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시련은 한 번씩 찾아오기 마련이다. 아무리 잘 나가는 스타에게도 위기가 찾아오고, 야구 역시 마찬가지다. 한때 그라운드를 휘저으며 상대 배터리와 내야진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그의 존재감은 아직도 잊히지 않지만 언젠가부터 찾아온 페이스 하락에 울상을 지었고, 주전 자리도 빼앗기고 말았다.

​좋은 자원이라고 하더라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는 팀의 입장에선 타 팀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선수에겐 좋은 기회를 주고 팀이 필요한 선수를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결국 2013년 말, 중장거리 타자로 손색이 없는 내야 유망주와 유니폼을 바꿔입게 된다. 드라마와도 같은 그의 스토리, 두산 장민석의 이야기다.

​두산 장민석은 29일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리그 두산과 kt의 정규시즌 5차전에 8번 타순으로 선발 출장하며 멀티히트를 기록, 지난해 6월 14일 대구 삼성전 이후 350일 만에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특히 결승 득점과 쐐기 타점에 기여하며 보이지 않게 팀 승리에 공헌하는 모습은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빠른 발'에도 결코 순탄치 않았던 적응 과정

지난해 장민석은 2군 신세를 져야만 했다. 주전은 김현수, 정수빈, 민병헌 등 국가대표급 외야수 세 명이 버티고 있어 현실적으로 어렵고 백업에도 박건우가 자리를 지키고 있어 나갈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나마 출장하더라도 대수비나 대주자로 나갔을 뿐이고 시즌 후반에 접어든 이후엔 확연하게 출장 기회가 줄어들어 허무하게 한 해를 보냈다.

무엇보다도 장민석이 힘들었던 것은 팬들의 반발이다. 트레이드 당시 윤석민을 보내는 구단에 대해 크게 화를 낸 팬들로 인해 마음고생이 심했고, 그 해 활약에 비하면 두산이 손해를 보는 트레이드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2013시즌 윤석민은 두산에서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는 등 잠재력을 보여줬고, 장민석은 시즌 타율 2할4푼2리에 그치며 실망스러운 인상만 남겼다.

게다가 그 해 가을,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기이한 번트모션을 시도하다가 삼진을 당해 이후로 팬들로부터 '총검술'을 사용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선수 본인으로선 뭔가 한 점이라도 더 뽑아내려는 의지가 강했는데, 마음보다 몸이 앞서나간 탓인지 공을 맞추지도 못하고 타석에서 물러났다. 트레이드를 두고 논란의 중심에 섰던 장면이 바로 이 대목이었다.

주전 자리도 꿰차지 못한 장민석은 두산으로 이적하면서 이름을 '장기영'에서 '장민석'으로 개명, 새로운 야구인생을 꿈꿨다. 41개의 도루를 기록하던 2010년 그 때로 돌아가겠다는 강한 포부를 밝히며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개명 효과도 없었고 기존 외야수들의 활약이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팀으로선 기존 외야수들을 믿고 가는 게 당연한 선택이었고, 그게 냉정한 프로의 세계다.

일부 팬들은 장민석을 트레이드 카드로 지목하면서도 보여준 게 없다며 크게 실망하는 눈치였다. 올시즌 초반까지만 해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예전 그대로에 가까웠다. 정수빈의 군입대 시점이 조금씩 다가오면서 언젠가 기회를 부여받을 것으로 기대됐으나 현실적으로는 불투명해 보였다. 그랬던 그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벤치 클리어링'은 모든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홈으로 들어오는 장민석 지난 29일에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리그 두산과 kt의 5차전에서 7회초 장민석이 허경민의 안타 때 홈으로 들어오고 있다.

▲ 홈으로 들어오는 장민석 지난 29일에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리그 두산과 kt의 5차전에서 7회초 장민석이 허경민의 안타 때 홈으로 들어오고 있다. ⓒ 박중길


'고참'으로 자진퇴장도 마다하지 않은 희생...새로운 전환점 될까

지난 27일 마산 구장에서 열린 두산과 NC의 정규시즌 4차전에서 가볍게 시작된 오재원과 해커의 언쟁이 벤치클리어링으로 번지면서 야구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특히 3루 덕아웃 쪽에서 의도적으로 해커를 겨냥해 던진 공이 중계화면에 포착되면서 많은 야구팬들은 공을 던진 선수가 누군지 사실규명을 규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떤 선수가 던졌는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덕아웃에서 가장 주도적으로 나선 한 사람, 장민석이었다. 박건우와 민병헌 두 명의 선수가 손을 들었음에도 주저하지 않고 손을 들었고 심판진은 장민석에게 퇴장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장민석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이후 민병헌이 구단을 통해 공을 던졌던 게 본인이라고 사실을 시인하면서 일은 마무리됐다.

그렇다면 왜 장민석은 공을 던지지 않았음에도 퇴장 조치를 받을 각오로 손을 들었을까. 이유는 딱 하나다. 어렵게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고 몇 경기 출장하지 않아 사실상 존재감이 적은 선수라는 점을 본인이 가장 미안하게 생각한 듯하다. 고참답게 후배에게 모범을 보여야한다는 마음이 들어 후배를 대신해 희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팬들은 장민석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고 응원의 목소리도 커졌다. 그저 미운오리에 불과했던 장민석이 벤치클리어링을 계기로 하나의 전환점을 마련한 셈이다. 보여주지 못한 게 많아 한이 쌓였을까. 징계로 나올 수 없는 민병헌을 대신해 29일 kt전에 선발 출장,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쳐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단 한 경기였지만 그가 준 임팩트는 이전보다 컸다.

이제는 뭔가 보여줘야 할 때...살아나라 '빠른 발'

민병헌은 30일 경기까지 나올 수 없어 이날 경기에도 장민석이 선발로 출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31일 민병헌의 복귀 이후엔 장민석의 선발라인업 포함 여부는 불투명하기 때문에 기회를 잡았을 때 확실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줘야 한다. 특히 특유의 빠른 발로 허슬두 재건의 완성형에 신선함을 가미시킬 필요가 있다.

장민석은 넥센 시절 빠른 발을 이용해 상대 투수를 흔들기로 유명했다. 두산에서 윤석민을 내주면서까지 영입을 한 것도 허슬두라는 팀 컬러에 맞는 선수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팬들 역시 기대감을 가득 품었는데 두산으로 이적한 이후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도루 개수는 총 5개에 불과하다.

조금은 특이한 경험을 겪으며 야구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마련한 장민석이 두산의 새로운 활력소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그를 오랫동안 기다렸던 팬들도, 고개를 돌렸던 팬들도 조금씩 그를 향해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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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위 글은 유준상의 뚝심마니Baseball(blog.naver.com/dbwnstkd16 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프로야구 두산베어스 KBO리그 장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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