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001시즌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양강은 단연 삼성과 LG였다. 삼성은 '테크노가드' 주희정(38·180cm)과 '악바리' 강혁(39·187cm)이 이끄는 가드진과 '람보 슈터' 문경은(44․190cm)이 절정의 기량을 보여주는 가운데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이규섭(38·198cm)까지 선발하며 물샐틈없는 국내 선수층을 구축했다.

거기에 해당 시즌 최우수 외국인선수 아티머스 맥클래리(42·194cm)와 준수한 센터 무스타파 호프(43·201cm)가 버티는 골밑파워는 철옹성이었다. 각 포지션별로 탄탄하기 이를데 없는 막강한 전력이 완성된 시즌이었다.

LG도 만만치 않았다. 삼성처럼 각 포지션별로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무대 명장출신 김태환 감독은 외곽슛 위주의 강력한 공격농구를 들고 나와 장점을 특화시킨 자신만의 스타일을 LG에 입혔다.

김 감독은 '캥거루 슈터' 조성원(44·180cm)과 '육각수' 조우현(39·190cm)의 '국가대표급 쌍포'에 이정래(38·183cm) 등 뛰어난 슈터들을 속속 영입하며 외곽위주의 막강한 화력 농구를 펼쳤다. 포지션 불문 언제 어디서든 외곽슛이 터질 수 있는 라인업이었다.

여기에는 내외곽을 불문하고 정교한 슈팅력이 일품이었던 백인용병 에릭 이버츠(40·198㎝)가 화룡점정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버츠는 흑인 용병들처럼 탄력 넘치는 플레이는 펼치지 못했지만 기본기에 착실한 기복없는 플레이로 LG 공격 농구를 이끌었다. 외국인 선수로서는 드물게 3점슛 타이틀까지 차지한 적이 있을 정도였던 만큼 당시 LG 외곽 농구와 찰떡궁합이었다. 또 다른 외국인선수 알렉스 모블리(39·199㎝)와 배길태, 이홍수 등은 궂은일을 통해 팀 밸런스를 맞춰주는 역할을 했다.

사실 LG는 슈터 일색의 선수구성과 평균 200㎝ 넘지 않는 중장신 급의 용병구성으로 시즌 개막 전 우려와 기대를 함께 자아냈던 팀이다. 새로 바뀐 색깔이 장점이 되면 무서운 것이고 도리어 악재로 작용하면 무너질 수도 있는 라인업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조성원의 빠른 돌파와 외곽 슛, 올 라운드 플레이어로 변신한 조우현의 높은 팀 공헌도, 전천후 득점기계 이버츠의 기복 없는 플레이 거기에 노장과 신예가 잘 조화된 기타멤버들의 분전은 자신들의 팀컬러에서 가장 잘 나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2000년 12월 13일 삼성 vs LG

2000~2001시즌 최고의 경기였다. 경기 초반 LG가 큰 점수 차로 끌려 다니며 주특기인 공격농구를 펼치지 못할 때까지만 해도 삼성의 낙승이 예상됐으나 LG는 특유의 집단 수비를 바탕으로 조직적인 반격을 펼쳤다. 결국 승부는 연장접전 끝에 LG의 118대 115 역전승으로 끝이 났다.

팀 득점 1위 LG와 팀 수비 1위 삼성의 싸움에서 경기 초반은 엘지가 특기인 공격파워를 쏟아 붓지 못해 삼성의 페이스대로 끌려 다녔다. 삼성에서는 LG 야포 군단의 중심 조성원을 김희선(42·187㎝)을 선발 출장해 대인마크 시키는 것을 시발점으로 강혁까지 번갈아 투입하는 물량공세를 통해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LG는 에이스 조성원이 힘겨운 모습을 보이자 전체적으로 공격의 길을 못 찾고 허둥댔다. 더불어 분위기에 휩싸이는 경향이 있는 외곽포마저 침묵하며 삼성의 특기인 수비 리바운드에 이은 속공을 연거푸 얻어맞는 모습이었다. 외곽포라는 것이 제대로 폭발하면 엄청난 위력을 보이지만 반대로 터지지 않으면 그만큼 상대방에게 쉬운 공격찬스를 내줄 수 있다는 약점이 있었다.

삼성으로서는 그런 분위기를 끝까지 유지하지 못한 게 패착이었다. 다소 방심했던지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고 차곡차곡 따라붙는 LG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꾸준히 따라붙던 LG가 3쿼터 막판 불꽃같은 추격전으로 분위기를 확 재정비하면서 4쿼터는 예상된 명승부가 펼쳐지고 만다.

LG 승리의 수훈갑은 단연 이버츠였다. 대인마크와 느린 발을 문제 삼는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의 기복 없는 득점력은 이런 단점들을 얼마든지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더욱이 많은 득점을 올리면서도 개인플레이에 치중하기보다는 팀 오펜스와 함께 한다는 것은 그의 가치를 더욱 높게 평가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4쿼터 막판 삼성 센터 호프와 리바운드 경합과정에서 팔꿈치에 맞아 눈 부위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음에도 투혼으로 경기를 이어나가며 LG팬들의 박수 세례를 받았다. 더욱이 이날은 아내인 미셀 이버츠가 관중석에서 응원하고 있었던지라 이버츠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뜻 깊은 경기였다. 이날 이버츠는 36점의 고득점을 과시했는데 특히 잘 쏘지는 않지만 적중 율이 탁월한 그의 3점 슛 4방은 결정적 순간마다 LG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역할을 했다.

이버츠에 이은 또 다른 승리 공신은 조우현이었다. 경기 초반 포인트 가드로 기용되면서 어설픈 드리블과 냉정하지 못한 게임운영으로 자칫하면 패인을 제공한 역적으로 몰릴 수도 있었으나 오성식(45·183㎝) 등이 교체 투입되면서 본래의 위치인 슈터로 들어서기 무섭게 후반부터 좋은 활약을 펼쳐주었다.

경기흐름이 불리 할 때마다 적중시킨 3점 슛 6개(총 26득점)와 중요한 순간마다 선보인 기가 막힌 스틸은 경기의 맥 자체를 쥐고 흔들었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경기종료 1초도 안 남겨놓은 상태에서 폼도 다 무너진 채 수비수 2명 사이로 쏜 감각적인 슛은 이날 경기 최고의 슛으로 꼽혔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묵묵한 모블리는 이날 공격까지 적극적으로 가담하며 23점을 뽑아냈다. 이버츠와 조우현이 워낙 돋보여 상대적으로 부각이 덜 됐지만 이날 승리의 또 다른 공신중 한명임은 분명했다.

조성원에게는 굉장히 힘든 경기였다. 그는 단단히 벼르고 나온 삼성의 마크작전에 경기 내내 슛 한번 제대로 쏘기 힘들었다. 그러나 평소보다 외곽슛 영점이 많이 흔들렸음에도 조성원은 조성원이었다. 빠른 발을 이용한 면도날 같은 페넌트레이션과 컷인플레이는 여전히 상대방을 괴롭히는 최고의 무기였다. 부진한 것 같았지만 그래도 경기 후 그가 올린 기록은 18득점이었다.

삼성 맥클레리는 무려 36점이나 몰아넣고도 지나친 개인플레이로 인해 팀 패배의 또 다른 원흉으로 지목됐다. 강력한 파워와 스피드를 바탕으로 스핀무브에 이은 정점에서 살짝 올려놓는 슛과 대단한 아이솔레이션 능력은 여전했으나 이버츠와 다르게 혼자 공격하는 모양새가 심했다.

호프는 이날 단단히 마음먹고 나온 듯 전반에 17득점을 올리는 등 쾌조의 컨디션을 선보였다. 호프가 후반까지 꾸준히 경기력을 유지했으면 LG의 역전승은 힘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호프는 체력이 문제였다. 후반 들어 체력이 떨어지면서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벤치를 수시로 왔다갔다 했다. 초반 매치업 상대인 모블리를 압도했으나 풀타임에 가깝게 뛴 모블리와의 공헌도 차이에서 밀렸다 할 수 있다.

주희정은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당시의 그는 취약한 외곽슛 능력을 약점으로 지적받았는데 이날만큼은 첫 득점을 3점슛으로 꽂아 넣는 등 슛감이 좋았다. 특유의 속공전개능력도 여전했다. 가드진 파트너 강혁같은 경우 스틸에 이은 노마크 레이업 찬스를 놓치며 아쉬움을 남겼지만 LG에이스 조성원을 효과적으로 잘 막아낸 것을 비롯 부지런한 공수플레이로 기복없는 경기력을 보이며 살림꾼이다는 호평을 증명했다.

문경은은 이날 패배의 주범중 하나로 자존심을 구겼다. 삼성이 상승기류를 타며 앞서가던 상황에서 쐐기를 박는 '저격수'역할로 기용되었으나 오히려 느슨한 수비로 LG의 공격을 원할 하게 만들어버렸다. 더불어 막판 박빙처 승부에서 어설픈 공격으로 동점의 찬스를 놓쳐버리게한 아쉬운 플레이는 삼성팬들의 한숨을 자아냈다.

전체적으로 LG는 야투가 막히면 고전하고 삼성은 맥클래리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재확인한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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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셀 이버츠 에릭 이버츠 오성식 알렉스 모블리 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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