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검은손> 포스터

영화 <검은손> 포스터 ⓒ 골든타이드픽처스,(주)스톰픽쳐스코리아

영화 <검은손>은 누군가 일으킨 사건 때문에 손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한 유경(한고은 분)과 그의 연인이자 그녀의 손 접합 수술을 집도한 의사 정우(김성수 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을 담았다.

수술 후에 유경은 "이게 왠지 내 손이 아닌 듯한 느낌이야"라고 의문을 품고, 예전과 다른 행동을 하는 자신을 보며 의심은 점차 "내 안에 다른 누군가 있는 것 같아"라는 두려움으로 바뀐다. 영화는 이식한 손이 그녀의 손이 맞는가를 물으면서 진실에 한 걸음씩 다가간다.

'셀룰러 메모리'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셀룰러 메모리는 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에게 기증자의 성격, 습관, 기억 등이 전이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마치 세포 속에 존재가 각인된 듯한 이런 현상은 의학계에서 여러 수술 사례를 통해 보고되었다고 한다. <검은손>은 셀룰러 메모리를 이야기하는 영화다.

하지만 <검은손>은 셀룰러 메모리를 소재로 삼았던, 눈을 이식받은 <디 아이>(2002)나 팔을 얻은 <분리 인간>(1991)과 다른 길을 걷는다. 타인의 신체를 받았음을 밝히고, 기증자의 비밀을 파헤치는 구조를 띠지 않는다. 수술한 손이 자신의 몸인지, 타인의 것이었는지 혼란스러운 <검은손>의 불확실함이 주는 공포는 <악마의 손>(1981년)과 닮은 구석이 많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악마의 손>은 사고로 팔을 절단당한 사람이 일련의 사고를 목격하며 혼란에 빠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위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 잃어버린 자신의 손이 벌인 결과인지, (또 다른) 자신이 일으킨 행위인지 오가는 전개는 기괴한 재미를 주었다.

"특화된 소재로 인간의 욕망 이야기한다"는 감독의 의도는 어디에

 영화 <검은손>의 한 장면

영화 <검은손>의 한 장면 ⓒ 골든타이드픽처스,(주)스톰픽쳐스코리아


어떤 영화의 설정을 가져왔을 땐 고유성을 유지하거나, 새로움을 첨가할 수 있어야만 오롯한 존재로 남을 수 있다. <프랑켄슈타인>(1931)이 헝겊처럼 붙여진 육체에 영혼을 불어넣은 존재를 통하여 정체성을 묻고 과학의 만용을 경고했다면, <분리 인간>은 '프랑켄슈타인'을 변형한 셀룰러 메모리를 다루면서 인간이 가진 악은 어디에 존재하는가를 질문했다. <디 아이>는 '귀신을 보는 눈'이란 무시무시한 설정을 가미했다. <악마의 손>의 장점은 분열적 자아가 생성하는 독특함이었다.

<검은손> 속 자기 손을 못 알아본다는 설정상의 무리수는 영화적 재미를 위해 넘어갈 수 있다. 특정 영화를 참고로 삼은 것도 많은 영화가 그렇듯 장르 범위 내에서 가능하다. 문제는 이식 수술의 결과가 신통치 않다는 사실이다. <검은손>은 참고 영화의 특징을 거세하고, 단순히 몇 가지 발상을 가져다가 마구 절단하고 봉합시켰다. 절단된 신체를 과시하며 분출하는 피는 어떤 공포감도 주지 못한다.

<검은손>의 연출을 맡은 박재식 감독은 "현대 의학에서 미래의 희망이라고 말하는 유전자 변형을 통한 장기이식이라는 특화된 소재를 이야기하며, 인간의 뒤틀린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화에는 분명 황우석 사건을 간접적으로 언급하는 듯한 대목도 존재한다. 하지만 감독의 의도는 전혀 와 닿지 않는다. 그저 <분리 인간>, <디 아이>,<악마의 손>을 엉성하게 이식한 느낌만 화면에 맴돌 뿐이다.

근래 한국 호러 영화의 완성도는 처참하기 짝이 없다. 이것은 많은 자본이 투입된 메이저 영화와 작은 규모로 만들어진 저예산 영화에 모두 해당된다. <검은손>은 플롯 대부분을 무차별적으로 가져왔던 <닥터>나 너무 조악해서 화면을 쳐다보기도 민망했던 <수목장>에 비해 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하지만 재미는 공포가 빚은 두려움이 아니라, 국어책을 읽는 듯한 대사와 경직된 안면 근육으로 일관하는 몇몇 출연진의 연기에서 비롯된다. 2015년 첫 한국 공포 영화가 코미디 영화로 전락한 안타까운 현실을 접하며 여전히 한국 공포 영화가 암흑 상태라는 것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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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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