들, 조폭 불량배들, 술집 여주인, 별로 잘나 보이지 않는 남자와 여자들이 모여서 계란말이나 쏘세지 볶음 같은 간단한 요리를 먹고 가는 곳이다.

심야식당에서는 누구나 똑 같은 손님일 뿐이다. 조폭도 여사무원도 작은 의자 한 칸을 차지하고 앉아 마스터가 내주는 음식을 먹는다. 물론 식당이니 마스터는 돈을 받는다. 그러나 종종 마스터는 돈을 받지 않고 특별한 사람을 위해 특별한 요리를 내어준다. 한 사람을 위한 특별한 요리에는 그의 위로와 격려가 담겨 있다.

대도시 도쿄에 시골에서 흘러 들어온 가난한 소녀에게 시골 할머니의 추억이 담긴 마밥을 만들어 주거나, 대지진 이후 아내를 잃고 상처를 이기지 못하는 남자를 위해 카레를 보글보글 끓여주거나, 유부남과 사귀다가 애인을 잃은 여자에겐 나폴리탄이라는 간단한 면 볶음을 만들어 준다. 마스터가 만들어준 음식을 받아들고 먹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곧 눈물이라도 쏟아질 것 같다. 그만큼 음식이 주는 위로의 힘이 세다.

심야식당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의 삶에 참견하고 도와주기도 하고 말리기도 한다. 자기가 시킨 음식을 옆에 사람에게 먹어 보라고 접시를 밀어내기도 하고, 다같이 음식을 나누어 먹기도 한다.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너무나 이질적이고 다른 사람들이지만, 심야식당에서는 마스터가 해주는 음식을 공평하게 먹는 얌전한 아이들이 된다. 그 곳에서는 모두가 한 가족이 되어 염려해준다.

<심야식당>은 원작이 만화이고 대중적인 인기에 힘입어 드라마로도 만들어졌고, 이제 영화까지 나왔다. 만화이기 때문에 도쿄 같은 대도시에서 그런 따뜻한 사람들이 그려지는 걸까? 현실의 사람들은 결코 그렇게 나눌 줄도 모르고 개인주의적이고 마음의 벽을 닫는데, 만화이고 영화이니 그런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마스터같이 타인을 위해 따뜻한 시선을 가진 사람, 그가 운영하는 작은 심야식당…. 그런 공간에 있게 된다면 누구나 경계를 풀고 마음을 열지 않을까…

더욱 소외되고 개별화되는 현대의 대도시. 서울 지하철을 타보면 느껴지는 표정 없는 얼굴의 행인들.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죽어나가도 며칠이 지나야 발견되곤 하는 서울. 우리 모두가 우리들의 심야식당을 가져야 한다. 당신만의 심야식당을 만들고 하나씩 둘씩 초대해보라. 환대하고 나누는 공간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심야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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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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