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장>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작품 <화장>

▲ 영화 <화장>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작품 <화장> ⓒ 리틀픽쳐스


영화 <화장>은 지리멸렬한 중년의 똑같은 일상 속에서 지쳐가는 한 남자의 이성과 본능 간의 갈등을 지독히도 차가운 시선의 판타지로 그려낸다.

흔히 간병을 받는 이는 당연히 긴 하루하루를 고통의 시간으로 흘려보내며 힘겨워하지만, 같이 고통을 나누며 정성스레 간병을 하는 이는 시간이 지나면 모든 행위가 일상의 한 부분으로 서서히 변해가게 된다.

재발한 암으로 투병 중인 아내를 위해 지극정성으로 직장과 병원만을 오가는 오상무(안성기)도 마찬가지다. 항암 치료로 지친 아내(김호정)가 고통에 몸부림치고 시도 때도 없이 먹은 것을 토해내도 남편은 동요하지 않고 눈앞에 어질어진 혼란들을 능숙한 손놀림으로 순식간에 정리한다.

가족과는 고통도 나눠야 한다는 원론이 존재하지만, 이 원론이 그저 하나의 텍스트로만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의 이기심과는 사뭇 다른 '적응'의 본능이 우리와 더 가깝기 때문이다.

<화장>은 현실이기에 더 불편한 본능의 이면을 오상무를 통해 보여주지만, 이 불편함이 자연스럽게 와 닿는다. 남자의 입장에서 지나가는 아름다운 여성에게 시선을 빼앗기는 것은 그들의 속물근성보다는 본능의 욕구에 더 가깝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데, 오상무의 처지도 이와 다를 것 없이 한쪽에서 피를 토하는 아내를 병원에 남겨두고 다른 한쪽에서는 상큼한 여직원에게 눈과 마음을 빼앗겨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 혼란이 육체적으로 움직였다면 <화장>이 그저 그런 영화의 일관적인 패턴과 다를 바 없겠지만, 상업성과 작가주의 사이에서 필름을 연결해왔던 임권택 감독은 정신적 불륜이라는 난해함을 관객에게 내던지면서도 능숙하게 그들을 이해시킨다. 바로 판타지를 이용해서.

마지막 여행에서 아내와의 잠자리 중에도 여직원인 추은주(김규리)를 생각하며 숨을 헐떡이고 있는 오상무는 우리에게 어떠한 도덕으로 비칠 것인가. 대부분 동일한 의견이 지배적이겠지만 그가 하는 모든 행위는 우리들 안에 내재하여 있는 판타지이며 그것을 끄집어내지만 않고 있을 뿐이다.

임권택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우리 한국적 정서를 심어내려고 애써왔다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에 개의치 않고 그동안의 패턴에서 훌쩍 빠져나오고 싶었다. 우리가 드러내며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들, 성적 욕구나 갈망하는 여러 가지 부끄러운 것들을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것을 주인공을 이용해 명료하게 표현할 방법이 없는지에 대한 고민도 컸다."

현실과 영광에 안주하지 않는 노장의 투혼과 능숙함, 그리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을 깨버리며 도전한 102번째 영화 <화장>에 우리는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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