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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 대체로 거짓

[기사 보강 : 8일 오후 2시 5분]

"대통령께서도 지난 6월 3일 메르스 대응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에서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의료기관을 투명하게 알려주어야 한다고 지시하셨고, 이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신고폭증에 대비한 신고체계 구축 및 격리병상 추가 확보 등 사전준비를 마치고 공개하게 되었습니다."

최경환 국무총리 직무대행이 지난 7일 밝힌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 발생·경유 병원 명단 공개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이 일찍이 병원 명단 공개를 지시했지만, 이를 이행할 준비가 덜 되어서 지시 이행이 다소 늦어졌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는 때 아닌 진실공방만 일으킨 꼴이 됐다. 그동안 관련 병원 명단 공개를 거부했던 정부의 태도를 감안하면 납득하기 힘든 설명이었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병원 명단 공개 요구를 '혼란만 더 키울 수 있다'라며 거부해왔다. 이에 따라 일부 지방자치단체장과 시민들은 자체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메르스 병원 명단'을 작성하기도 한 상황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4일 긴급기자회견에서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은 35번 환자의 서울시민 접촉 가능성을 공개하면서 정부의 미흡한 정보공유를 질타하기도 했다.

결국 정부가 병원 명단을 뒤늦게 공개하면서 박 대통령을 향해 쏟아질 비난을 차단하기 위해 '사전준비 시간이 필요했다'는 변명을 한 것이라는 의혹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병원 공개 지시했다'는 그후 나흘

박근혜 대통령이 5일 오후 메르스 환자 격리와 치료를 위한 국가지정 격리병상 중 하나인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5일 오후 메르스 환자 격리와 치료를 위한 국가지정 격리병상 중 하나인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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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박 대통령이 병원 명단 공개를 지시했다는 지난 3일 회의 결과를 살펴봐도 최 총리대행의 설명은 '대체로 거짓'이다(관련기사 : '정보공개' 강조한 청와대, '병원공개'는 거부).

당시 박 대통령이 '정보 공개'를 강조한 것은 사실이다. 박 대통령은 당시 회의에서 "(메르스 관련) 여러 가지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 전문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회의가 끝난 다음에 발표하고, 또 그런 TF를 통해 지금 문제점의 진원지, 발생 경로를 철저하게 처음부터 분석해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최원영 청와대 고용복지수석 역시 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모든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라며 "대통령께서도 이 점을 특히 강조하셨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 공개 대상 중에 병원 명단은 포함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취재기자들도 두 차례나 이 점을 짚고 나섰다. 그렇지만 현정택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병원을 공개하라, 말라가 포인트가 아닐 것"이라며 "현재 환자들을 격리수용한 병원들을 공개하면 앞으로 치료를 할 수가 없다"라고 답했다.

회의에 참석한 민간전문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김우주 대한감염협회 이사장은 "국민 입장에서 병원 공개 요구는 당연하다 생각하지만 결론적으로 득보다 실이 더 큰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라며 "메르스 환자를 안전하게 격리해 치료 중인 병원이 '오염 병원'으로 오인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메르스 환자들을 치료 중인 병원의 안전성을 강조하면서 병원 명단도 함께 공개하는 것이 국민들의 불안이나 혼란을 해소하는 데 낫지 않겠나"라고 기자들이 재차 질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최원영 수석은 "이미 추적해야 할 연결고리는 다 파악하고 있다"라며 "격리병상에서 잘 치료하고 있는 병원들에서는 환자에 대한 보호가 철저히 되고 있는 만큼 그런 점에서 추호도 불안해 할 필요 없다"라고 강조했다.

최경환 총리 직무대행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이는 박 대통령이 병원 명단까지 포함한 정보 공개를 지시했는데, 같은 회의에 참석한 이들은 대통령의 지시사항에 반하는 얘기를 했던 셈이 된다.

박 대통령의 정보 공개 지시가 메르스 환자 발생·경유 병원 전체의 명단을 의미한 것은 아니라는 '정황'도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5일 오후 메르스 환자 격리와 치료를 위한 국가지정 격리병상 중 하나인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병원 공개' 여부를 잠깐 거론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당시 "이제 메르스 관련 정보의 신속하고도 투명한 공개를 지시했기 때문"이라며 "의료 기관 간의 확진 환자 정보 공유, 또 대다수 감염자가 발생한 병원명 공개, 이런 조치가 지금 이뤄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같은 날 오전 메르스 사태의 진원지로 '평택성모병원'만 공개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와 관련, '대다수 감염자가 발생한 병원명 공개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라며 더 이상의 병원 명단 공개가 필요하다는 언급은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지난 7일 공개한 병원 명단 역시 '박 대통령이 지난 3일 병원 명단 공개를 지시했다'는 주장을 믿기 힘들게 한다. 최 총리대행의 설명에 따르면, 정부는 대통령의 지시 이후 병원 명단 공개를 착실하게 준비한 셈이다.

그러나 정부는 당일 발표에서 해당 병원의 이름과 지역마저 틀리게 발표했다. 결국, 정부의 설명과 달리, 병원 명단 공개가 급조됐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관련기사 : 정부, '메르스 병원' 명단 공개 최경환 "유언비어 현혹되지 말라").

청와대 "대통령 지시 이후 서로 인식 다듬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 같은 의혹에도 기존 설명을 반복하고 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8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박 대통령은 지난 3일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를 통해 메르스와 관련된 정보를 가급적 모두 공개해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한 바 있다"라며 "어제 발표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지시에도 나흘 뒤에나 병원 명단이 공개된 것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지시사항이 있으면 말씀 끝나자마자 발표할 상황은 아니다"라며 "발표에 따른 여러 가지 상황을 미리 예상해서 그에 대한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최원영 수석 등이 지난 3일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 후 브리핑에서 병원 명단 공개를 반대했던 것에 대해서는 "제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대통령의 말씀"이라며 "그 밑에서 어떤 얘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라고 사실상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다만, 민 대변인은 "(5일)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해서도 재차 (병원 명단 공개를)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한다"라며 "(3일 회의 이후 브리핑 내용은) 대통령 지시 이후 인식들을 서로 다듬고 하는 과정이었다고 이해해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또 "그렇다고 하더라도 병원 명단 공개가 결과적으로 늦었다는 평가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는 "무슨 사건이든지 돌이켜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라면서 "이 사태를 어떻게 빨리 해결하느냐, 거기에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한편,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8일 국회에서 열린 메르스 대응 관련 긴급현안질문에서 대통령의 지시 나흘 후에 병원을 공개한 것과 관련해 "무작정 병원을 공개하면, 접촉이 있던 분들이 상당히 당황해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달려갈 수 있다"라며 "그러면 오히려 메르스를 확신시킨다"라고 말했다.

문 장관은 "노출된 분들에게 보건소와 콜센터를 통해 연락을 주면 보건소 직원이 거주지에 직접 방문해 문진(한다는 것을 알리고), 문진에 이상이 있는 분들을 (수용하기 위해) 임시 격리병원을 마련해야 한다"라며 "격리병원과 콜센터 등 문진 시스템을 사전에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라고 말했다.

이에 이목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그것은 병원명을 공개하는 것과 상관없이 진행해야 하는 조치"라고 지적했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박근혜, #메르스, #최경환,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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