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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함께합니다. 그가 품는 희망은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그동안 너무나 아파서 가슴이 막막했던 문제들을 해결해 오며, 작기만 했던 가능성은 어느덧 기대 이상으로 실현됐습니다. 그리고 삶의 희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 과정들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중심에는 '사람은 상처 받고 고통만 당하기엔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약 24년(1991~2014년) 동안 조카와 함께 울고, 웃던 나날들의 경험이, 어떻게 풍성한 열매로 자리하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기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기자 말

덕이는 마라톤을 좋아합니다.
 덕이는 마라톤을 좋아합니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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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 '들장미 소녀캔디' 중에서

아니나 다를까, 지난 마라톤 후에 아팠던 덕이를 본 아이들은 '이제 마라톤은 안 하겠다'고 했다. 부모님이 하지 말라고 했다면서... 기운이 빠졌다. 그냥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라면 더욱 더 함께 해줄 텐데...' 한편으로 아이들 부모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머리로, 이성으로는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왠지 모를 섭섭함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또 이런 상황을 덕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상처를 덜 받을까 고민했다.

어쨌든 덕이는 마라톤을 계속 하기로 해 아침마다 덕이와 조깅을 하였다. 예민한 편인 덕이는 아침에 "덕아∼"라고 부르면 곧바로 일어난다. 한 번도 못 일어나거나 일어나기 싫다고 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고모가 아니라 엄마였어도 싫다고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 때면 덕이가 안쓰럽다.

"덕아 아침 이 시간에 일어나는 것 괸찮니?"
(고개를 끄덕인다)
"사랑하는 덕아∼ 만약 일어나기 싫으면 안 일어나도 괜찮아, 혹시 더 자고 싶니?"
"아니."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덕이를 안아주면서)"덕아∼언제든지 덕이가 더 자고 싶고 일어나기 싫으면 싫다고 해도 된단다. 알았지?"
"응."

추리닝으로 갈아입고 조깅을 했다. 오늘은 조깅 후에 바로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덕이와 이야기를 했다.

"덕아∼나는 너와 함께 이렇게 단 둘이만 운동해도 좋아. 덕이도 고모랑 단둘이 운동해도 좋니?"
"응."
"니가 친구들이나 형들과 함께 마라톤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고모가 출발할 때 집집 마다 들러서 아이들을 태우고 끝나면 일일이 다 집에 내려주고 또 끝나고 함께 점심먹고, 마라톤 참가비도 모두 고모가 내잖아? 고모는 그게 좀 힘들어. 고모가 힘들지 않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을까?"
"몰라."

"만약 다른 아이들의 마라톤 참가비만이라도 내지 않으면 덕이가 좋아하는 종이접기 색종이와 아이스크림을 10개 사줄 수 있는데... 요즘엔 하나 밖에 못 사주잖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괜찮아."
"만약에 덕이와 고모 둘이서만 마라톤대회에 참가하면 그 참가비가 남으니까, 그것으로 할머니랑 영화도 보러 갈 수 있는데..."
"할머니랑?"

"응∼ 고모는 덕이가 친구들과 형들이랑 함께 마라톤하는 것을 좋아해서 함께 다니긴 했지만, 사실 고모는 힘들었거든... 이제는 우리 둘이만 마라톤 했으면 좋겠어."
(말이 없다)
"고모 생각이 그렇다는 거야, 할머니와 영화보러 가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볼래?"
(침묵∼∼)

덕이는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덕이가 다른 아이들로부터 거절당했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보았다. 그래서 덕이가 평소에 존경하는 태권도 관장님의 도움을 받아보기로 했다. 관장님께 '마라톤에 고모와 단둘이 참가하면 좋은 점과 할머니와 영화를 보면 좋은 점' 등에 대해 덕이에게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가끔 덕이를 설득하고 싶으나 잘 되지 않을 때는 덕이가 좋아하는 관장님께 도움을 청하곤 한다. 다행히 그렇게 해주셨다. 성공이었다. 매번...

간혹 다른 아이들도 모든 것을 다 해주는 부모 말은 안 듣고 반항하며, 옆집 아줌마나 학원 선생님 말을 더 잘 들을 때도 있다. 거기서 나는 '원죄'에 대하여 깨닫는다. 아담과 하와가 자신들을 위해서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해주셨음에도 하느님 말씀을 듣지 않고 사탄의 말에 넘어갔던... 이렇게라도 이해해야 속이 편하다.

그날 퇴근하면서 나는 집 근처에 있는 영화관에 들러 몇 개의 영화 안내지를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덕이에게 하나 하나 보여주면서 내용을 설명해주고 어떤 영화를 보면 좋겠는지 물어본 후 일잔 덕이가 선택한 영화를 보기로 했다. 덕이 기분이 좋아 보였다.

덕이가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해, 전에도 몇 번 할머니와 함께 본 적은 있었으나 그때는 지금처럼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없어 조조를 볼 수 없을 때는 영화요금을 그대로 다 내야 했다. 이를 안 할머니께서는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우리 둘만 다녀오라고 했었다. 

"덕아, 할머니와 함께 영화보는 것이 좋아?"
"응"(생기가 있어 보인다.)
"나도 좋은데... 그리고 덕아, 고모도 태권도 배우고 싶은데, 태권도 할까?"
"응."
"덕이랑 같은 시간에 할까? 아니면 덕이랑 나랑 따로 할까?"
"고모랑."
"나랑 함께 하는 것이 좋으니?"
"응."
"만약에 내가 덕이와 함께 할 때 덕이가 못하면 고모가 잘 하라고 야단칠 텐데... 그래도 괜찮겠니?"
"응."

아무래도 덕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치이고 잘 따라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 내 마음이 아플 것 같다. 그러나 어디 그런 일이 한두 번인가 하루에도 몇 번씩... 생활인 것을.


태그:#인정과 거절, #사랑과 존중, #운동과 마라톤, #나와 너,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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