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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함께합니다. 그가 품는 희망은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그동안 너무나 아파서 가슴이 막막했던 문제들을 해결해 오며, 작기만 했던 가능성은 어느덧 기대 이상으로 실현됐습니다. 그리고 삶의 희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 과정들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중심에는 '사람은 상처 받고 고통만 당하기엔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약 24년(1991~2014년) 동안 조카와 함께 울고, 웃던 나날들의 경험이, 어떻게 풍성한 열매로 자리하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기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기자 말

영화 <말아톤>의 한 장면.
 영화 <말아톤>의 한 장면.
ⓒ 시네라인㈜인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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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태어나면서 자기 먹을 것을 갖고 태어난다'는 모친의 자녀 교육관으로 우리 형제들의 직업은 다양하다. 각자가 알아서 스스로 길을 찾고 만들어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강인한 만큼 아픔도 많았다. 물론 그 과정을 즐겁게 여긴 적도 있지만... 그래서일까, 가뜩이나 아픈 덕이가 성인이 되어 사회인으로 살아갈 때 덜 힘들고 편안하길 바라다 보니 시기에 맞는 교육과 지원을 최대한 해주고 싶었다.

보통 봄과 가을의 일요일에 열리는 각종 마라톤 대회에 덕이와 함께 참여했다. 몇 번은 우리 둘이서 참여했지만 덕이가 재미를 못 느꼈다. 그래서 태권도를 같이 하는 또래들이나 형들 중에 마라톤 해보고 싶은 아이들 5명 정도 함께 다녔다. 대회에 따라서 함께하는 아이들의 1인당 참가비, 1만 원에서 3만원 정도의 비용을 모두 내가 부담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이 안 한다고 하기 때문이었다.

덕이는 사람들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또래들이나 형들과 대화를 잘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 보니 아이들도 덕이에 대한 동정심이나 약간의 의무감이 함께 했던 것 같다. 그래도 덕이가 즐거워하니까, 그나마 함께 참여해 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아픈 자녀를 둔 부모의 심정이 나와 비슷할 것이다. 누구라도 함께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상황.

최근에도 마라톤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내 차에 7, 8명이 타고 아침 6시에 출발했다. 아침식사를 대용할 수 있는 김밥이나 샌드위치, 음료를 챙겼다. 그리고 마라톤 끝난 후에 점심을 함께 하고 각자 집앞에 내려주었다. 마라톤을 계기로 모여 다른 아이들이 장난도 치고 학교 생활이나 취미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덕이는 좋아했다. 나도 그 아이들을 통해 학교생활이나 태권도 정보를 알 수 있었다.

대회장에 도착해 국민체조로 몸을 푼 다음 마라톤을 시작했다. 전에도 5km 정도는 덕이나 아이들 모두 완주했다. 내가 문제지... 어젯밤에 이웃에 사는 친구가 찾아와서 거의 밤새도록 이야기하느라 잠을 못잤다. 새벽에 친구를 보내고 참치 샌드위치까지 만들었다. 샌드위치는 덕이를 비롯한 아이들이 좋아하는 편이다. 나도 좋아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오늘 뛰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 대회에서 주는 간식(바나나와 물 정도)만 받고, 아이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중학생 형이 먼저 완주하고 그 다음 덕이가 들어왔다. 수고했다고 안아주었다. 5km를 완주해도 덕이는 땀이 많이 나지 않았다. 한 여름에도 땀을 거의 흘리지 않을 정도여서 마라톤이 덕이에게 좋은 운동이라는 전문가의 말도 들었었다.

아이들이 모두 완주하고 그 자리에 앉아서 쉬면서 물을 마시고 간식을 먹었다. 쑥쑥 성장하는 아이들인 만큼 먹거리를 잘 챙겨 주어야 한다. 지금 간식을 먹어도 양에 차지 않는다. 집으로 오는 중간에도 식당에 들러 이른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마치고 다시 아이들을 태우고 집으로 오는 중에 뒤에서 한 아이가 나에게 "덕이가 이상해요"라고 했다. 백미러로 보았더니 덕이가 차 안에서 경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안전하게 주차하고 경기를 일으키는 덕이를 내가 안았다. 다행히 오래가지 않고 멈추었다. 그제서야 다른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함께 마라톤을 다니면서 덕이가 경기를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이들도 놀랄 만하다. 덕이가 진정되고 좀 쉰 후에 아이들에게 물었다.

나: "놀랬니? 덕이가 아프단다."
아이들: "덕이가 많이 아파요(되묻는 아이들에게서 덕이에 대한 걱정이 느껴졌다)?"
나: "응 덕이가 아직 많이 아파. 혹시 너희들 중에 이렇게 아파본 적 있니?"
아이들: "아뇨."
나: "다행이다. 너희들이 아프면 너희들 부모님들의 마음이 많이 아프실 거야. 그러니까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해서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 "네."

이제 아이들을 하나 둘 집앞에 내려주었다. 아이들이 자신의 부모에게 오늘 덕이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수도, 안 할수도 있다. 그 점보다는 덕이가 집에 들어가 할머니에게 말씀드리면 어떻게 하나 더 걱정됐다. 몸 약한 덕이를 아침일찍 깨워서 데리고 다닌다고 걱정하셨는데... 다른 형제들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덕이의 입단속을 해야 했다.

나: "덕아, 오늘 힘들었니?"
덕: "아니."
나: "아까 아플 때 고생했어, 고모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
덕: "안 아파."
나: "지금은 안 아프다는 거니?"
덕: "고모도 안 아파!!"
나: "아∼고모 아프지 말라고?"
덕: "응."
나: "응, 알겠어. 덕아, 덕이가 아프면 할머니나 고모는 마음이 너무너무 아프거든... 집에 가서 할머니께 덕이가 아팠던 것을 말씀드리면 할머니도 아프실 텐데... 덕아, 할머니께 말씀드리지 않으면 좋겠는데, 우리 할머니께 말씀드리지 말까?"
덕: "응."

덕이와 나만의 비밀. 이런 일들이 종종 있어 왔으나 덕이는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 다행히 잠들 때까지 덕이는 할머니께 말씀드리지 않았다.

이제 나만의 시간이다. 초승달이 떠있다. 생각하기에 좋은 분위기다. 평소에 괜찮았던 덕이가 왜 오늘은 아팠을까, 어제 잠을 푹 못 잤나? 아니면 내가 모르는 다른 신경 쓰이는 일이 있나? 점심 먹고 곧바로 차를 타서 그랬을까? 내가 마라톤대회에서 함께 뛰지 않는 경우가 가끔 있었으니까 그것 때문은 아니었을 것같은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러나 오늘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앞으로 마라톤을 그만두지는 않을 것이다. 마라톤을 하는 덕이를 보면 이런 느낌이 온다, 사람들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를 달리면서 풀고 있다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대신 오늘 함께 했던 아이들이 계속 함께 할지가 의문이다. 많이 놀란 것 같았는데...


태그:#운동과 마라톤, #혼자와 함께, #친구와 형, #갈등과 굳건함, #간절함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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